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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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7)
  • 박준연
  • 승인 2015.11.13 12: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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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무엇을’보다는 ‘어떻게’라는 평범한 진리 

몇 년 전 뉴욕의 대형 로펌에서 해고당한 1년차 변호사가 해고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뉴욕주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일했던 로펌에서 그의 뛰어난 능력에 걸맞은 업무를 주지 않고 대신 선배 직원들의 보조업무만을 맡겼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나는 그 1년차 변호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고 주변사람들도 이 뉴스를 가지고 농담을 많이 했었다. 

로펌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많은 1년차 변호사들이 느끼는 혼란은 이렇다. 대형 로펌인 경우 미국내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의 보수, 업무 상 필요할 경우 24시간 제공되는 업무 지원은 알게 모르게 신참 변호사들을 우쭐하게 만든다. 그런 한편 업무 내용이 반드시 높은 수준의 법학 지식과 분석력을 요구하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안건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5∼10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큰 케이스 팀이라면 소송 안건의 경우 막내인 1년차 신참 변호사들은 고객이 제출할 서류를 리뷰(document review)하거나 M&A 안건의 경우 서류를 검토하는 실사(due diligence)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러한 업무가 외주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지만 많은 경우 1년차 변호사의 업무로 여겨진다. 아마 해고된 1년차 변호사도 이런 업무를 주로 담당하다가 불만이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문서 리뷰 업무를 많이 했다. 문서를 읽고 상대측의 제출 요청(request for production)에 부합하는지(responsive), 그렇지 않은지(non-responsive)를 판단하는 비교적 단순한 리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는 해당 문서를 바탕으로 우리 측에 유리한 사실과 불리한 사실을 분석하는 업무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고객에게서 수집한 문서를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는 1년차 어소시에이트 변호사가 소송관련 사실관계를 가장 자세히 아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또 일견 단조롭고 지루한 업무라고 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전 회사에서 다른 사무소(뉴저지 사무소)의 업무를 도운 적이 있다. 내 나름대로 성실하게 한다고 한 것을 담당 파트너 변호사도 알아줬는지 그녀가 우리 사무소(뉴욕 사무소) 인사담당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서 칭찬과 함께 다른 업무도 도와줬으면 한다는 얘기를 전한 적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겸손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펌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보면 자만에 빠지기가 어렵지 않다. 대형 로펌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순간 주어지는 많은 혜택들은 고객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인데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순간 자만에 빠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봐 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로펌 환경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뉴욕에서 일할 때 재판 준비 때문에 몇 주를 새벽까지 일했던 적이 있다. 금요일 밤에도 늦게 일하고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2-3년 위 선배 직원과 업무 얘기를 하다가 둘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해서 그랬는지 다른 얘기도 좀 나누게 되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잊었지만 그녀가 그랬다. “우리 중에 어렸을 때 똑똑하단 얘기 안 들어본 사람 있니? 우리가 잘하는 건 당연한 거라 아무도 칭찬을 안해주지만 어쩌다가 잘못하면 크게 지적받기 마련이야.” 그 얘기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많은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로펌 변호사들은 자칭, 타칭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고 그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에 대해, 그리고 회사 내부 안건 담당 팀원들에 대해 얼마나 성실한지, 그리고 또 안건이 바쁘게 돌아갈 때 긴 시간 함께 일을 해도 즐거운지(즐겁다는 표현에 어폐가 있다면 얼마나 덜 고통스러운지) 하는 요인들이 얼마나 좋은 변호사인지를 판가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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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b 2015-11-14 18:04:43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 시작한 신참으로써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5-11-13 23:35:00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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