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유가전쟁과 국제질서의 재편가능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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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유가전쟁과 국제질서의 재편가능성 (1)
  • 신희섭
  • 승인 2015.02.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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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황량한 벌판에 두 사람의 무사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바람이 벌판을 지나면서 적막함이 황량함을 넘어선다. 두 사람은 칼을 꺼내 들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서있다. 고요 속에 바람만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자객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무슨 이유에서 벌판에서 칼을 들고 마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경쟁상황에서 한 사람이 물러서지 않으면 적막한 대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칼을 꺼냈기에 누군가 먼저 달아나거나 상대방을 베지 않으면 대립된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무협지에 나올 듯 한 상황이 우리 현실에서 진행중이다. 기름을 둘러싼 장기적인 대치가 그것이다. ‘유가전쟁’으로 불리는 이 대치상황은 현실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름 값이 급락하고 있고 이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유가전쟁의 변화를 실감나게 한다. 1월 30일을 기준으로 전국최저 휘발유가격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상평주유소가 기록했다. 이 주유소의 기름 값은 1,245원이었다. 2011년에는 주유소에 따라 휘발유 가격이 2,300원을 넘어서는 곳들이 있었고 전국평균휘발유 값이 2,000원을 넘어섰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하락한 것이다.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1월 말에 들어오면서 다시 반등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3월에 배럴당 122달러를 넘어서 최고점을 찍었던 가격은 뉴욕텍사스산 원유를 기준으로 2015년 2월 5일 현재 48달러로 하락해있다. 이렇게 유가하락을 가져오고 있은 이유는 미국의 셰일가스 때문이다.
  
미국이 2009년부터 셰일가스를 생산하면서 석유수입을 하지 않게 되자 국제 원유시장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석유산유국들은 거대 고객 미국을 잃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에너지 생산국가가 되어 자국에서 생산한 가스를 수출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하자 석유가격인하를 무기로 하여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셰일가스의 생산 단가가 높다는 점을 알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여 가격인하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중동국가들이 석유를 캐내는데 드는 비용은 배럴당 12달러 선인데 비해서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석유를 기준으로 할 때 배럴당 37불에서 100불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중동국가들은 저가로 기름을 공급함으로서 미국의 셰일업자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으로서는 1990년대 IT 산업의 도약이후 새로 온 성장기회를 높치고 싶지 않다. 미국정부는 미국경제를 새롭게 부흥하게 할 수 있는 셰일가스 생산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하여 이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미국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싶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향후 100년간 쓸 수 있고 일자리를 60만개 이상 늘릴 것으로 이야기 한 셰일가스는 미국경제와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의 유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인 것이다.
  
유가전쟁은 게임이론의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통해서 비유할 수 있다. 치킨 게임이란 비겁자 게임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영어로 chicken이라는 단어에 겁쟁이 혹은 비겁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치킨 게임은 미국에서 하는 담력게임을 묘사하는 것이다. 서로 용기가 있다고 자랑하던 이들이 담력을 겨루기 위해서 자동차를 서로 몰고 돌진하다가 누군가 먼저 핸들을 돌려서 충돌을 피하게 되는지를 겨루는 게임이다. 여기서 충돌을 먼저 피한 사람이 겁쟁이인 치킨이 되고 끝까지 용기를 과시한 사람이 게임의 승자이가 되는 것이다. 과거 영화 중에 제임스딘이 나왔던 ‘이유없는 반항’에서 절벽을 향해 차를 몰고 가다 누가 먼저 차를 멈추는지를 겨룬 장면도 이 치킨 게임을 그린 것이다.
  
앞서 묘사한 대로 미국과 중동산유국들은 자동차를 몰고 서로를 향해서 돌진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향해 자신이 승자가 될 때까지 상대방이 치킨이 되도록 다양한 압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 게임의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서로 실제 충돌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충돌로 서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기대하는 이익이 사활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상호충돌로 사망할 수 있다는 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서로 충돌을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동차를 슬그머니 돌려 담력게임을 취소하지도 않는다. 칼은 이미 칼집을 나왔고 누군가는 반드시 승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유가전쟁이 만약 치킨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고 각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이 게임의 핵심에는 ‘평판(reputation)’과 기다림이 있다. 누가 더 용기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은 자신이 주변사람들로부터 어떤 평판을 받는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이익보다도 내가 보여지는 것과 주변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게임의 행위자들이 평판을 신경 쓴다면 남은 문제는 시간이 누구편이지에 달렸다. 기다리면서 상대방의 수를 잃고 여기에 반응하면서 먼저 상대가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멋지게 칼을 빼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긴다. 이런 문제들은 이 게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시간적 지평(time horizon)을 변화시킨다.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경제에 고통이 생기게 되면 국내여론이 나쁘게 작동하는 것이다. 사우디와 달리 베네수엘라는 석유가격하락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아서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다. 세수가 줄어들자 국내정치에 사용하던 복지예산을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는 베네수엘라시민들을 분개하게 만들었고 소요사태 직전까지 이끌어 가고 있다. 이것은 자국 내의 정치적 압박과 자신이 승자가 되어 받게 될 국제적-국내적 평판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 과정에서 국제적 승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국내적 곤경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즉 힘이 필요하다. 다른 자원이나 자본이 많아야 하고 국내정치에서 정권과 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강력해야 한다. 자칫하면 몇 나라들은 2011년 아랍의 봄과 같은 국내정치적 격변을 맞이할 수도 있다.
  
암석인 셰일 층에 매장된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채굴비용이 낮아졌고 이것으로 인해 미국 내의 새로운 골드러시가 생긴 것이 이 게임의 출발점이다. 셰일가스를 두고 이것이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는 낙관적 기대가 2013년까지는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2013년  파이낸셜 타임즈가 셰일 붐에 경고를 날리면서 셰일 버블론이 고개를 들었다. 양 진영간 논쟁의 핵심은 세 가지로 과연 셰일가스가 안정적으로 공급이 지속될 것인가와 이렇게 채굴해내는 것이 상업성이 있는 것인지와 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을 감내하면서 셰일가스를 퍼내는 것이 타당한지여부이다. 셰일가스가 지지부진한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대체하여 인류에게 60년 치 이상의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채취할 때 사용되는 수압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인해 지질변화를 가져오면서 지진을 유발하거나 지하수오염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에 환경재앙을 가져오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석유가격의 인하가 이러한 셰일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반영한 시장의 합리적 선택이라면 셰일가스의 공급이 지속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치킨 게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가전쟁은 유가하락이라는 피부에 와 닿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거대 변화를 숨기고 있다. 거대 변화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에너지 시장의 재편에 따른 에너지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위상변화와 국제에너지 시장의 지형변화이다. 두 번째는 에너지를 필두로 하는 자원 확보에 따른 국제적인 역학관계의 변화이다. 두 번째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미국중심의 패권질서가 계속 유지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미국패권질서의 쇠퇴를 당기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국제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현재 단극질서의 변동논의와 연결되어 있다.
  
셰일가스와 미국의 현 패권질서의 유지 여부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 다음 시간에는 셰일가스의 특성과 영향을 통해서 국제적 역학관계 변화까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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