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죽어야겠지, 내가! 호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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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죽어야겠지, 내가! 호로새끼
  • 오시영
  • 승인 2014.08.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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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말한다 “죽어야겠지, 내가...”라고. 필자에게는 저 짧은 대사가 영화 ‘명량’에서의 최대 감동으로 다가왔다. 장군 이순신이 조선 백성의 왜군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의 죽음으로써 극복하겠다며 출정에 앞서 아들 이회에게 한 말이다. 죽기로 각오하면 살겠지만,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말끝에 나온 말이다. 자신의 유일한 목숨을 내어 놓겠다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는 죽어도 좋다는 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적군에게 무서운 장군으로 비쳐질 수 있었던 것은 죽겠다는 “사즉생, 생즉사”의 각오로 임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명량’에 대한 국민의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개봉 보름만에 1,200만 명 관객을 돌파하였다. 2012년의 ‘레미제라블’, 2013년의 ‘변호인’에 이어 ‘명랑’이 2014년 국민적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 영화의 공통 중심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불쌍한 백성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 것이다. 국가가 버린 백성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투쟁하고 협동하며 헌신하여 오히려 국가를 살리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같은 것 말이다.

진도 팽목항,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해 300여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고, 그로 인해 온 국민이 엄청나게 슬퍼해야 했던 눈물의 현장이다. 진도의 벽파진, 울돌목은 명량대첩의 격전지이고, 영화 명량의 주요 현장이다. 이래저래 진도가 2014년 국민의 관심지가 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국민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고 현재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진행 중인데 반해, 후자는 백성에게 엄청난 기쁨을 안겨준 과거의 사실이면서 현재도 국민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다. 마치 영화 ‘명량’의 울돌목에서 일본의 함선들이 회오리물살에 휩쓸려 표류하듯, 세월호특별법이 정치권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표류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그리도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고집으로 세월호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전 도와달라고, 지난 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는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통사정하던 새누리당이 의외의 선거 압승 후 태도를 표변하여 세월호특별법의 알맹이를 쏙 빼버린 식물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면서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전함으로 330대의 왜군을 향해 출정명령을 내린다. 아마 이순신 장군은 그 명량에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너무나 열세였지만, 영화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천행-백성의 희생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장군 이순신은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르는 것이고, 그 충(忠)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아들 이회에게 교훈을 준다. 이 교훈은 마치 영화 변호인에서 “국가는 국민이란 말입니다.”라고 열변하는 전 대통령 노무현 정신으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세월호참사에서 왜 신속한 구조가 이루어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러한 진상규명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이후에 그런 참사가 재발되거나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예방조치를 취해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유가족의 요구나 국민의 요구는 그릇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도 사고 초기에 그런 의사를 수없이 피력하였고,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책임질 만한 정치인들 역시 그러한 견해를 수없이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선거가 모두 끝나고, 세월호 참사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민의 기억이 조금씩 퇴색해지자 세월호특별법에서 수사권 및 기소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껍데기만 엉성한 허울좋은 특별법으로 한 발, 아니 수십 발 후퇴해버리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세월호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진실규명은 불가능하게 되고, 국가대개조, 국가대혁신의 첫 단추가 꿰어질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만다. 대통령이 흘렸던 눈물을 우리 국민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의 눈물을 누가 닦았을까? 스스로 닦았을까, 아니면 국민에 대한 사과발표방송이 끝나자마자 비서가 손수건을 들고 달려와 닦아 주었을까? 하여튼 대통령의 눈물은 닦였고, 말랐다. 하지만 유가족의 눈물은 여전히 심장으로 흐르고 있고, 국민의 세월호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말로는 국가대개조 중이다. 유가족 및 야당은 말해야 한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날 곳도 없다.”라고.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국민은 지금 먹고 싶어 한다. 정의롭고 공정한 대가로 주어지는 맛있는 음식을. ‘명량’에서 장군 이순신은 적군과 아군의 시체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대장선 갑판 위에서 왜군을 물리친 후 부하가 건네주는 토란을 받아먹으며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고 살았음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있음을 감사한다. 