오시영의 세상의 창-미르재단, 해미르, 헛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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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미르재단, 해미르, 헛소문
  • 오시영
  • 승인 2016.09.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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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북한은 사상 최대의 물난리로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남한은 지진으로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수만 명의 대피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혼돈과 공포의 천재지변 사이로 북한의 반복되는 핵실험이 찾아들고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이라는 황당한 정권스캔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고 있다. 천재와 인재가 겹쳐 한반도에 천지창조 이전의 카오스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분별력과 정의가 사라진 틈새로 탐욕과 권력욕이 와장창 끼어들고 이분 저분이 모두 도둑년놈이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해미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던 작고한 박남철 시인이 갑자기 생각난다. 스스로 가진 게 불알 두 쪽밖에 없다며 술 한 잔 걸치면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을 한탄하던 박남철 시인, 해미르는 언젠가 어느 술좌석에서 어떤 남자 시인과 한바탕 쌈박질을 하고 나서는 필자에게 “폭력도 권력”이라며 스스로를 변명했었던 적이 있었다. 두 시인의 육탄전을 말리면서 곤욕을 치렀던 필자는 그게 말이나 되느냐며 퉁박을 주었었지만, “오형, 폭력이라는 힘마저 없으면 내가 어찌 사노?”하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속내를 털어놓던 해미르는 그 뒤로도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몇 번이고 곤욕을 치루며, 변호사인 필자에게 도움을 청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며 폭력이 아닌 시의 세계에 천착하며 영혼이 안식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박남철 시인은 ‘고래의 항진’이라든지 ‘겨울강’ 등 수많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지만, 여성 시인들에 대한 무례한 행동과 남성 시인들에 대한 우악스러운 폭력이 더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약한 시인들과 출판사를 향해 거침없는 폭언과 진실을 털어놓으며 은유의 시세계에 강한 사실로 접근했던 해미르는 그 나름대로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죽기 몇 년 전부터 여성 시인에 대한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어 이를 해명하느라 애간장을 태웠던 그, 분명히 자신은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인데 성추행을 했다고 상대방이 고소를 하였다며, 자기변명에 바빴던 그는 세상 달라진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피해자분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라며 아무리 타일러도 변호사의 말귀를 못 알아듣던 그는, 결국 아까운 나이에 병든 몸으로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해미르라는 아이디는 해와 용이라는 우리말을 합성시킨 것으로 박남철 시인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던 아이디이다. 그런데 해미르로 발음되는 네델란드어 ‘gemier’는 푸념, 허튼소리 또는 소동이나 옥신각신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해미르 시인이 네델란드어 ‘gemier’(해미르)가 의미하는 뜻까지 섭렵하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미르라는 단어가 순수 우리말 용을 의미한다며 해와 용을 상징한 자신의 아이디의 멋짐을 한참 뽐냈던 기억은 있다. 스스로 자신을 해와 용이라 일컬었던 죄가 컸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갇혀 있던 세상이 너무 좁아서였던 것일까? 사는 것 자체를 무척 힘들어 하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시적 욕망과 모든 것이 자신에게 공격적이던 이 세상에 대한 반발로 끊임없이 괴로워하던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기억 중의 하나가 해미르라는 아이디이다.

때 아닌 미르가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기 시작한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젊은 시절 멘토였던 최태민 씨의 딸 최순실 씨가 주축이 된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줄을 서서 800억 가까운 돈을 기부하였다고 한다. 미르재단은 지난해 10월 26일 설립신청서를 제출하였는데 바로 그 다음날 허가가 났다고 한다. 케이스포츠재단 역시 금년 1월 12일에 설립허가신청을 하였는데 하루만에 허가가 났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난 미르재단의 신청일이 하필이면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월 26일인지 그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몇 번 학회 등과 관련하여 사단법인 설립에 관여해 본 경험이 있다. 예전의 경험에 의하면 학회와 같은 순수 학문단체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대학 교수들인 경우조차 거의 한 달 가까이 미주알고주알 사실 확인을 한 다음에 허가를 얻었던 기억이 새롭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을 보면 도무지 정상적인 허가절차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재단 이사 등의 경우 그들의 적격성 여부를 심사하는 절차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비영리법인의 경우 이사의 자격 관련하여 일정한 범죄 등 형벌을 받아 그 집행 중에 있는지 여부, 성년제한능력자인지 여부 등 임용결격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심사가 엄격하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를 단기간 내에 끝낸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법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끝났다니 참으로 해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 씨가 자신의 호를 따 일해재단을 세우고 상왕의 지위를 누리려 획책하였지만 일해재단의 자금 모금의 불법성이 드러나 지금은 세종재단으로 명칭도 바뀌고 그 재단의 목적 등도 모두 바뀌었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이 마치 전두환 씨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라는 일부 보도 및 국회 질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권력을 악용한 가렴주구라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고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호가호위하여 대기업들을 겁박한 것이라면 이 역시 권력형비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기관의 엄중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르재단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해미르 시인이 연상되었고, 덩달아 일해재단을 설립한 전두환 씨가 연상되었다. 일해재단의 日이 해였고, 미르가 龍이어서 두 단어의 합성어 해와 용, 해미르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가 말년에 여성 시인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처럼 얽히고설킨 스캔들이 모두 연상되는 이 부작용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회는 두 재단의 설립과정에 권력의 개입이 없는지, 비선실세들의 호가호위는 없었는지 일차적으로 규명할 책임이 있다. 필요하다면 검찰에 수사토록 하거나 특별검사를 임명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최저임금 100원 인상하는 것을 가지고서도 경제가 어렵다며 지불능력이 없다는 등 죽는 소리를 해대던 재벌기업들이 어찌하여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는 법인 허가 후 불과 며칠 되지 않아 80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기부하였는지,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의 겁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인지를 스스로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800억 원이면 최저시급 100원씩을 올리면 8억 시간의 노동력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하루 8시간 청년들이 알바를 한다면 1억 명의 청년에게 하루 도움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휴일 등을 빼고 일 년 250일 정도를 노동한다면 4십만 명의 청년에게 1년 동안 도움을 줄 수 있는 돈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목적도 불분명하고, 책임 주체도 불분명(청와대 등의 변명에 의하면)한 두 신생 재단에 선뜻 내놓았다면 이는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이나 최저 시급인상이라면 부들부들 떨며 손사래를 치는 자들이 위와 같이 허무맹랑한 재단에 무차별적으로 거액의 돈을 지원한다는 것은 세상이 미쳐도 한참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 앞에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기관 이사들과 관련 기업 임원 등을 국회에서 증인으로 불러 확인해 보자고 하는데, 새누리당 의원들은 온 몸으로 맞서며 이를 거절하고 있다. 이유는 민간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회의원이라면 기업들이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거금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 과연 국민경제에 바람직한 것인지, 권력 비선실세들의 권력남용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하여 국민 앞에 소상히 보고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거금을 멍퉁멍퉁 퍼붓는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제 정신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본들 시간 앞에 장사 없다. 전두환 씨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오공시절, 천지가 그 앞에서 벌벌 떨던 그때도 일해재단의 비리는 진실 규명되었고, 전두환 씨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였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되었다면 역시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것이고, 비선실세들의 허세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일벌백계로 대통령이 앞장서서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하지 않고 계속 방어망을 치고 진실 규명을 방해하려 하면 점점 더 의혹덩어리는 커질 뿐이다. 세상에서 구르고 구르면서 커지는 것은 눈덩이와 헛소문이다. 아니 진실도 점점 더 커진다.

