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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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5)
  • 박준연
  • 승인 2016.03.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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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일과 취미

주말에는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회에 다녀왔다. 일본의 전통 불교 미술을 재해석하여 창조한 거대한 화려한 원색의 나한도에는 글리터가 난무했다. 표현 기법에는 불교 미술뿐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많았고, 아예 나한도에 애니메이션 케릭터 비슷한 인물이나 동물이 묘사되어 있기도 했다. 아주 크지는 않은 전시였지만, 전시 설명을 꼼꼼하게 읽고 사진 촬영이 자유로워서 그림과 조각 중 마음에 드는 디테일을 찍고, 무라카미 다카시씨 본인의 인터뷰를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상도 다 보고 나니 금세 두 시간이 흘렀다.
 
주변을 보면,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의 취미는 아주 다양하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논다 (work hard, play hard)"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일을 마치면 여행이나 파티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여름 휴가에는 관광지나 웬만한 여행지도 아닌 인터넷 연결도 잘 안되는 오지로 트래킹을 떠나는 동료들도 있다. 재능을 살린 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 회사의 동기 R은 원래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매주 성악 레슨을 거르지 않고 종종 오페라 공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내 경우는 시간이 나면 조용히 쉬는 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딱히 내세울 만한 취미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뭔가 근사한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 뉴욕에서는 몇 번 그림을 배워보고 싶어서 스케치 과정에 가본 적이 있다.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틀어주고 1960년대 분위기의 의상을 입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면 거기에 맞춰 스케치를 하는 수업이었다. 처음엔 분위기에 취해서 즐겁게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 사람의 스케치와 비교한 내 그림이 부끄러워서 끝나기 전에 스케치북을 껴안고 도망치고 말았다. 이 얘기를 나중에 지금 회사에 옮겨올 때 면접 중 취미 얘기가 나와서 한 적이 있다. 처음엔 근엄한 표정이었던 파트너 변호사가 이 이야기를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 이후에는 크게 무리를 하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취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두는 점은 평소 하는 일과 다른 여가 활동으로 일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면 더 좋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전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시를 읽는 수업에 다녔다. 말 그대로 한 시간에 몇 편 주어진 시를 돌아가며 낭독한 다음 간단하게 감상을 교환하는 형식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흔히 다루지만 나는 접할 기회가 없었던 시인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 시 비평 책을 통해 조금씩 공부를 하거나 뉴욕에서는 드물지 않았던 시 발표 및 낭독이 있으면 찾아가기도 했다. 

역시 취미라고 부를 정도로 조예가 깊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이 스탠드업 코메디이다. 우리말로 하는 스탠드업 코메디는 드물지만 우리말, 영어, 일본어, 언어와 상관없이 순전히 말로만 웃기는 코메디를 즐긴다. 미국에서는 비교적 소재 선택이 자유롭기 때문에 정치적인 공정성을 확보해가며 웃기는지가 흥미롭다. 실제로 브루클린에서 본 스탠드업 코미디 중에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코미디언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농담을 하는 중에 관객들 몇몇이 항의의 의미를 담아 공연장을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민감한 내용을 소재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볼 때는 “보케”와 “츳코미”로 불리는 정형화된 역할을 변용하는 것을 흥미롭게 본다.

어떻게 보면 취미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운 개인적 관심사이지만, 일하고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 나는 늘 변호사라는 직업이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도 코미디도 글과 말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변명을 늘어놓다보니 본격적인 취미생활의 길은 멀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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