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5세기 일본에서의 한반도 문화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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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5세기 일본에서의 한반도 문화의 확산
  • 오태진
  • 승인 2015.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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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 한국사

1. 무기, 토기, 묘제의 변화

5세기 경 일본 열도에서 보급 확산되기 시작한 대표적인 한반도계 문화로는 철제갑옷과 무기 등 선진적인 무기, 무장 체계의 보급과 확산, 한반도 삼국시대 대표적인 토기인 도질토기의 일본열도 내 생산과 보급, 횡혈식 석실분의 보급과 확산이라는 묘제의 변혁, 그리고 부뚜막과 시루를 이용한 새로운 취산, 난방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들 수 있다.

철제 무기, 무장 체계의 경우 5세기 경이 되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철제무기의 경우 한반도에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기마전에서 유효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가는 슴베를 가진 중, 소형 환두대도가 일본열도에서 성행하기 시작한다.

철제갑옷의 경우 특히 가야 등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기 시작하였던 단갑의 형식상 다양화와 제작상 규격화, 정형화 양상이 일본열도에서 두드러진다. 더욱이 마주(馬冑), 마갑(馬甲), 괘갑(挂甲) 등, 이미 가야에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보이는 고구려계 기병 무장체계가 일본 열도에도 도입된다.

이러한 일본열도에서의 철제 무기, 무장 체계 변혁은 4세기 경부터 한반도 특히 가야에서의 제작기술 제공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전엽 낙랑과 가야, 왜 등을 연결한 광역 교역 시스템이 낙랑의 붕괴와 더불어 해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급격하게 대두된 고구려의 위협으로 인하여 가야와 왜 등은 경제력, 군사력의 근간이 되는 안정된 철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새로운 광역 시스템의 성립이 절실하였을 것이다.
 
가야에서 낙랑으로의 철 수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성립한 새로운 광역교역시스템은 가야에서 왜로의 철 수출, 수입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야는 환두대도와 철제 갑주 등 무기, 무장 제작 기술을 왜에게 제공하였던 것이다. 또한 5세기 경부터 왜와 낙동강 이서의 가야 서부지역, 백제 지역과의 교역 루트 다양화가 활발해지는 양상도 5세기 경 일본 열도에서의 무기, 무장 체계 변혁에 박차를 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5세기 경 일본열도에 도입되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한반도계 스에키 토기는 연질토기 문화에서 경질토기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획기적인 토기문화의 변혁이었다.

이러한 경질토기는 오사카의 스에무라 가마 유적의 발굴을 통하여 분명해진 것처럼 터널식 가마를 구축한 후 가마에서 고열로 구워지는 방식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공인들에 의해 일본열도에서 생산하기 시작하였던 대표적인 한반도계 문화이다.

5세기경 보급되기 시작한 횡혈식 석실분은 대표적인 한반도계 묘제 문화의 도입과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북부 규슈의 로시고분, 스키고분 등 4세기 말 경에 일본 열도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이지만, 왜의 중앙 권력이 소재한 기나이 지역에서는 오사카 다카이다야마고분의 예처럼 5세기 말경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열도 고분의 매장시설로 정착되고 확산되기 시작한다.

횡혈식 석실분의 도입과 더불어 사후세계에 관한 사상도 도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반영하는 매장의례의 변혁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는 일본의 국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신도(神道)의 성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2. 취사, 난방 문화의 변화

한반도에서 성행하던 부뚜막과 시루를 이용한 취사, 난방 문화가 5세기경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보급, 확산되기 시작한다. 3세기 후반경 북부규슈의 후쿠오카현 니시진마치의 경우와 같이 일시적으로 부뚜막과 시루를 이용한 한반도계 취사, 난방문화가 도입된 예도 보이지만 일본 열도에서의 본격적인 보급과 확산은 5세기 이후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한반도계 취사, 난방 문화가 일본 열도 주요부에서 보급, 확산되는 양상은 5세기경 왜의 한반도 내 교역 루트 다원화와 이에 동반하여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람들의 왕래가 이전보다 증가되고 활발해지는 고고학적 정황과 관련된다. 특히 5세기 이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계 취사, 난방 문화가 일본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주요한 배경 중의 하나로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왜 중앙 정권 및 지방 세력 내 선진문화 도입 창구역할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5세기 이후 왜인들의 활발한 대 한반도 교류 활동을 통한 취사, 난방 문화 등 선진적인 한반도계 생활 양식 문화 체험과 귀국 후 수용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반도 고대 국가 특히 가야와 백제는 왜와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특히 이러한 가야와 왜, 백제와 왜의 교류에 있어서는 가야와 백제 등 한반도 고대 국가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계 문화의 일본 열도 내 보급 확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원인은 왜가 고대 국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한반도 여러 나라로부터 철 등 필수 전략 물자 수입과 선진 문화 도입이 필연적으로 대두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가야와 백제 등 한반도 고대국가들도 왜와의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이익의 획득을 위해 왜와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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