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중국인들이 바라본 한국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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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중국인들이 바라본 한국상고사
  • 오태진
  • 승인 2014.08.06 11:4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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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학원 한국사 강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 이 삼국지는 군웅할거 시대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전쟁 이야기를 담아 수 천 년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시험에 나오는 삼국지는 다르다. 이 삼국지는 진수가 편찬한 ‘정사 삼국지’로, 단순하게 중국 위,촉,오의 통일 전쟁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주변 나라에 대한 기록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 중에서 우리 나라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나라가 위나라였기 때문에 삼국지 위지(魏志)에 동이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역사와 풍속을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동이전 안에는 부여,고구려,예,옥저,한 등 우리 고대사의 주요 단위체들이 개별적인 기록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고대사 복원 문제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귀중한 사료인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는 고대 중국인의 사고 방식에 충실하게 입각하여 쓰여진 것임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 삼국지의 우리 나라에 대한 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까?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가 쓴 서문에 의하면 고대 중국의 이민족 교섭은 세 단계로 파악된다.

1단계
이민족으로부터 사절이 간헐적으로 왕래할 뿐이므로, 그 구체적 실상을 알 수 없었다.

2단계
‘장건’이 오랜 동안 서역에 대한 견문을 쌓고 교섭을 진행하던 시기인데, 이 단계에서도 그 지방을 이해하고 역사를 기술하기에는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수 없었다.

3단계
위나라 장군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부터를 3단계로 파악하여 본격적인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3단계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동이열전에 대한 기록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특히, 중국 역사가들은 중국에 불리한 사실은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또 이 시기 중국 민족과 동이 제국간의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위에서 말한 신뢰도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위나라의 군사 활동이 동이에 대한 주요 정보원으로 파악되었다는 점에서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내용을 곧 우리 고대사회의 실상으로 간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2. 이와 유사한 사례, 『사기』・『한서』

사마천의 『사기』 조선전 역시, 조선의 멸망 직후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자못 감정적이며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그 곳에는 중국인 망명자가 동이의 제국을 평정했다는 관점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위만은 중국 왕조를 추종하는 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기는 이민족의 자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서』 지리지 기사에 보이는 기자 동래설은 유교의 현자를 이상적인 왕으로 설정하고 이 가공의 통치자를 매개로 동이를 유교의 성지로 보는 관점에 충실하였다. 그러므로 삼국지도 그 서문에 드러난 중국 중심적 인식의 편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 중국인들 눈에 비친 이질적인 부분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록

동이전의 풍속 관련 기사는 편찬 당대 만의 실상이 아니라 상당히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으므로 그 상한을 확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동이전의 풍속 관련정보들에서는 시기별 변화상을 추적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정치,외교,군사 등 지배자 중심의 국가사가 주조를 이루는 삼국사기에 비해, 동이전의 풍속 기사는 고대 한국인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추적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이의 풍속 문화에 대한 기록 역시도 그 평가 기준이 중국적 가치관이었다는 사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분명히 중국의 문화적 특질과 유사한 요소들은 그다지 주목하여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며, 특기되는 이질적 요소들에도 이민족에 대한 부정확한 관찰 혹은 기록주체의 편견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韓)의 풍속에 관련된 내용 중에

“등가죽을 꿰뚫은 굵은 끈과 나무를 가로지른 젊은이들이 있다.”

라는 기록은 대한 묘사는 일찍이 인류학적 견지에서 청년 조직과 그에 부여된 성년식 혹은 시련의 습속으로 독해된 바 있으나 이 기사가 축성과 관련하여 서술된 점을 주목한다면, ‘집단 지게 노동’에 대한 불철저한 관찰의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지역적 문화수준의 낙차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유독 ‘마한에만 성곽이 없다’거나 ‘우마의 힘을 교통과 운송에 활용할 줄 몰랐다’는 기록은 수긍하기 어렵다.

부여와 고구려의 취수혼도 그러하지만, 고구려의 서옥제와 동옥저의 예부제가 특기된 것도 당시 중국의 혼인 풍속에 비추어 그것이 현저하게 이질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우리 학계는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위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국지 역시 외국인이 기록했다는 한계와 편견까지 더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두 사서는 시공간 모두에서 서술대상을 공유한다. 삼국사기 등 국내 자료에 한정되어 인식된 동부여의 전말이 삼국지 부여전을 통해 설득력 있게 납득되는 사실은 하나의 실증적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삼국지 내용을 시종 대립적으로 설정해 온 관성을 극복하여 차이점보다는 공유점을 토대로 한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우리 고대사를 바라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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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까 2020-04-25 23:40:31
잘 읽고 갑니다. 궁금했던 주제를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eo 2014-08-07 21:11:06
꼼꼼히 잘 읽고 갑니다. 국사공부하기 전에는 부끄럽게도 국사는 재미없고 머리아프게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배우면서 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열정있는 강의에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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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히 잘 읽고 갑니다. 국사공부하기 전에는 부끄럽게도 국사는 재미없고 머리아프게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배우면서 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열정있는 강의에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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