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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1) - 면제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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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1) - 면제유감
  • 차근욱
  • 승인 2016.03.1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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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큰 조카가 군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뭐,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세상을 살아갈 내공의 초석을 다질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세월이 지나고 나서 스스로 속상할 것에 비하면 내 안타까움이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군생활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군시절’은 폭력와 불합리, 그리고 염치없는 인권유린을 온 몸으로 체험했던 시간이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군’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군시절’의 경험이다. 이 말은 늘 그렇듯 결국 ‘사람’의 문제일 뿐, ‘군’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도 군시절 아둔함의 극치를 보인 이모씨와 원모씨 그리고 박모씨와 한모씨에 대해서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 조차 불편하다.

폭력과 모멸로 군림하고자 했던 어린 치기에, 인간에 대한 예의란 것을 스스로 포기했던 친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소수가 군을 오욕한다 해도, 그럼에도 ‘군’은 명예롭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군’을 사랑한다. 조국의 바탕을 지키고 가족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군의 존립근거이자 사명이므로. 문제는 그런 ‘군’을 욕보이는 함량미달의 인간뿐이다.

사실 남자로서 ‘군인’만큼 멋있는 직업도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성을 얼마든지 발휘하면서도 조국을 위해 도전하고 준비하는 명예로 살아갈 수 있으니, 남자로서 이보다 멋있는 인생도 없다. 그렇기에 이 순간 군에서 헌신하는 모든 전우들을 뵐 때면, 항상 존경스럽고 반갑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 역시 가장 빛나는 시절의 한 순간, 최고의 군인이 되고 싶었다. 처음엔 그저 공수윙이 멋있어서라는 단순함 이었지만, 그래도 기왕의 군인이라면 역시 강하고 멋진 군인이 되고 싶어 자대에 지원했었다.

체력테스트 때에도 나름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자대에 선발되었을 때에는 조금 떨렸지만 무척 기뻤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도 내 인생에 있어 소위 ‘남는 장사’로서 긍지높은 명예가 되었다. 덕분에 남자들끼리 모여 군대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나름의 격려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군필자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하고 급하게 친해지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군으로부터 얻은 큰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군에서 마주해야 하는 역경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군생활이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 때에 비하면 나의 군생활이 훨씬 풍족했을 것이고, 내가 군생활을 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더욱 풍족해졌을 것이다. 개선된 생활이라는 측면에서는 앞으로 더욱 나아질 것이니 생활적 면에서라면 굳이 군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군대에서 마주하는 최악의 상황은 ‘사람’이다. 특히 무언가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힌 동료를 만나게 될 경우에, 사람은 극단의 선택을 고려하기도 한다. 그만큼, 언제나 ‘사람’은 무섭다. 군을 좀먹는 것도 결국은 이런 소수의 잘못된 ‘사람’이다. 오죽하면 속담에도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고 하지 않나. 지인 중 한 사람은 군 복무 중 막사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전 군의 정신교육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 사건의 원인 역시 사람에 있었고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인격모독의 가혹행위가 원인이었다. 인간이 작심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피해자에게 정신력이 약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정말 작정하고 괴롭히기 시작한다면 당사자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진다. 얼굴을 마주하고 숨 쉬는 것 조차 괴로운 생활이 이어지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그렇기에 군 복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욱 더 큰 가치가 있다. 나의 경우에도 악연이라고 할 밖에는 없는 사람으로 인해 당혹스러운 모욕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를 통해 나는 인간의 본성을 배울 수 있었고 인내와 자존감을 지키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성용 스킨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매일 하루도 구타가 없는 날이 없어 50대가 넘는 따귀를 풀스윙으로 맞아가며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다. 눈 밑이 찢어지도록 따귀를 맞았고 매일 매일 이어지는 구타로 얼굴이 퉁퉁 부어 생활을 해야 했었다. 그 당시에는 ‘쓰리콤보’라는 것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주먹으로 얼굴을 친 후에 군화발로 가슴을 차서 상대가 쓰러지면 발로 차고 밟는 것이었다.

쓰리콤보는 일상이었고 전우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무력감 역시 나를 괴롭혔다. 하다하다 K2 개머리판이 깨지도록 구타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 뿐이었고, 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도 힘든 상황을 견디어 내는 힘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다들 고단한 군생활이었겠지만,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던 나약한 친구들이 짜증을 폭력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약했던 거다. 그 친구들은.

나중에 어느 정도 선임이 되고 나서는 병영 내 구타나 가혹행위를 없애는데 굉장히 공을 들였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번에는 하극상이 일어나거나 명령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절망에 빠지기도 했었다. 왜 인간은 스스로 기회를 기회로 살리지 못하는 것인지, 왜 어째서 이기적 오만으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인지, 왜 동료나 시스템에 대해 배려하고 노력해 모두가 즐거운 기회를 만들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군 시절을 통해 나는 조직생활과 나의 존재, 그리고 가족의 감사함과 인간에 대한 성찰, 꿈을 꾸고 인생을 설계해 살아간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감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군복무는 유아적 나 자신이 알을 깨고 남자로 태어나는 기회가 되었고 군 생활 중 직면해야 했던 수 많은 극한상황을 이겨내면서 나는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할 수 있었다. 특히 주둔지에서 생활하는 동안 매일 하루 4시간씩 할당되었던 기초체력훈련을 통해 처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해 낼 수 있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하면된다’라던가, ‘할 수 있다’라던가,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군인정신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산은 지금의 오늘을 살아가게 해 주는 나만의 저력이 되어 주었다. 순환식 체력단련 프로그램 중에, 3층 정도 높이에 손목 굵기의 줄을 매달아 두고 오직 팔힘으로만 끝까지 줄을 타고 오르는 종목이 있었는데, 발을 대서 올라가면 가차없이 이단옆차기가 날라왔었다. 그래서 오직 팔힘으로만 몸을 지탱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봉을 손으로 치고 내려오기를 순서대로 반복하는 훈련이었었는데, 처음 그 훈련을 하던 날 전혀 올라가지 못해 온갖 구박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나는 이 훈련을 ‘불타오르기’라고 불렀었는데, 나중에는 시범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게 되어 스스로 굉장히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어를 달고서 맨날 죽자고 뛰어 날씬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 과연 지금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군생활을 통해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자연과 아름다운 명산을 두루 접할 수 있었으며 한계 극복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력, 그리고 근성까지도 기를 수 있었다. 또한 전역 후에는 군복무 경험만으로도 호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목표가 생기면 뜻을 세우고 밤을 불태워 맹렬히 도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대를 선택하고 지원했기에 얻을 수 있던 것들이었고, 지금도 군시절의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모두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조카는 시간을 벌었다며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해, 군복무를 면제 받으면 다들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군복무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간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이었다.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군복무를 통해 나는 내 인생을 조금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더욱 더 강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조카의 군 면제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보다 근성을 기르고 남자로서 강인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조카가 왠지 측은했다.

이 인생의 분기점이 남은 모든 순간의 인생을 달라지게 해버릴 것이므로. 조카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다르게 성장하게 될 것이므로. 나는 조카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할 때면 정면 돌파하는 남자가 되기를 바란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포기를 모르는 근성의 사나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편하고 쉬운 편법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우직한 투혼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군대를 가지 않았다고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의 가장 빛나는 때, 군이라는 용광로에서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저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기왕 대한민국 싸나이로 태어났는데, 군대를 못간다니, 이건 역시 너무 억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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