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필자의 보타이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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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필자의 보타이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 오시영
  • 승인 2015.09.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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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 수업 시간 필자는 정성스레 보타이를 매고 강의실을 들어섰다. 약간의 설렘과 흥분으로 학생들을 첫 대면하였다. 인사를 나눈 후 어떻게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진행해 나갈 것인지 간단히 설명하고, 왜 보타이를 매고 첫 수업을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밝혔다. 나는, 보타이를 매고 서빙하는 호텔 웨이터처럼 한 학기 동안 여러분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하기 위해 보타이를 매는 것으로 가시적인 약속을 하려 한다고. 내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빙긋 웃거나 소리 내어 웃었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 멋져요!”라고 호응하였다. 지난 학기부터 보타이를 매기 시작하였다. 60이 넘은 교수의 작은 깨우침이다. 그래, 나만이라도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교수임을 보여주고 실천하자, 이런 생각으로 보타이를 10여개 샀다. 그리고 수업시간마다 바꿔 매고 강의실을 찾는다. 첫 수업이라 학생들이 교재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내 과목의 커다란 개요를 설명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 동안 어찌 지냈는지 묻기도 하고, 복학생에게는 격려를 보내기도 하였다.

수업 마치고 나오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학생은 더운 여름 부지런히 알바를 하여 등록금에 보탠 아이도 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납부한 아이도 있다. 어렵게 내 강의를 들을 준비를 갖춘 아이들의 노고가 기특하고, 그들의 장래가 염려스러운 안타까움이 나도 모르게 나를 괜히 눈물짓게 했나 보다. 내 강의 3학점을 듣는데, 한 학생당 1주일에 약 5만 원 정도가 든다. 한 학생이 실질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한 주의 평균 등록금 분담액이 약 30만 원 가량이다. 보통 한 학기에 3학점짜리 여섯 과목을 듣는 것으로 계산하면 저 액수가 나온다. 40명 정도가 한 강의에 참가하니까 한 주 수업에 200만 원 정도 학생들이 등록금을 낸다. 한 학기 동안 약 2,400만 원 정도의 돈이 등록금 중 내 강의시간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한 주일 결석을 하면, 너희들은 그냥 30만 원을 허공에 날려 보내게 된다고. 그러니 결석하지 말고 수업에 충실히 임하라고. 알바도 중요하지만, 알바에서 벌어들이는 시급보다 수업에 빠져 낭비되는 돈이 더 크니까, 가능하면 수업에 충실하여 실력을 쌓아, 빨리 독립하여 투자비를 회수하라고.

도종환의 시, “담쟁이”를 본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전문, ‘당신은 누구십니까’ 창비시선에 수록, 1993)

그래, 사랑하는 내 제자들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은 벽이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벽, 넘을 수 없는 벽,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제자들이 담쟁이의 생명력을,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약하고 어린 이들이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절망의 벽을 타고 넘기를 희망한다. 푸르게,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듯 넘기를 바란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 가수 백자가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도종환 시인은 자신이 저 시 담쟁이를 쓸 때는 선생 노릇하다 해직되어 복직투쟁을 벌리면서 세상이 너무 절망적이고 막막하기만 했었다면서, 모두가 갇힌 벽일 때 푸르게 푸르게 서로 손에 손을 마주 잡고 그 높은 담을 덮으며 넘는 담쟁이를 보고 깊이 깨닫고 쓴 시가 바로 담쟁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절망에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보는 눈, 그것은 시인의 몫이다. 그 시를 읽고 감동하든지 말든지는 독자의 몫이다.

