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 신기루인가 실체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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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 신기루인가 실체인가?(2)
  • 신희섭
  • 승인 2014.11.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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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피케티의 주장은 불평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지만 가난한 이들은 가난을 벋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불평등으로 인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불평등은 연대의식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체내 합의를 달성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점진적으로 붕괴시킨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평등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피케티 이전에도 불평등문제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는 충분하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평등과 불평등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 한다. 사촌이 땅을 사는 것은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단지 사촌이 더 부유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절대적인 부를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인 부를 감소시킨다. 나의 부는 고정되어 있지만 상대방의 부가 더 증대함으로서 나는 상대적으로 부가 축소된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의 실험들에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부보다 상대적인 부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국 엄마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경우에도 자기 자녀의 절대적인 성적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쟁그룹에서 자녀의 성적이 어느 그룹에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드러났다.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상대적인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보다 절대적인 부는 증가했다. 2014년 현재 하위소득그룹의 절대적인 소득은 1970년대의 같은 그룹의 소득보다 높다. 하지만 문제는 전체소득이 더 많이 증가했을 뿐이고 부유한 이들의 부는 더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 다른 사람 보다 우월하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을 참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무시되는 것을 가장 피하고 싶어 한다. 더 나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 희소성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고가의 명품들은 이러한 희소성에 기반을 두어 차별화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라고 한다. 합리성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답은 단순하다. 세금을 통해서 불평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소득세를 걷는 것과 자본세를 걷는 것이다. 소득세는 최상위계층에 대해 80%에 가깝게 올려야 한다. 이 주장은 다른 이들의 주장과 차별화 되지 않는다. 피케티 주장의 특별한 점은 자본세를 걷자는 것이다. 거액자본가에게 2%의 자본세를 물리자는 것이다. 한 나라만이 자본세를 걷자고 하면 자본가들은 타국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날 것이다. 프랑스의 올랑드 정부가 정권을 잡자 프랑스의 대표대우인 제라르 드 빠르디유는 러시아로 세금망명을 했다. 이런 도피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국가들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모든 나라들이 합의를 하여 자본세를 거두게 된다면 세금 도피나 망명처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글로벌 자본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피케티의 주장은 그의 고국 프랑스에서는 그리 도발적인 주장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전세계에 이념의 중요성을 설파한 자부심 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념을 강조한 나라답게 그리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피케트의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국가보다는 시장과 자발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운영방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사회를 만들고 이후 국가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자발적인 질서를 강조하며 이것은 개척정신(frontiership)으로 대표된다. 시장에 대한 강조와 개인 간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불평등에 대한 강조는 미국인들이 보지 못하는 아니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개인위주 사회의 이면을 보게 한다. 이면은 항상 관심을 증폭시키는 법이다. 마치 야사에 더 흥미를 가지게 하고 정계와 재계와 연예계의 뒷이야기에 관심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피케티의 주장에는 어떤 논리적인 모순이 숨어있고 어떤 부분에서 반박을 받는가? 비판은 5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피케티가 주장하는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라 빈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인 빈곤이 아닌 절대적인 빈곤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여 피케티의 불평등에 대한 입장의 정반대에 서 있는 입장이다. 여전히 전세계 20억 이상의 인구는 하루의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더 부유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가난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아프리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같은 서구국가들 뿐 아니라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저소득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빈곤해결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피케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의 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300년의 역사 속에서 상위 1%가 지속적으로 자본을 증대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그 1%가 되는 사람들이 같은 집단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우리가 막연히 자본이 많은 이들은 다음세대에도 자본이 많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해나갔던 것이나 재력가문이 몰락한 예에서처럼 세대간 부의 이전이 일어나고 다음 세대가 그 부를 증대한다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 미국의 억만장자들 중 60%이상은 자신의 세대에서 부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피케티가 실증자료를 들이대면서 1%가 지속적으로 부를 확장한다는 주장은 신화(myth)에 가깝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성장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성장 동력이 만들어져야 전체 경제적 이익이 커진다. 이렇게 커진 이익을 나눌 때 불평등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여지가 있다.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이론가들이 많이 하는 것이다. 또한 성장론 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논리이다. 전임정부인 이명박 정부 역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통해 이 논리를 폈다. 더 커진 곳간에서 얻을 것이 많다는 논리를 통해서 지금 불평등을 논의하는 것이 시기 상조이거나 성장이 자연스레 불평등을 축소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치경제학의 반박도 만만치는 않다. 불평등도를 낮추고 실질소득을 보장했을 때 수요가 견인되어 성장을 증대했다는 여러 나라들의 실증적 자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자본가의 동기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가만히 두고 자본의 이윤에만 관심이 있다는 전제를 비판한 것이다. 실제로 건물과 같은 자본에 투자하여 임대수익을 내는 것이나 증권투자 등에만 자본가가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의 핵심은 도전정신의 자본가를 지나치게 현상유지 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논리로 빌 게이츠가 피케티 책을 평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빌 게이츠는 피케티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해법은 거부한다. 국가가 나서서 자본가의 자본에 손을 댈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기부를 권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번 것을 국가에 빼앗기고 국가가 이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나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내가 열심히 번 것이 마치 잘못한 일인 것처럼 사회가 평가하게 만든다. 반면에 기부는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나설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재단을 만들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부와 선행을 하는 빌 게이츠다운 주장이다.

마지막 비판은 피케티가 사용한 경제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들이다. 피케티가 사용한 공식이나 입증방식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새로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피케티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양극화로 대표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심화와 시장의 강화나 국가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 또 다른 관점에서 논의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피케티의 책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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