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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연평해전, 리더십,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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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연평해전, 리더십, 애국심
  • 신희섭
  • 승인 2015.07.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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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영화 『연평해전』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논쟁 몇 가지를 남겼다. 최근 한국사회는 영화가 영화자체로 끝나지 않고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간의 대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작심하고 이렇게 만든 영화도 있고 제작의 의도와 달리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는 영화도 있다. 연평해전도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해석의 소용돌이에 있다.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동원하는가는 ‘자유’의 문제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탄생한 자유주의는 이렇게 도덕적 해석과 판단을 개인에게 넘겨주었다. 따라서 개인들의 ‘논리’가 다른 이들의 논리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타당성과 설득력이 중요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논리를 가지고 다른 이들의 도덕적 논리에 대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핵심에는 도덕의 본질 즉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가치 논쟁, 이데올로기 논쟁을 거치는 이유는 도덕의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에게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게 되고 이것을 두고 더 설득력을 얻으려는 인정투쟁 즉 정치적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어찌되었든 영화 『연평해전』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그 해석을 둘러싸고 각자의 논리를 만들며 갈등하고 있다. 진영의 논리만이 연평해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로서 남북관계의 얽힌 실타래가 있다. 한국전쟁이후 몇 차례의 해전이 연평해전의 배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제기된 문제로 “1차 연평해전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가?”와 같은 질문이 남게 된다. 1999년 1차 연평해전에 대해 한 가지 진보적인 입장의 해석에 따르면 전쟁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전쟁법과 관련해서 정의의 원칙은 ‘전쟁목적의 정의’와 ‘전쟁과정에서의 정의’로 나뉜다. 1차 연평해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1차 연평해전의 전쟁수행과정이 정의롭지 않다는 점을 들어서 전쟁법위반을 주장한다. 따라서 2002년 북한의 보복은 전쟁법상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 된다. 이 주장이 과연 전쟁목적의 정당성을 건드리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한 반박을 별개로 하고, 전쟁법을 불러들이면서 까지 대한민국을 거부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것이 과연 영화가 던진 화두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일까? 자유는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정치적 난제가 생긴다. 개인들에게 해석의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남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 정치적 난제이다. 이 문제는 공공선이라고 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 개인의 선호와 판단보다 우월할 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정치학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

공화주의이론을 빌려오면 개인을 넘어서는 공공선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서 공공선이라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개인의 자유영역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 중 어느 정도가 합의해야 하는지 즉 만장일치가 아니면 안되는 것인지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는 공공이익과 공공선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선 즉 객관적 기준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론을 넘어서서 연평해전이 던지는 공적인 화두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애국심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애국심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두 번째는 리더십과 관련된 문제이다.

연평해전을 보고 났을 때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들이 많다. 리더십은 이 분노와 관련되어 있다. 리더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노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인지? 대한민국의 장병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도울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인지? 이런 비극을 만들어내는 분단의 상황과 분단의 모순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인지? 군의 지도부가 정치적인 결정에 따르는 것에 대한 분노인지? 사병들은 열심히 싸우는데 책상에 않아서 단지 머리로만 판단을 하는 이들에 대한 민주주의적 분개인지? 아니면 정치지도자가 순국한 이들에 대해 예우를 하지 않고 일본 월드컵결승전을 갔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인가?

두 번째 주제인 리더십에 대해서는 평가가 사람들 마다 다르다.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객관화되어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겁함이 리더십이 될 수도 있고 용감함이 리더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리더십이 결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과정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논의하면 답을 찾기 어렵게 된다. 2002년 연평해전에서 확전을 피했다는 점을 리더십으로 볼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해군이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여 북한이 위기상황을 만들고 이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다음 세대에 부담을 덜 주는 것도 중요하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리더십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 주관적 판단을 떨쳐내기 어렵다. 리더십을 이야기 하면 실체로서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며 지도자에 대한 주관적인 선호를 배제하고 지도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리더십의 객관화가 얼마나 어려우면 여전히 수 많은 이론가들이 아직도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겠는가!

첫 번째 주제인 애국심도 주관적이다. 애국심은 개인이 자신의 국가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개인이 느끼는 심리를 집단화하는 것이다. 애국심 역시 개인이 느끼는 심리라는 점에서 리더십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주제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얼마나 더 사랑하는지를 평가 할 수 없는 것처럼 애국심 역시 국가를 위한 감정인데 누가 더 애국심을 가졌는지를 평가하는 것 역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은 개인이 국가라는 집단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리더십보다는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우리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 국가를 사랑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문제가 덜 개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애국심과 애국주의는 그 자체의 이론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의 공화주의와 로마의 공화주의에서 출발하여 민족주의로 연결되기도 하는 이론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애국심의 본질에는 무엇이 있는가? 국가를 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왜 나보다 국가가 중요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을 바꾸면 “언제 국가보다 나 자신 즉 개인이 중요해졌을까?”로 바꿀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은 유한성으로 인해 개인이 공동체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할 수는 없었다. 인간자체의 생존을 이끌어가지 위해서는 (이름은 시기마다 달랐지만)국가라는 공동체가 중요했다. 애국심은 용어는 다르지만 그리스시대 폴리스에 대한 애정과 로마 시대 공화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도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민족주의가 만들어지면서 애국심은 마치 민족주의와 동일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민족은 영토와 조직으로서 국가보다는 소속된 공동체구성원과 문화와 혈족집단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것은 국가라는 공동체와 구성원인 인간집단에 대한 애정을 포함한다.

그렇다고 할 때 왜 인간은 공동체에 애정을 가질까?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애국심은 인간이 가진 자기에 대한 애착을 넘어서는 공공성에 대한 애착과 자기 헌신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기여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행동에 대한 정당성 뿐 아니라 경외감을 가져온다. 애국주의가 감동을 주는 부분은 보통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경외감에 있다. 나를 돌보기보다 국가를 돌보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도 애국주의자의 의연한 자기희생은 자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애국심으로 유명한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자기를 버릴 정도로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연평해전』이라는 영화에서 우리가 받는 감정의 핵심에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이 다시 리더십으로 돌아가는 것도 정치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이 애국심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누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지도자인가?”

질문은 있다. 과연 답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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