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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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가을이 오면
  • 차근욱
  • 승인 2014.10.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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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여름 볕이 싫어서 햇볕을 피해만 다니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다사로운 볕을 찾아 앉는 계절이 되었다. ‘아, 벌써 가을이로구나’, 싶은 기분이랄까. 영원히 사랑받는 노래를 만들고 싶거든 계절을 노래하라는 말이 있다.

뭐,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을엔 ‘가을편지’와 ‘가을이 오면’이 생각난다. ‘가을편지’는 보아의 노래가 차분해서 좋았고, ‘가을이 오면’은 그냥 이문세님 노래가 좋다. 두 분 모두 워낙 노래를 잘하시니까.

가을엔 ‘고엽’부터 생각나는 샹송도 좋고 칸소네도 좋다. 학생 때는 칸소네에도 무척이나 빠져 지내곤 했는데,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가을이 되어서야 ‘한번 들어볼까?’하게 되었다. 가을은 정말 음악과 노래가 잘 어울리는 계절인 탓인지도 모르지.

 
인감도장과는 달리 사용할 목적으로 근사한 도장이 하나 갖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 기왕이면 용이 조각되어 있는 도장으로. ‘용’에 대한 집착은 내가 숫컷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맹목적이다.

대학을 들어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머님께서 어느날 나를 부르셨다. 그러시곤 조심스레 장롱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는 것이 아닌가. 비단천으로 칭칭 싸매 놓은 돌덩어리같은 느낌이었달까.

‘뭘까?’,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살금 살금 천을 펼치셨고, 거기에는 용문양이 두껍게 조각된 벼루가 하나 있었다. 그 박력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정말 용이 그대로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선 굵은 조각품이었다.

어머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우연히 그 벼루를 보시고 너무나 갖고 싶으셔서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아 사셨단다. 그리곤 그 이후에도 아무리 어려워도 그 벼루만은 팔지 않으셨다고. 언젠가 내가 그 벼루를 갖게 되더라도 팔지 말고 어머님 마음을 간직하듯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근사한 이야기.

여튼 그 날 이후로 ‘용’은 나의 ‘로망’이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신체검사 따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면, 오른쪽 뒷 어깨쪽으로부터 가슴에 내려온 위치에 여의주를 문 용의 머리를 두고, 용이 몸을 칭칭 감아 왼쪽 발목에 용 꼬리가 내려와 있는 전신 용문신을 한번 해보고 죽을테다, 하고 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버님께서 아신다면 용서하시지 않으시겠지만. 후후후. 하지만 실은 ‘문신’이 겁나서 못하려니 싶어 그냥 생각만 그렇다. 거울보고 움찔 움찔 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이 100살이 가까워서 문신을 하면 무지 아프지 않을까요.

anyway, 나는 그날 어머님의 용벼루에 지지않을 용도장을 새기기 위해서 여기 저기 다니며 도장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전부 기계로 도장을 파는 추세라 내가 원하는 classic한 손으로 판 용도장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노량진역에 다달았을 무렵!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량진 역사 3층에 닿아있는 육교 끝 편에 손도장을 판다고 글씨를 써 놓으신 분이 계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은근슬쩍 다가가 어떤 도장이 있나 구경을 하다 결국 내가 원하는 용조각 도장을 발견했다.

딱 하나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곳에서 나의 명(名)인 ‘근욱(根旭)’과 자(字)인 ‘윤서(允瑞)’로 도장을 파기로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도장을 파시는 동안 나는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저씨와 도란 도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노량진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을 하기도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볕이 좋았고, 바람은 서늘했다.

도장 파시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외국 여자분을 비롯한 이런 저런 외국분들께서 길을 물어보시기에,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길을 쭈~욱 설명해 드렸다. 이마에 ‘길안내 상담환영’이라고 보이지 않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실은 내게 외국 분들이 길을 자주 물어오신다.

그 덕분에 길안내와 버스 및 지하철 안내 정도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나중엔 버스와 지하철 노선을 집에서 연구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뭐, 그렇게 노량진 역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자니 무슨 ‘서울 관광안내소’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노량진 역은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도장을 파 주시면서 아저씨는 이런 저런 재미있는 세상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런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다. 마침 갖고 있었던 음료수도 드리고 사이좋게 앉아서.

