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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정치란 무엇인가? : 보고 판단하고 실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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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정치란 무엇인가? : 보고 판단하고 실행하기
  • 신희섭
  • 승인 2015.01.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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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얼마전 공중파프로그램에서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의 취업문제와 결혼-출산 문제를 진단한 것을 보았다. 몇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취재한 이 프로그램은 아르바이트생들의 고단한 생활을 보여주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생계를 위해 지하철공사장에서 일하는 모습과 비정규직노동자가 갑작스러운 해고로 결혼을 미루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한 직장엄마는 한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3포시대’라는 용어가 어떤 현실인지를 좀 더 세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하고 사는 젊은 층을 나타내는 3포시대의 어두운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이 프로에 나온 사람들이 이 시대의 젊은 층 모두를 완전히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을 통해서 사회현상을 일반화하는 것이 타당성을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화면 중간 중간에 나오는 한국 사회의 통계는 프로그램에 나온 이들의 모습이 현재 한국사회의 단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프로그램 후반부에는 일본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교”의 관점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경제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에서 인구가 급감하고 있고 동경에서 빈집들이 늘어나는 모습은 일본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암울한 예언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에서 지금과 같이 두 사람 중 한사람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해도 결혼한 두 사람이 아이를 한 명 낳겠된다면 100년 뒤에 한국인구는 2천 만명선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런 추세가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의 수는 단군시대의 부족국가 수준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젊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아주 간단히 이야기 하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한국경제구조와 소득대비 높아진 집값과 살인적인 물가가 그 원인이 될 것이다. 청년층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고 경제활동을 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돈을 모으면서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 직장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고 연애-결혼- 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사슬에 자신의 미래를 엮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에서 합리적인 이들은 미래보다는 현실을 택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에서 제시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개인들이 모험적인 행동이나 위험한 행동도 마다 하지 않게 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있는 경우에는 현재 위험한 행동이나 조급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반면에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에서 더 나빠질 수 있는 미래를 피하기 위해 조금은 덜 나쁠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도박과 자살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인간이 미래에 대한 예상에 기반해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세가지 포기라는 행동방식은 한국 미래의 전망에 대한 우울한 방증이다.
  
3가지 포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대한 선호가 비자발적인 실업을 만든다는 설명도 있다. 중소기업은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실제 중소기업주들의 불만도 많이 나온다. 결혼과 육아도 보호만 받던 세대들이 누군가를 보호하기 어려워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이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신문과 공중파에서는 사춘기아이들의 문제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중2병’으로 대표된다. 중학교 2학년때 사춘기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주체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탈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2병이다. 이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북한군이 기습도발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집단 폭행과 왕따와 교권무시 가출과 임신과 영아유기들은 뉴스매체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들이다. 
  
속칭 중2병은 아이들의 신체적인 성장 속도가 과거 보다 빨라지고 인터넷등의 환경에 노출이 빈번해진 것들이 겹쳐서 생겨난 문제로 보인다. 신체적 성장이 정신적 성장보다 빨라지면서 자신을 컨트롤 하기 어렵게 되어 생기는 사춘기를 요즘 아이들이 좀 더 일찍 그리고 좀 더 격하게 앓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따져볼 것은 과연 이 아이들이 과거와 많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과거에 10대의 사춘기를 심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아이들의 행동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몰래 담배도 피워보고 모여서 소주도 마셔보고 직간접적으로 가출해보기도 하고 패로 몰려가서 싸움도 해보고. 그런데 30대와 40대만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까? 부모님 세대는 그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았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 또 달랐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세대도 그 사춘기의 터널을 다 지나왔고 유사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이들 세대도 “어린 아이들이 버릇없다”거나 “젊은 이들의 철없는 객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세대의 청소년들과 약간의 차이는 날 것이다. 대가족이었을 것이고 대가족 내에서의 사회화 기능이 있었기에 1차집단의 역할이 컸을 것이고 사회 자체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외부환경에 대한 노출이 적었을 것이고 청소년들이 조직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관심을 좀 더 받았을 것이고 주변에 뭐라고 꾸짓는 어른들이 좀 더 많이 있었을 것이다.
  
뉴스에서 아니면 주변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너무나도 쉽게 인정하게 되는 청소년문제는 자칫하면 아이들 전체가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있고 그래서 손을 쓸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쉽게 받아들이면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라기 보다는 주변의 생각을 그저 따르는 것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쪽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적이지 않으며 일정 정도의 노력을 통해서 정보를 걸러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음으로서 주변여론이 주는 편안함에 안주하게 된다.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여론이라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안주하면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첫 번째는 주변사람과 화합하고 있다는 공동의식과 동류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인이 인정한 사안에 대해 그 정도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전지적작가시점처럼 사회를 객관화하여 방관적으로 이해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이 문제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서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치를 공부하는 것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3포시대라고 하는데 3가지를 포기한 이들이 많을까 아니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3가지가 포기되는 것일까 아니면 기회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포기라는 용어는 선택가능성을 가지는 것인데 선택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을 때 포기라는 용어는 사치스러운 언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포기는 젊은 층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담론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3가지에 대한 기회가 주어질 확률이 낮아지거나 선택에서 배제되거나 실제 체념하게 되면서 개인만의 공간에 갇혀살게 된다면, 그 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몰두한 기성세대의 탐욕이 가져온 높아진 사회적비용탓인지 아니면 나빠진 대외 경제여건탓인지?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해결가능성을 포기하고 그저 고통스러운 인생을 받아들이며 희망이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사춘기아이들 문제의 경우에 이들이 과연 과거보다 잔악해진 것인지? 비행청소년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비율은 동일한데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어 우리가 더 많은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는 ‘신화’에 빠진 것은 아닐까?
  
정치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회내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진짜 그럴까?”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주변의 현실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객관화하여 관찰하기도 해야 한다. 또한 다른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귀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간단히 이야기 해서 자신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좀 더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정치학이 지향하는 목표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이렇게 “보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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