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3) - 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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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3) - 나도 달린다
  • 차근욱
  • 승인 2014.07.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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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쉬카 피셔는 아니지만, 나도 달린다. 가끔은 왜 그렇게 달리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달리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요.’ 라며 웃곤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달리기란 인간에게 조금은 복잡한 의미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그리 특별한 철학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달릴 때는 그리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아주 가볍게, 한 시간 정도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만 달릴 뿐이다. 평균적으로 600미터에 4분 정도.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달리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달리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들도 정리되기 마련인지라, 정신적 정화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돈도 안 들고 말이지요. 후후후.

 
달릴 때면 주황색의 커널형 MP3만을 귀에 꼽고 검정색 반바지에 검정색 반팔티 차림인 채로 뛰는데, 달리는 동안에는 지갑도, 시계도, 휴대폰도 지참하지 않는다. 요컨대, 달리는 순간만큼은 자유가 되는 것이다.

달리다보면 굳이 ‘러너스 하이’라고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두근거림이 있는데, 그건 바로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는 순간의 기쁨이다.

무언가, 마치 내가 바람 그 자체인 것 같이 느껴지는 동시에 자신의 심장고동을 들을 때 실감하는 생명의 감각이랄까. 마치 사랑하는 이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스다듬는 순간의 또렷한 감촉처럼.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일 매일 성실하게 달리지는 못한다. 교재도 써야 하고, 교재 외의 원고도 써야 하고, 강의 준비와 강의도 해야 하고, 약속도 있으니까. 그런 날들이 이어질 때면 예외 없이, 파란 하늘을 보는 순간 달리고 싶어진다.

물론, 나라는 인간은 뜬금이 없는 인간이기도 해서 너무나 달리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강의를 하러 가다가도 대책 없이 그냥 달릴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제 강의를 하러 가다가 그렇게 달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일반적인 경우는, 밤 10시나 아침 5시 즈음, 몸이 근질 근질 해지면서 이제 좀 달려볼까 하는 기분이 들어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MP3를 귀에 꼽은 다음, 슬슬 뛰기 시작해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코스는 집에서 근처 공원까지, 그리고 공원의 600미터 트랙을 15바퀴 정도. 600미터에 대략 4분이 걸리기 때문에, 15바퀴를 달리면 대충 1시간이 된다. 그렇게 뛰고 난 다음에는 숨을 몰아쉬면서 평행봉으로 가서 평행봉을 가볍게 하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패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15바퀴라는 것이 하나의 약속처럼 느껴져 600미터 트랙 15바퀴를 고집하게 되었는데, 만약 15바퀴를 다 돌지 못하는 날이면 매일 기상나팔을 부는 나팔수가 늦잠을 자 기상나팔을 빼 먹은 날처럼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이 된다.

반면에 15바퀴를 모두 돌고 나서 평행봉을 할 때의 만족스러움은 혼자서도 방긋방긋 웃게 할 정도의 성취감을 주는데, 어쩌면 그 평행봉을 하는 순간의 개운함이 좋아서 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힘든 순간이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지요. 아무리 슬슬 뛴다고 해도 달리기는 달리기 이니까. 그럴 때면 혼자서 투덜대기도 하지만, ‘먼지가 되기보단 재가 되어 사라지는게 나아’,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달래 다시 힘을 내 달리곤 한다.

뭐, 꼭 ‘하얗게 불태웠어’, 라며 앉아 있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기왕에 사라질 인생이라면 재가 되어 사라지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리듬’이 아닐까 싶다. 오래 달릴 때 리듬을 타지 못한다면 달리는 과정 자체가 괴롭겠지만, 일정한 리듬을 체득하고 나면 오래 달리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

이 ‘리듬’이 무엇 인고 하니, 호흡과 몸의 박자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간단히 설명해 보면 이렇다. 팔과 상·하체를 리드미컬 하게 춤추듯 흔들면서 호흡을 맞추어 뛰는 것이 바로 ‘리듬’의 요체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달리기를 하다보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즐거운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이 오래 달리기와 공부가 꽤 닮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공부는 외줄을 타는 것과 같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래달리기도 그렇지만 공부도 한번 리듬을 잃어버린다면 다시 페이스를 되찾는 다는 것이 무척 힘들다.

외줄타기를 하다가 중간에 리듬을 잃어버린다면 무사히 외줄의 반대편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외줄을 타다가 중간에 페이스를 잃고 떨어진다면, 처음부터 다시 줄을 타야 할 테니까. 공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입장을 다른 분들이 이해하지 못하시는 경우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직업 자체가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이라서 늘 외줄을 타거나 오래 달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는데,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는 리듬을 잃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페이스를 잃는 상황이란 재앙에 가까운 일인지이라 적어도 책을 보거나 원고를 쓸 때에는 조마조마해져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애쓰게 된다.

그런 노력들 중 특히나 주변에서 많은 원성을 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전화’인데, 안타깝게도 이 전화만은 공부 중에 결코 받을 수가 없다.

아니, 그 1분이 그렇게 나지 않느냐고 따지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통화를 하는 시간 자체도 그렇지만, 공부를 하다가 전화를 받고 나면 그 여파로 인해 다시 몰입 상태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냥 저냥 책을 볼 수는 있겠지만, 전화를 받기 전 상태의 집중력이나 두뇌 상태로는 도저히 돌아가지 못하거든요. 그러니 공부할 때엔 전화를 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불가항력인 부분도 있는 것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쇼. 마라토너가 마라톤시합에서 코스를 뛰면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해 주시면 매우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오래 달리기와 공부라는 녀석은 아주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기분도 든다. 중간에 긴장을 놓치면 다시 처음의 페이스를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더 큰 문제는 이 야생마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그래서 공부를 하던 달리기를 하던 가장 좋은 것은, 온 마음으로 집중해 리듬을 탄 채로 즐겁게 즐겁게 끝까지 하는 것이다. 적어도 목표한 부분까지는 그렇게 페이스를 잃지 않고 한 번에 가야 비로소 제대로 끝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완주해 낼 때까지는 그만두고 싶은 유혹도 수 백 번 찾아오기 마련인지라, 이럴 때 어떻게 마음을 잡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내느냐가 또 하나의 승부처이다.

결국 달리기도 공부도,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끝까지 달리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끝까지 배우고 싶은 마음을 지켜낸다면 비록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 몰라도, 분명 달리기를 한 후 접하는 평행봉처럼 스스로가 제법 자랑스러운 순간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지켜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마음이 떠난다면, 오래 달리기도 공부도 사랑처럼 돌이킬 수 없게 되니까.

살다보면 누구나 흔들리기 마련이고 포기하고 싶은 위기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기 그 자체보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과 노력이 아닌가 싶다. 리듬이란 것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

트랙 15바퀴를 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트랙 위에 존재하고,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고, 이렇게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면 15바퀴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믿음과 그 순간의 리듬을 즐기는 춤사위. 바로 그러한 실감이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달리는 것은 어쩌면 힘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두 다리로 대지를 힘껏 박차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만큼 이 세상에 멋진 일이 또 있을까? 자연과 더불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바람이 된다.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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