해미르가 해와 용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헛소리라는 네델란드어인 것처럼 두 가지 의미 중 어느 것으로 번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일해재단처럼 미르재단이 뒤집어질지, 그들의 권력과, 청와대와,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말이 헛소리가 되고 말지는 시간 앞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날 밝혀질 것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박철규 전 공단이사장이 최경환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비서관을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입사원 인턴으로 채용하는 과정에 최경환 의원의 외압이 있었음을 자신의 공판과정에서 자백하였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외압이 전혀 없었고, 청탁도 없었다고 거짓말로 일관하던 그가 결국 자신이 기소되어 수원지방법원안양지원 형사법정에 서게 되자 자신의 형량을 낮출 의도에서인지 진실을 고백한 것이다. 서류심사결과 2140등이던 비서관을 146등으로 등수 조작하여 부정 채용한 그, 최경환 의원이 자신이 기소되지 않도록 지켜줄 것으로 믿고 그가 살아야 자신도 산다며 거짓 진술하여 최경환 의원을 무혐의처분케 하였지만, 자신만이 기소되어 모든 덤터기를 혼자 뒤집어쓰게 되자 역시 물귀신 작전으로 혼자 죽을 수 없다며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거짓의 짐을 뒤집어씌운 최경환 의원에게 벗어 되씌워 준 것이다. 검찰은 서면조사만으로 무혐의처리 특혜(?)를 준 최경환 의원을 박철규 전 이사장의 법정진술을 토대로 다시 재소환하여 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해미르 박남철은 ‘고래의 항진’에서 “......타아앙....../어디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돌고래 한 마리도 꼬리에 걸리며/ 타아앙....../ 자기가 고래인 걸로 잠시 착각한 늙은/ 숫물개 한 마리도 옆구리에 치인다/ 타아앙....../(이하 생략)”하며 고래 앞의 허위를 비웃는다. 고래도 아닌 것들이 고래인 척 설쳐대는 세상을 야유한다. 어디 그뿐인가 ‘겨울강’에서 “겨울강에 나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을 튀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이하 생략)”라며 겨울에 얼어붙은 강이 마치 바닥이나 된 듯 돌을 튕겨내며 허풍을 떠는 모습을 야유한다, 조소한다. 또 말한다,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이,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흘러버릴 것들이”라고. 봄이 오면 녹아내릴 겨울강, 때가 되면 권력의 장막 뒤로 사라질 초라한 인간들이, 권불십년도 되지 못할 것들이, 화무십일홍일 것들이, 지금이 봄인 줄 알고, 지금이 영원일 줄로 알고, 지금이 무슨 겨울인 줄로 알고 쩌엉, 쩌엉거리며 돌을 튕겨 내며, 민중의 함성을 외면하며, 타아앙, 타아앙 바닷물을 꼬리로 튕기며 고래의 항진을 하며 물살을 가른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자신이 해미르인 양 해미르(헛소리)를 해댄다.

해미르 시인, 필자를 향해 “오형은 너무 밝아, 그래서 무서워” 하며 한 잔 술 권하던 해미르 시인이 생각난다. 헛소리가 넘쳐나는 세상, 그래도 겨울강 얼음 아래에서는 도도히 한강물이 흐르고, 낙동강물이 흐르고 대동강물이 흐르고 흘러 망망한 태평양을 채울 것이다. 그 태평양 심저 깊이 진짜 고래가 진실을 향해 항진할 것이다. 진짜 태양 사이로 용오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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