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분쟁을 분쟁으로 해결하려는 한심한 대한민국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분쟁을 분쟁으로 해결하려는 한심한 대한민국
  • 오시영
  • 승인 2015.04.03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이 세상사, 살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자는 무섭다. 그렇다고 죽었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여 영원한 문제, 영원한 갈등으로 남아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죽인 자를 죽은 자가 처벌하는 역사의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났다고 우긴다고 끝난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끝난 것을 끝나지 않았다고 우겨도 끝난 것은 끝내 끝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현상 중의 하나는 “끊임없는 분쟁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사회현상이다. 사회를 끊임없이 갈등과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 세상을 아주 시끄러운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는 능력이 없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분쟁의 시소게임을 벌리도록 하여, 시소에 올라타 있는 사람을 멈추게도 내려오게도 하지 못한 채 두렵고 허기지게 만들다가 결국은 지쳐서 혼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란,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여 해결해 나가는 사회 마지막 시스템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라고 국민들이 혈세를 내어 정부 조직이 순환되도록 돕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여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그런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은 저항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를 전복시키거나 정치지도자들을 내어 쫓기도 한다. 국민의 힘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기에 정치가들은 항시 깨어 자신을 성찰하며 국가안보와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4월이다. 눈부신 4월이다. 아니 잔인한 4월이다. 영국의 시인 TㆍS 엘리어트가 꼭 100년 전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차라리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노래한 후 우리는 곧잘 4월은 잔인한 달이 노래하곤 한다. 대한민국의 4월은 민주주의 큰 싹을 키우기 위해 해마다 반복적으로 잔인하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하야를 하고 망명길에 오른 이래, 4월은 독재정권시절 신학기를 맞는 대학생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눈뜨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말살되어가는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잔인한 달이었다. 그 4월에 우리는 세월호참사라는 또 다른 잔인한 기억을 더하게 되었다. 이 기억이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시인 엘리어트는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버린 1차 세계대전의 절망 속에서, 온 세상이 죽음의 황무지로 변해버린 현상 앞에서, 그래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에 잠든 뿌리가 깨어나기를 갈망하며 황무지에 감추어진 희망을 노래하였다. 우리도 엘리어트의 황무지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에서 개나리를 피워내고 진달래를 피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이 상식적인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을 정치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 하지만 거꾸로 가는 정치를 보면서 신의 보복이 내려지지 않을까 필자는 두려워진다. 오랜 가뭄 끝에 엊그제 봄비가 조금 내렸지만, 아직 봄이 완전히 온 것 같지가 않다. 당나라 시인 동백규는 절세미인 왕소군이 흉노족에게 볼모로 잡혀가 북방에 머물 때의 심정을 “春來不似春”이라 하여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라고 노래했다. 사람의 마음에 봄이 와야 진정한 봄이 온 것이지, 세상이 하수상하여 우리 몸과 마음이 쓸쓸하면 봄이 왔으되 진정한 봄이 아니다.

1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나섰던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의 승객이 불귀의 객이 된지 어언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호특별진상규명위원회가 법이 제정되고 몇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고 예산확보도 되지 않아 실재 조사활동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정부에서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세월호특별진상규명위원회가 제대로 진상규명을 할 수 없도록 독자적 조사권한 등을 부여하지 않고 있어 허울뿐인 조사기구로 전락할 개연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든 진실규명을 훼방하려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진상규명위원회뿐만 아니라 유가족 및 관련단체들이 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며 실질적인 조사권한을 부여하고 확실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산 및 인력 등의 확보를 보장하라며,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을 철회하고 재제정을 하라고 연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4월 1일, 만우절 날 거짓말 같은 정부발표가 있었다. 해양수산부가 그 전날 “제1차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를 열고 배상 및 보상 기준을 의결했다며 일방적으로 배상 또는 보상금을 얼마씩 주겠다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사건 진상에 대한 조사를 착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냥 돈을 주겠다고 해 버린 것이다. “죽은 자를 돈으로 사고, 산 자를 돈으로 회유”하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4월이 되자마자 서둘러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또는 보상금을 발표하는 정부의 의도가 너무 뻔해 보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이 다시 한 번 분노하고 있다. 희생자 304명 중 단원고 학생에 대해서는 1인당 평균 4억 2천만 원, 단원고 교사는 1인당 평균 7억 6천만 원 정도의 배상 또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 한다. 일실수익(사망으로 인한 소득 감소분)으로 학생이나 가정주부는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도시 일용 근로자의 일당(1일 8만 7,805원)으로 계산한 금액으로, 위자료는 법원이 인정하는 교통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 액수인 금 1억 원으로, 장례비는 1인당 500만 원을 기준으로 하여 산정하였다고 한다.

