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다시 살펴보는 멜로스 대화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다시 살펴보는 멜로스 대화
  • 신희섭
  • 승인 2014.08.14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누군가가 만약 자신의 글을 만들고 이것을 인류의 ‘영원한 재산(Eternal Possession)’으로 표현했다면 어떨까? 어쩌면 이러한 주장을 듣고 다른 이들은 이 사람을 겸손하지 못한 인간으로 평가할지 모른다. 자신이 쓴 글이 후대에까지 살아남아 영향력을 떨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함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2400년 전의 한 인물은 자신의 책을 만들면서 이것이 인류의 영원한 재산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 인물은 바로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였다. 자신이 직접 참전하여 경험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투키디데스는 엄청난 혜안으로 자신이 기록한 역사가 후대에 살아남아서 지속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투키디데스가 목격한 전쟁에서 그는 인간의 진실한 내면과 그에 따른 행동방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질투와 시기심과 지배욕구와 같은 인간을 둘러싼 정념들이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고, 이것을 기록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인간의 속성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시간과 공간을 뚫고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역사의 반복성. 이것이 투키디데스가 자신 있게 자신의 분석과 기록이 영원한 재산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 이유이다. 실제로 1970년대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R. Gilpin)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한 기록을 보고 1970년대의 냉전이라는 당시 시대상황과 과거 그리스 시대가 별로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힘의 변동과 그에 따른 전쟁이라는 주기적인 패턴을 패권변동이론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했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서 우리는 많은 지적 재산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 제국의 성장과 몰락, 예방전쟁이 왜 발생하는지와 과잉팽창이 가져오는 파멸과 같은 여러 주제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인간이 반드시 자신이 경험해야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과거가 주는 엄청난 선물이다.

투키디데스를 인용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그가 전쟁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는 전쟁이란 “힘을 얻기 위한 무기경쟁”으로 파악했고1) 그것은 현재까지도 국제정치학의 전쟁을 연구하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남아있다.

투키디데스의 전쟁의 궁극적 원인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이야기 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은 아니다. 국제정치의 본질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또 다른 주제를 다루어볼 것이다.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멜로스대화라고 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한 부분을 통해서 국제정치를 이해하고 있는 아테네인들의 현실주의적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적 맥락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권력 문제의 가장 핵심을 꿰뚫어 보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 시점의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또한 강대국과 약소국사이의 극단적인 역학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상대적 약소국이자 중견국가인 한국은 배우고 대비할 것이 많다.

아테네는 전쟁의 과정 중에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밀로스를 공격하기로 한다. 그리고 밀로스로 쳐들어간 아테네인들은 밀로스인 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한다.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서 아테네인들과 밀로스인 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투키디데스는 전쟁과 국제정치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다.

투키디데스가 소개하고 있는 아테네와 밀로스인들간의 대화 중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자. 밀로스는 군사전략적으로 유용한 위치에 있는 국가였고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네군대를 상륙시킨 뒤에 아테네인들은 밀로스인 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2)

“우리가 과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혹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이를 보상받기 위하여 당신을 정복하려 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따라서 ‘우리는 스파르타의 식민지이지만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왜 우리를 정복하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애기하지 말라. 그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신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이 순간에 당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 정의는 동등한 힘을 가진 그러한 국가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름일 뿐이다.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동등한 힘이 필요하며, 이러한 힘이 없을 경우에 정의라고 하는 것은 한낱 아름다운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강대한 국가는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며, 약한 국가는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The Stronger do what they can, the weaker suffer what they must)”

아테네의 발언에 대해 밀로스인들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정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이 강대국가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영원한 강대국가란 없다. 정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테네는 언제가 이 지구상에 정의를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보복 받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아테네가 침략의 뜻을 굽히지 않자 밀로스인들은 중립을 제안한다. 중립제안에 대해 아테네인들은 이렇게 응수한다.

“우리 아테네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들의 적대감이 아니다. 우리는 해양제국으로서, 해양에서 계속 강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섬나라인 밀로스를 우리의 제국에 굴복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당신 같은 조그마한 섬나라 하나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약한 국가로 세상에 인식될 것이며, 이는 제국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절대로 당신들의 중립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자 밀로스인들은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아테네의 주장을 반박한다. 첫 번째 밀로스 자신을 도와줄 신이 있다는 점과 두 번째 동맹국가인 스파르타가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응수는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적 입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신은 우리에게도 많다. 우리 아테네를 돕는 신도 얼마든지 있다. 신들의 세계에서 강력한 신이 약한 신을 지배한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의 법칙이다. 이 자연의 법칙은 우리 아테네가 처음 만든 것도 아니고 처음 적용하는 것도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옛날부터 있어 왔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입장을 바꿔서 당신들이 강대국가이고 우리가 약소국가라면, 당신들도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파르타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아테네는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이 오고가는 과정의 마지막에서 아테네인들은 투항하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 밀로스인 들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금 우리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직면한 ‘생존에 관한 문제’인데, 당신들은 자신의 생존에 관하여 이야기 하지 않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신들은 헛된 명예심에 빠져있다. 당신들은 전쟁이냐, 여러분의 삶의 안정이냐 하는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무엇이 합리적 선택인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이것은 당신들이 그만큼 무감각하고 오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밀로스가 결국 항전을 결정했고 아테네에 패배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에서 패한 밀로스의 모든 성인남성들은 처형당했고 모든 여성들과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생존의 문제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다. 아테네인들과 밀로스인들의 대화는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realism)라는 이론이 왜 “현실적(real)”인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희망적 사고보다 중요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잘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동북아라는 힘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도 중요하게 각인될 것을 요구한다.

각주)-----------------
1)도널드 케이건, op.cit.,p.23.
2)아테네와 밀로스간의 대화는 강성학, “국제정치이론과 세계의 앞날” 『새우와 고래싸움』, (서울: 박영사,2004),pp.296-299.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