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구(舊) ‘국가모독죄’ 위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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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구(舊) ‘국가모독죄’ 위헌 결정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5.10.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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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의적이고 추상적 형벌 규정 안 돼” 법리 재확인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헌법재판소는 21일 관여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한민국 또는 헌법상 국가기관에 대하여 모욕, 비방, 사실 왜곡, 허위사실 유포 또는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 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 하도록 규정한 구 형법 제104조의2(국가모독죄 조항)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2013헌가20)을 선고했다. 

국가의 안전, 이익, 위신 보전이 위 조항의 진정한 입법목적인지 의문이며 형사처벌을 통한 일률적 표현행위 규제에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고 의미내용이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 또 기본권 침해 정도가 큰 형사처벌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이유다. 

시인인 양성우 전 의원은 지난 1977년 저항시 ‘노예수첩’을 일본 잡지에 발표했다가 국가모독죄가 적용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국가기관 등에 관한 사실을 왜곡한 내용의 표현물을 작성한 후 보관하고 있다가 일본인, 미국인에게 교부해 일본인 잡지에 번역·게재되도록 함으로써 외국인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안전, 이익과 위신을 해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국가모독죄 및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됐다.) 양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법원이 36년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한 사건이다. 


구 형법 제104조의2(국가모독 등) [1975년 3월 개정, 1988년 삭제 개정조항]

①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이날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은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 있는데, 원칙적으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엄격한 요건에서 허용된다”면서 “당시 언론이 통제되고 있던 상황과 이 조항의 삭제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국가의 안전과 이익, 위신 보전을 심판대상조항의 진정한 입법목적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고 형사처벌로써 표현행위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그러한 목적달성에 기여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규제하는 행위태양으로 ‘기타 방법’은 그 의미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위신’ 역시 추상적이고 불명확하고 이를 실제로 해한 경우는 물론 그러한 우려가 있는 행위까지도 처벌대상에 포함시켜 국가와 국가기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형법은 대한민국의 안전과 독립을 지키기 위한 다수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 국가보안법이나 군사기밀보호법에서도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심판대상조항을 별도로 둘 필요도 없다는 것.

나아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이익’ 보전은 다양한 토론과 논의의 장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를 형사처벌로 강제하는 것은 과도할뿐더러 국민들의 비판이나 부정적 판단에 대해 국가의 ‘위신’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국가나 국가기관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국정을 홍보할 수 있다”면서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의적인 왜곡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도 있다”며 침해 최소성 원칙 위배를 선언했다. 

헌재는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형사처벌을 통해 획일적으로 국민의 표현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의 안전·이익이나 위신을 지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갖는 가치에 비추어  기본권 제한의 정도는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이번 심판대상조항은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기 위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1988년 개정 형법에서 이미 삭제된 것이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갖는 가치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결정”이라고 전했다. 

참고로 1975년 유신정부가 형법을 개정하면서 이 조항(국가모독죄)을 신설했다. 당시 정부는 고질적 사대풍조를 뿌리 뽑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입법했지만 외국 매체를 이용한 대통령 비판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 속에 1988년 여야 합의로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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