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고시생들의 명절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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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고시생들의 명절증후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6.02.05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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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이제 곧 설이다. 추석과 더불어 한국인의 양대 명절. 온 가족이 다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담소와 정을 나누는 날, 올 한 해의 복을 서로 빌어주며 덕담을 나누는 날. 

기자도 어린 시절에는 꼬까옷 차려 입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들을 만나는 명절이 기다려지곤 했다. 세뱃돈도 받고 또래 사촌들과 어울려 놀고 전이니 갈비찜이니 맛난 명절음식도 잔뜩 먹을 수 있는데 어찌 좋지 아니하겠는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설렘보다는 부담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날이 됐다. 비단 기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뉴스나 기사를 봐도 명절이 다가오면 고운 옷 차려 입고 선물 보따리를 바리바리 들고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따뜻한 풍경보다 ‘명절증후군’이니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과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명절에 정말 자주 듣지만 듣기 싫은 이야기들의 내용은 세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세대가 겪는 일인 것 같다. 수능을 치른 고등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들어갔니”,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은 “어떤 회사에 들어갔니”, “올해는 취업해야지”, 미혼남녀는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니”, 기혼남녀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지, 얼른 낳아라”와 같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걱정을 가장한 공격으로 이같은 질문을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지만 대부분은 진심으로 걱정스럽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 걱정과 잘 되라는 바람으로 하는 말이라도 상대방의 생각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말들은 듣는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의도나 생각을 품고 말을 던지는 후자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낸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즐거움보다 힘들고 피곤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즐겨보던 한 미드에 미국 최대의 명절이라고 꼽을 수 있는 추수감사절에 생긴 일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병원에서 외과 수련의로 근무하는 I는 매일 일에 치여 살다 모처럼 생긴 휴일, 친구들과 함께 명절 만찬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군분투하며 음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친구인 C는 사건사고가 많은 명절을 맞아 수술에 참여할 기회를 많이 잡고 싶다는 이유로 만찬에 한참 늦고 만다. 미국에서 병원이 가장 붐비는 시기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새해에 이르는 홀리데이 시즌이라고 한다. 흥청망청 즐기는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를 일으켜 병원을 찾는다는 것. 그런데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정이 생겼다. M은 가족적인 행사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오지 않았고, J는 운영하고 있는 바(Bar)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이유로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버렸다. J를 붙잡으며 명절에도 꼭 문을 열어야 하느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술집은 명절에 가장 붐벼요. 외로운 사람, 가족들에게 시달리다 탈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동서양 할 것 없이 명절이 불편한 이들이 많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래도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부담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형편이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절이 달력에서 삭제된 사람들, 그 중에는 수험생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설은 직후에 줄줄이 시험이 이어지는 터라 몇 년이나 설을 못 챙기고 지낸 이들이 족히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올해도 설 바로 2주 후에 사법시험과 변리사, 회계사 1차시험이 치러지고 그 후에도 5급 공채와 외교관후보자, 입법고시 1차시험 등이 이어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지만 수험생 모두의 달력에 내년에는 설이 커다랗게 그려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비록 원치 않는 관심에 시달리는 부담스런 명절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모든 이들의 명절이 조금은 덜 불편하고 더 따뜻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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