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로 가족해체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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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로 가족해체되나
  • 곽배희
  • 승인 2003.11.04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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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규정은 그대로 남아 … 더 평화롭고 행복해질 것

곽배희-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호주제 폐지 내용을 담은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이 연일 논란이다.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은 현행 민법 4편 2장에 있는 ‘호주와 가족’ 부분의 삭제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 법적으로 필요한 영역(부양·상속 등)에 관한 가족에 관한 규정은 종전대로 살아있고,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호주제에 근거한 가족 ‘개념’만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 가족해체를 부추긴다는 터무니없는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는 국무회의가 법무부 민법 개정안에서 모두 삭제하기로 했던 4편 2장 가운데 제779조 가족의 범위에 관해서는 그 내용을 살리겠다고 했다. 심히 유감을 금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번 국무회의의 결정은 가족 ‘개념’의 삭제가 가족 해체나 가족 상실을 가져온다는 시비에 굴복한 결과이다. 정부는 적당한 타협으로 호주제 폐지라는 형식적인 성과만을 남긴 채 민법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가족법 개정운동에 힘써온 민간단체에 더 큰 부담을 남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적으로 가족 개념을 삭제한다고 현실적인 가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개정안에는 필요한 영역마다 가족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많은 분들이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법적으로, 그리고 이성과 합리주의에 비추어, 민주주의와 양성(兩姓) 평등이라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호주제 폐지를 설명하는 일은 너무 많이 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정부 관계자나 일부 언론에서 호주제를 폐지하면 마치 가족이 해체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을 들으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개념을 없앤다는 것과 실제 없어진다는 것의 차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법적인 가족의 개념을 삭제한다는 것과 가족을 없앤다는 것을 같은 말로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려 하는 것은 지독한 오독(誤讀)이거나 사실의 왜곡, 좀더 통렬하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여론조작이다.

실제 외국의 법을 보더라도 법으로 호주를 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가족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있는 예는 없다. 오늘 당장 호주제를 폐지하고 민법에서 가족개념을 삭제한다 해서 아무 문제없던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없던 문제가 새로 생겨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세간에서 ‘수십 번씩 성과 본을 바꾸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든지, ‘이런 것을 악용해 범죄에 이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기우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원이 그렇게 만만한 곳인가, 성과 본을 변경할 때 누군가 그저 가서 바꾸겠다고 하면 즉석에서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는가. 실제 그런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회의론으로 난색을 표하는 것은 호주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의 발로라고 본다.

필자는 호주였던 적이 없어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위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히 아는 것은 현행 호주제가 존재하고 있음으로 해서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 또 당연히 그러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가정들이 불행하고 슬프고 불필요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가 가족의 해체라고 주장하는 사회지도층이나 여론주도층이 있다면, 그리고 정책담당자가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현재 제출된 법무부 민법개정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거나 그저 심정적으로 호주제 폐지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본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회피이자 방기이다.

호주제가 폐지된다 해서 행복한 우리 가족이 그로 인해 없어지지 않는다. 호주제를 폐지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가정이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친다. 무엇을 선택할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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