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작자 동의없는 예술작품 폐기는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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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원작자 동의없는 예술작품 폐기는 위법”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5.08.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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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도라산역 벽화’ 일방적 철거행위에 위자료 지급 

유명 화가 A씨는 B기관으로부터 전시용 벽화를 의뢰받아 작품을 완료, B에게 건넸다. B는 벽화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작품을 일부 변형해 전시했다면 B는 어떤 유책할까, 무책할까. 통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권법상 A에 대한 저작인격권 침해가 성립한다.

하지만 작품을 전시 중 B가 A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벽화를 폐기하고 C의 작품으로 대체했다면 어떻게 될까. 미술작품이라는 유체물 자체를 폐기하는 행위는 소유권의 행사로써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기존 국내 다수 학자의 견해였지만 이에 대한 법원의 선례는 전무한 상황.

이같은 경우, 위법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7일 미술가 이반(75)씨가 경의선 철도 도라산역에 그린 벽화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철거·소각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2다204587)에서 “국가가 이씨에게 1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논란이 된 미술가 이반(75)씨의 도라산역 벽화사진의 일부 / 제공: 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는 특별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국가의 의뢰로 벽화를 설치한 만큼, 상당기간 전시되고 보전되리라고 기대했다”면서 “국가로서도 해당 벽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홍보까지 했으므로 단기간에 이를 철거할 경우, 이씨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이 침해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해당 벽화의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철거를 결정하고 그 원형을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했다”면서 “이같은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해 위법하고, 벽화 폐기행위로 인해 이씨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저작권법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의 저작인격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으나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가 이같은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씨는 통일부 의뢰로 2007년 5월 도라산역사 내 벽면 및 기둥들에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14점의 벽화들로서 반복·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도라산역 내에 ‘첩부벽화’의 형태로 설치돼 벽체로부터의 분리도 용이하지 않도록 제작·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는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방법으로 벽화의 의미에 관해 이씨와 수차례 협의했고 설치 이후에는 벽화의 가치와 의미를 소개하는 책자를 작성해 적극적으로 홍보도 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작품 설치일로부터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벽화를 철거하기로 결정, 해체 중 벽화도 크게 손상시켰다.

이씨는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 침해, 예술의 자유 등의 침해를 주장하면서 위자료의 지급을 구했지만 1심은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동일성유지권 침해는 부정하면서도 별도로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의 침해는 인정된다고 판단, 위자료 1천만원의 지급을 명하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보호를 바탕에 두고 적극적으로 국가배상법과 같은 개별 법률을 해석한 것”이라며 “국민의 권리구제를 실현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국가의 문화발전 정책이라는 헌법상 의무에 무게를 실은 면도 있어, 개인간 창작물에 대한 일방적 철거 또는 훼손에 대한 종합적 법리를 표방한 것은 아니어서 향후 유사 판결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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