이 사장님께서는 정말 점잖으신 분이셨는데, 어느 정도로 점잖으셨느냐 하면, ‘도장을 파시는 동안 제가 도장 파시라고 소리를 쳐 볼까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펄쩍 뛰시면서 ‘그럼 안돼!’하고 단호히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역시 우리 사장님께서는 시민들이 노량진 역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새삼 나는 감탄하며, 역시 우리 사장님은 철학이 남다르시구나 하는 생각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사장님께서 해 주시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이렇게 점잖고 철학이 남다르신 우리 ‘도장명인’ 사장님께서 정말 분노하셨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드리자면 이렇다. 어느날, 언제나처럼 우리 사장님은 노량진 역 입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셨다. 그러던 중에 머리가 노랗고 피부는 하얗고 눈은 파란 미국사람이 다가왔던 것이다.

내가 체험한 바와 같이, 노량진에는 실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왕래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이 근처로 다가오는 것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셨던 것이다. 사장님은 평상심을 지키시며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기다리셨다고 했다.

그 미국사람 옆에는 한국인 가이드 같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 미국사람이 이것 저것 물어보며 도장을 구경하더니 하나에 5만원으로 계산해서 도장을 5개나 파겠다고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에 그렇게 큰 주문 건은 많지 않은 터라, 사장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기다리라고 하시며 한글도장을 파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소리 소문없이 아무 관계 없는 쌩판 남인 왠 아저씨가 다가와서 도장 파는 것을 지켜보려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집중력을 유지하시면서 구경꾼을 애써 마음에서 지우시곤 작업에 열중하셨다. 그러면서 5개의 도장이 다 완성되자, 사장님은 그 미국사람에게 25만원이라고 값을 말해 주었다. 물론, 그 25만원은 ‘고객 사은 대찬스’의 마음으로 할인적용이 된 에누리가 였다.

바로 그때! 구경꾼 아저씨의 잊을 수 없는 어택이 들어온 것이었다. “에이~! 너무 비싸다!” 순간, 그 미국인과 한국인 가이드는 움찔 하며 구경꾼 아저씨와 사장님을 번갈아 보았고 상황을 판단하려는 듯한 침묵과 눈빛이 긴급하게 오갔다고 한다.

사장님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어 갈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셨고 구경꾼 아저씨에게 눈으로 레이져를 날리셨지만, 구경꾼 아저씨는 멀리 63빌딩을 보는 것이었다. 미국인과 가이드는 서로 몇 마디의 영어를 주고 받았고, 미국인은 자신이 바가지를 쓴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가이드는 사장님께 ‘죄송하지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서 못 사게 되었다’라며 미국인과 함께 도망을 갔고, 사장님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시며 그 두 사람을 황망히 바라보는 차에, 구경꾼 아저씨도 그 틈을 타서 비호와 같이 자리를 피했다.

해는 지고 있었고 사장님은 한글로 다 파진 도장 5개를 들고 그 자리에 앉아 일어설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밤이 되어 노량진 근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건널목에서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어찌 어찌 해서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속에 부아가 치밀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라는 안타깝고도 슬프고도 분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울 뻔 했고, 사장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정말로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도와주지는 못해도 남의 장사에 초를 치지는 말아야지!’아저씨는 그 때의 기억으로 치를 떠시는 듯 했다. 그리곤 한동안 그 후유증에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다.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그 구경꾼 아저씨...

이야기를 다 듣고 ‘사장님, 앞으로는 선불로 도장 파 주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사장님 말씀이, ‘그냥 옆에서 파면 되지 뭐.’하고 사람 좋게 웃으시며 내게 완성된 도장을 건내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새삼 이 사장님의 넉넉하신 마음에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도장은 투박했지만 다정했고 정겨웠다. 그래서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노량진 역 앞에 앉아서 본 세상은, 내가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던 세상과는 조금 달랐다. 아련한 그리움이랄까. 정말 가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엔, 이렇게 거리에 앉아 조금은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다. 올해도, 단 한번 뿐인 가을이 이렇게 깊어 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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