최근 철책선 부근의 목함 지뢰 폭발을 둘러싸고 남북이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인 마라톤 협상 끝에 화해가 성립하였다. 필자는 위 과정을 지켜보면서 “북한은 전쟁을 원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여전히 일부 강경론자들은 북한이 곧 쳐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남북 간에 전쟁을 해서라도 북한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고 호전적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은 지난 달 31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목함지뢰사건에 대한 '8·25 합의' 이후 변화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을 계기로 도발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 측면이 있다.”는 전망을 국제적으로 공공연히 밝혔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거의 유언비어 수준의 황당한 예측이다. 남한이 대북심리전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이 서둘러 남북 간 대화를 제기하였고, 마라톤협상 끝에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전쟁 억지에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이러한 협상을 성사시키자마자 강경론자인 백승주 국방부 차관이 초를 치고 나온 것이다. 남북 간 합의를 통해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되고 금강산관광이 현실화되는 방향으로 남북협력이 진척되려는 것을 차단하려는 군부 강경세력의 “물꼬바꾸기전략”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위 8·25 합의에 김관진 안보실장과 함께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참가하여 위와 같은 합의를 얻어내고 남북이산가족상봉 등 뭔가 남북화해무드 및 통일을 위해 통일부가 오랜만에 제대로 일을 좀 해보려고 하자 반대 입장에 있는 국방부가 태클을 걸고 나온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각본에 쓰여 진 것처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도 지난 1일 “한반도는 쉽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는 견해를 밝히며 백승주 국방부차관의 염려에 힘을 실어 주었다. 불행하게도 위 카터 국방부 장관의 말에서 미국도 남북한이 화해무드로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자주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조금은 기분이 나빠지려고도 하였다. 한국군과 미군의 초계기가 남북군사분계선 위를 비행하고, 모든 화력이 북한의 군사시설을 겨냥하기에 이르자, 북한이 먼저 서둘러 대화를 제의하였고, 북한군서열 1위인 황병서 북한군총정치국장이 전면에 나서 남북 합의를 이끌어내었다. 그들이 미군의 지원 하에 벌어지게 될 전쟁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남북 간에 사소한 사건이 발생하여 큰 전쟁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도 자신의 힘의 크기를 잘 알고 있기에 남북 간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표출되었다. 오히려 남한의 강경 세력들이 전쟁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입지를 확장하려는 정치적 셈법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기조차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기념 70주년 행사에 참가하였다. 한미군사동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이번 방중은 어려운 결단이었던 것만큼 한중 양국에 있어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중국과의 경제교류와 외교강화를 위해서도 잘 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특히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북한의 전쟁억지를 위해서도 중국이 외교력을 행사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 정상은 불참하였다. 다들 협소하다. 이럴 때 미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함께 참석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이루어나가자고 합의를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절벽을 넘는 담쟁이만도 못한 게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승전국은 미국이고 최대 패전국가는 일본이다. 그 중간에 중국과 한국이 있다. 가장 큰 힘을 가졌던 미국과 패배의 굴욕을 뼛속 깊이 맛보았던 일본 정상이 서로 마음을 합하여 불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엔군으로 마지막 순간에 참전해 손도 안 대고 승전국의 일원이 된 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광복은 되었지만 일본과 우리가 전쟁을 해서 승전했다고 보기도 어려운(물론 독립군들의 피땀 어린 광복투쟁이 전개되었지만)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전승절 기념행사를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순간 국회 교섭단체 대표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동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치개혁을 위한 오픈프라이머리, 국민 공천제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청년 고용을 증대하고 고용의 유연화를 강조하였다. 교육 개혁을 위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역사교육을 위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도입하고, 금융 개혁을 위한 관치금융해소를 주장하였다.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와 시장 지배력의 남용 및 불공정 거래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연설문 곳곳을 들여다보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책임에 대해서는, 잘못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 화려한 수사의 나열만 있을 뿐, 실천적 의지와 방안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국립대 총장 간선제의 강제로 부산대 고현철 교수가 학교 건물에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항의를 한 의미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자치는 헌법에 보장된 헌법정신임을 무시한 채 직선제 폐지로 방향을 정한 것은 반헌법주의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의 철벽화를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담쟁이들은 아무도 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상태에서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한 뼘일지언정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푸르게 그 절망을 잡고 벽을 오른다. 그것도 담쟁이 잎 하나가 수천 개의 담쟁이 잎을 이끌고 오른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담쟁이의 벽 오르는 모습을 본다면, 고속촬영기로 촬영해서 빠르게 돌려본다면, 아마도 얼마나 치열하게 담쟁이들의 하늘 향한 몸짓이, 손짓이 처절한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제도 올랐고, 오늘도 오르고, 내일도 오를 것이다. 필자도 한 학기 동안 보타이를 매고 열심히 제자들에게 봉사할 작정이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가 담쟁이가 되어 절망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편 가르고, 불공정과 불평등을 조장하려는 거대한 벽들이 곳곳에 쳐지겠지만, 담쟁이들은 쉬임없이 벽을 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에서 돌아오면, 젊은이들에게 벽이 되고 있는 절벽의 담, 추락의 담, 분열의 담, 편가르기의 담을 허물고 6ㆍ25전쟁 교전국이었던 중국과 손을 잡고 한중상호우호관계를 이룩한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한 잎의 담쟁이가 다른 수천 개의 담쟁이 잎을 붙잡고 가듯, 스스로 담쟁이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벽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제발 스스로 담쟁이가 되어 절벽을 넘는 최초의 담쟁이 한 잎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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