전국민이, 아니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정부가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국가적 재난이었음에도 그들은 “단순한 교통사고 피해자”로 매도되어 버렸다. 배상 또는 보상이라는 말을 쓰면서, 정부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필자는 마음이 어지럽다. 배상과 보상은 법률개념이 엄연히 서로 다르다.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즉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그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지급하는 금전이다. 반면에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인한 대가의 보전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도로건설을 위해 개인의 땅을 강제수용할 경우 이러한 공공수용은 적법한 법집행이기 때문에 보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처럼 배상과 보상이라는 말은 가해자에게 잘못이 있는가 없는가를 구별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정부, 해양수산부는 “배상 또는 보상”이라는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엉거주춤한 표현을 쓰며 “그냥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을 줄 테니, 너희들이 그 동안 1년 가까이 떠든 것은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주장했지만 실재로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게 본심 아니냐, 그러니 그 본심에 맞게 돈을 적당히 줄 테니 ‘그 돈을 먹고 떨어져라’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완급이 있다. 위자료도 단순과실에 의한 교통사고 피해자인지, 아니면 살인과 같은 고의범에 의한 피해자인지 여부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가해자의 가해의사의 정도가 다르고, 피해자의 죽음에 직면한 상태에서의 고통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배상과 보상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사후처리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특별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사하자는 특별법 제정에 사고 발생 후 반 년 이상이 걸리고, 그 법이 만들어진 후 실재로 조직을 구성하고 인력 및 예산 확보에도 반 년 가까이 걸리는 이 참담한 대한민국에 진정 대통령은 있고, 정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가 났으면, 바로 그 날 사고 직후 정부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솔선해서 구성하고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하든 관련 부처로 하여금 하게 하든지 간에 정부가 앞장서서 사고를 규명하고, 진실을 소상히 밝혀 국민의 신원을 달래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런데 사고 발생 후 1년이 다 되어 감에도 아직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첫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통치철학이자 통치능력이다. 무능해도 이렇게 무능할 수가 없다. 그러니,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못했으니, “배상 또는 보상”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돈놀이”발표를 아무런 수치심 없이 해대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날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사건의 가해자인 김기종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있었다. 공소장 기재 범죄는 살인미수, 외교사절폭력행위, 업무방해 혐의 등이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100여명의 수사인력을 동원해 20여일 가까이 수사하였지만, 그의 지난 행적을 쥐잡듯이 뒤졌지만, 결국 단순범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중동 순방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득달 같이 “단독범인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힐 것”을 지시했고, 검찰은 이에 맞춰 모든 수사력을 동원했지만 결국 “태산명동서일필” 꼴이 되고 말았다. 304명이나 되는 자국민이 대명천지에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되는 참사에 대해서는 왜 위와 같이 추상같은 지시를 내리지 않는지, 특별법을 제정하고서도 왜 인력과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지 않은 채 조사위원회의 조사권한을 무력화시키는데 시간을 허비토록 하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해괴망측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상 또는 보상이라는 돈을 주겠다.”는 해양수산부의 일방적 발표는 나를 키득거리게 만든다. 웃다가 배꼽이 등 뒤에 붙어버릴 것 같아 그 통증이 만만치가 않다. 개콘만도 못한 억지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위정자들의 뺨은 과연 누가 때릴 것인가? 어찌 왕소군에게만 춘래불사춘이겠는가? 지난 1주일 내내 필자의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게 한 것은 방위산업과 무기도입을 둘러싼 도둑놈들의 문제였다. 국가안보를 망쪼(망조라는 표준어로는 어감이 너무 약하다) 들게 하고 국가예산을 눈먼 돈인 양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썩은 고기 쥐어뜯어 먹듯 먼저 먹은 놈이 장땡이라며 도둑질을 서슴치 않았던 도둑군인들에 관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외상성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 세월호참사를 둘러싼 정부의 해법이 너무 치졸하여, 다시 한 번 국민을 절망케 하는 세월호 문제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상 또는 보상? 죽이냐 밥이냐? 똥이냐 된장이냐? 주겠다는 돈이 네 돈이냐 국민 세금이냐? 슬픔 앞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상대로 지금 장난 치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