만일 그 해전에서 죽었더라면 결코 토란을 씹어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았기에 허기진 배를 토란으로나마 채울 수 있었고, 살았기에 먹는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군인들이 자꾸 자살하고 있다. 관심사병으로 분류된 세 명의 군인들이 또 다시 자살을 하였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전반적으로 유약해진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군대가 백성의 자식들을 잡아먹는 괴물집단인가?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게 되지 않겠는가? 썩어 악취가 나면 그 근원을 제거해야지, 냄새 난다고 뚜껑을 덮어두는 미봉책만을 계속해서 쓴다면 악취는 계속 새어나올 것이고, 군인들의 자살을 비롯한 병영 내 군폭력 및 성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영화 명량에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자신에게 몰려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자신에게 수없이 최면을 건다.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용기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그 전환점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전쟁에 임하고 있음을 결연히 보여준다. 그 두려움은 아군에게도 있지만, 자신에게 계속 패전당해 왔던 왜군에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적의 두려움을 키우고, 아군의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키는 것이 지휘관의 할 일이라고.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한민국 군대는 입대한 사병들을 “모두 겁쟁이”로 만드는 이상한 훈련방법을 건군 이래 지금까지 악행을 저지르듯 반복하고 있다. 군대 간 아들을 첫 면회가본 가족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렁찬 아들의 경례 소리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워 벌벌 떠는 본질”을 바라보며 가슴아파한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어디서나 당당했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던 아들이, 군대 간 몇 주 후에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가족과 있게 되면 목소리가 움츠러들고 행동이 쭈삣쭈삣해지며 이상한 아이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쉽게 말해 훈련기간 내내 용감한 군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얼을 빼놓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얼이 빠져 버린 아이들이 제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자립형사립고등학교, 일명 자사고의 재지정문제를 둘러싸고 진보적 교육감과 교육부 사이에 갈등이 점차 고조되어가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의 기본적 생각은 자립형사립고의 비율이 너무 높아 우수에서부터 그 아래 등급 정도의 성적을 올리는 학생들까지 모두 저인망식으로 훑어가버려 일반고등학교가 열등화되어 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우수한 영재들에 대한 특별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사고 출신의 우수학생들만이 우수대학에 집중 입학하게 되고, 그들에 의해 형성된 학맥으로 장차 사회지도층 그룹이 형성되게 되면 고교평준화를 비롯한 헌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기회균등의 보편적 교육이 타격을 받게 되고, 긴 안목으로 보면 집단적 계급화과정이 진행되어, 사회적 갈등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사고의 비율을 줄일 필요성이 있고, 그런 해결방법으로 재지정 시 심도 있는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립형사립고가 생긴지 5년에 불과한데 벌써 형성된 자사고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각한 상황이다. 자사고 학부모들과 졸업생 중심으로 반대집회가 열리고, 재지정 엄격화에 대한 집단반발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갈등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교육이라 할 것이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진출의 높이가 결정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지위와 보이지 않는 계층의 분화가 고착화되다 보니, 국가 내에 너무나 많은 고유의 우물들이 생겨나고, 모두들 자신이 사는 우물 속 개구리가 되어 다른 우물,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사회적 갈등이 폭발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일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경쟁일변도의 교육과정을 통해 홀로 살아남기만을 배워 온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고, 군대 역시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가해자계층과 피해자계층이 이원화되면서 그 통점을 견디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고 하겠다.

영화 ‘명량’의 마지막 장면에서 격군들, 함선의 노를 저었던 민초들이 나누는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건네, 모르면 호로새끼지.”라는 대화가 귓등을 때린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의 전쟁에서 그리도 지키고자 했던 백성을 향한 忠은, 전쟁이 끝난 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채 의주로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던 왕 선조에게 돌아갔고, 이순신 장군을 시기하여 항명죄를 물어 고문했던 간사한 대신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어쩌면 그가 죽음으로 지켰던 조상의 나라에서 후손된 우리가 진정 호로새끼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백성을 향한 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여의도에는 정치인들의 허황된 거짓선동과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며, 정유재란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나라를 지킨 조상들이 백성에 대한 충을 모르는 여의도의 정치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호로새끼야, 호로새끼......”라고 하지 않을까 겁이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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