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시험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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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시험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 신희섭
  • 승인 2015.12.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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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수험생은 답안지로 말한다.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결국 얼마나 좋은 답안을 만들었는지로 평가받는다. 몇 년을 공부했고 어느 정도까지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점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다르다. 학문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 분야의 주제들을 대체로 빠짐없이 읽고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고자 한 분야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업적을 만들어 그 분야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며 일정한 분량의 문서탐구가 필요하다.

수험생들의 공부방법도 어느 정도는 학문을 하는 입장과 비슷하다. 우선 공부해야 하는 과목내의 중요한 주제들과 그 주제들의 논쟁방향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을 풀어가는 논리와 이론들을 배워야 한다. 이 과정 역시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며 일정 분량의 문서탐구를 요구한다.

학문을 하는 이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분은 질문 받는 다는 점과 짧은 분량 안에 글로 만들어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3페이지에서 4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만큼의 글 안에 질문에 대해 본인의 판단을 보여주어야 하며 판단이 도출되는 과정의 논리를 질서 정연하게 제시해야 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문제제기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논리를 개발하지만 수험을 하는 사람은 질문을 받고 질문자 즉 출제자의 문제제기를 공유하고 그 문제제기에 대해 본인이 배운 이론과 개념들을 가지고 논리를 정리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학문을 하는 사람과 수험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이슈를 다루는 주체성에 있다.

게다가 학문을 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특별한 논리를 구축하고자 한다. 학자는 전공분야 전체에서도 본인의 특수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학 분야에서 선거나 정당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험을 통해서 공직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해진 여러 분야들을 두루 아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할 수 있다. 양자의 차이를 요약하자면 특수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인지 일반적인 주제들을 균형감 있게 다룰 것인지에 있다.

만약에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과 수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 학문분야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주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으면서 누구나 하는 주제에 누구나 아는 정도에서 공부를 한다면 이 사람은 전문가가 되기는 틀린 것이다. 반대로 수험생이 질문자의 의도나 출제 경향과 관계없이 특수한 주제에 빠져 있거나 독특한 논리를 만들면서 한 쪽의 입장만을 반영하여 균형감 없이 글을 만든다면 이 사람은 합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주변에는 학문을 하듯이 수험준비를 하는 사람이나 수험준비를 하듯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꽤나 오랫동안 사용하지만 본인의 노력대비 성과가 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중도에 지쳐 포기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고 공부를 계속해도 제자리를 벋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두가 길어졌다. 수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수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잘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수험생이 원하는 것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역량을 갖추었는지 평가받고 본인이 가서 일하고자 하는 부처로 가야 한다. 수험생이 공부를 하는 것은 일정한 역량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잘하려면 앞에서 이야기한 질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잘 갖추어야 한다. 평이한 이야기로 하면 출제자들의 문제제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 질문에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얼마 전 답안지 특강에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많은 수험생들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질문지에 나온 활자를 다시 구성하여 문제를 풀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제 1 문. 최근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고 신흥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국제정치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정치경제 모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에 대한 개발도상국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총 40점)

1) 중국의 정치 외교적 부상이 21세기 국제정치질서의 변화(특히 G2 체제의 출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논하시오. (20점)

2)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알려진 미국의 정치경제모델과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로 알려진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의 주요내용을 비교 평가하시오.(20점)

위의 문제는 2011년도 5급 공채에 출제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모의고사로 출제하고 답안지를 보았더니 90%넘는 답안이 (1)번의 분설된 문제와 (2)번에 분설된 문제를 따로 풀고 있었다. 분설된 문제들이 어떤 논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즉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는 변화대로 설명하고 워싱턴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의 비교는 비교대로 따로 풀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수험생이 이 문제를 출제한 출제자의 논리를 못 찾아낸다는 것이다. 즉 출제자와 문제제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공유하지 못하였으니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한 본인의 답변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결론에서 많은 답안들은 중국성장이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 예상이나 그에 따른 한국의 대응방안에 대한 일반적인 주장들이 있었다.

문제제기를 공유한 뒤 문제를 해결해 가는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수험생이 갖추어야 할 공부의 덕목이라는 취지에서 이 문제를 한 번 복기해보자. 지문의 첫 번째 문장에서는 ‘중국의 경제성장 ⟾ 중국의 국제정치역할증대 ⟾ 미국주도 국제정치질서변화’의 논리가 구축되어 있다. 즉 중국이 성장하면 미국중심 ‘질서’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운영규칙과 원리가 바뀌게 될 것이다. 브레튼우즈체제로 명명된 경제적 규칙체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군사력을 사용하여 질서를 규율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동맹과 핵을 관리하는 방식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문장은 ‘중국의 성장 ⟾ 개도국들의 중국모델선호 증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문장과 연결하면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질서 중에서 개도국들이 중국을 더 지지하게 만들 것이고 이것은 미국의 패권질서에 대한 정당성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의 중심에는 중국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중국의 역할이 증대할 것이고 개도국들이 미국이 아닌 중국의 휘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인 베이징컨센서스라고 하는 정부주도적인 경제발전전략의 성패가 미래예측에 있어 중핵을 이룬다.

중국식 발전전략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는지에 따라 중국의 미국패권질서에 대한 도전이 성공할지가 달려있다. 그러므로 문제제기는 중국의 국가중심적 발전전략인 베이징컨센서스는 지속적인 중국성장을 담보하여 중국의 향후 미국패권질서에 대한 도전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로 모아지겠다. 최근 동남아시아국가들과 아프리카국가들에서 보여주는 반중국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중국이 세(勢)를 모으는 것은 어렵게 될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들과 강대국들이 미국중심 질서에 대해 더 지지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개도국들의 지지도 확보하기 어렵고 중국 자체의 성장도 담보가 안되면 중국의 미국질서에 대한 도전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서 제시해야 할 것은 중국의 베이징컨센서스의 성패와 미국체제에 대한 도전가능성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다.

출제자와의 문제제기 공유, 이것이 문제를 대하는 수험생의 첫 번째 자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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