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의 민낯, 진도에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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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의 민낯, 진도에 가보셨나요
  • 황필규
  • 승인 2014.05.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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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언론을 통해 사고를 접했을 때 저는 믿었습니다. 아니 피해자 가족분들을 포함한 모든 분들이 믿었을 겁니다. 비록 체계는 없고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해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대한민국을. 그러나 슬픔, 답답함, 분노, 그리고 자책.

사고 당일 밤이 되었을 때 이미 마음은 진도를 향했습니다. 그때 갔어야 했었습니다. 초기에 달려가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만 더 일찍 나누었더라면 피해자 가족들의 의사를 한 가지라도 더 정확히 전달하고, 정부의 대응을 1분이라도 더 앞당기는 데 자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같은 후회와 자책감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사고 둘째 날, 셋째 날, 길가다가도 눈물이 나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단체에 얘기하고, 몇몇 변호사와 연락하고, 현지 기자에게 문의하고. “변호사가 당장 할 일은 없다.” 대부분의 의견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살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변호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단지 남들보다 법을 조금 더 잘 알고 정리를 조금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으로서 진도행을 결정했습니다. 퍼블릭법률사무소 배의철 변호사도 대한변협 대표단 자격으로 함께 진도로 향했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먹거리, 생필품이 체계적으로 제공되는 그곳, 의료 등 기본 서비스가 제공되고 구호물품이 넘쳐나는 그곳.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작동되는 유일한 시스템은 국민들의 공감시스템, 의료 등 구호시스템뿐이었습니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책임질 행동을 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지는 시스템의 붕괴, “정쟁으로 비칠까 봐서”라는 정치적인 고려로 침묵하는 국회의 정부감시 시스템의 붕괴, 부실한 정부 발표를 받아 적기 바쁜 상당수 언론의 정확한 보도와 적시의 비판 시스템의 붕괴로 불신과 분노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그곳.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스스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곳. 그곳은 단순한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였습니다.

팽목항. 이미 사고 후 3일하고도 몇 시간 지난 시간, “UDT 요원 OO명, 조명탄 OO발, ….“ 숫자들만 나열된 보도자료를 배포한 해경 국장을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상황실에서 끌고 나옵니다.

가족들 : “가라앉은 배가 옆으로 기울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왜 이 중요한 사실이 보도자료에 없나요? 언제 보고받았나요?”

해경 국장 : “네, 알고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보고받은 적은 없습니다….”

가족들 : “첫날부터 바지선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왜 이제야 바지선 투입을 결정했나요?”

해경 국장 : “처음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 “왜 이렇게 인력을 적게 투입하나요?”

해경 국장 : “오늘부터는 날씨와 무관하게 전원 투입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들으면서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눈물을 흘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수십 개의 언론사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장면을 찍었고, 한두 언론은 생방송하고 있다고 소리쳤지만, 이 장면이 제대로 보도된 언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진도실내체육관. 해경 상황실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고 상황 보고를 합니다.

“사망자 OO명, 실종자 OO명…”

바로 옆 대형화면을 통해 반복되어 방송되는 뉴스보다 빈약한 내용입니다.
가족 대표들이 앞으로 나와 체육관, 팽목항에 있는 가족 대표들이 모두 청와대로 항의하러 가기로 결정했고 팽목항에 있는 가족들도 체육관으로 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낮에 배의 일부라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가능한지 정부 측과 확인하기로 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몇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왔다고 합니다. 답답해서 관련 기관들에 전화를 했는데 그 기관 책임자들과 통화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부가 또 하루를 허비하는 것을 보고 청와대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 요구할 내용도 발표했는데 그 처절한 소박함에 눈물이 납니다. 제대로 된 지휘체계를 갖춰 달라… 구조인원을 늘려 달라…

문제는 서울로 가는 버스를 구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일부는 먼저 출발하고 목포 등에서도 버스를 추가로 찾아보고 정 안되면 아침에라도 출발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먼저 버스로 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체육관 앞에 모였고, 버스가 곧 온다고 하여 조금 내려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덕을 조금 내려가는 길에서 경찰이 가로막습니다. 뒤쪽에서 채증카메라들을 치켜들고. 책임자가 누구인지, 이름과 소속이 무엇인지, 버스 타러 가는 사람들의 길을 가로막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의 질문에 답하는 경찰은 없습니다. 잠시 뒤 서장이 나서서 한마디 합니다. “야간에 위험해서….”

가족들의 청와대행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장관이 한쪽에서 마이크를 잡습니다. “제가 총책임자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답은 “현장에는 OOO 지휘자가 있고…”입니다. 곧 길은 열렸지만 버스를 탈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걸어서라도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가족들 일부의 행진이 시작됩니다.

차로 앞으로 가서 진도대교에서 경찰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체육관으로 돌아옵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총리의 차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제발 청와대로 갈 수 있게 진도대교에서 막지 말아 달라.” 이것이 요구의 전부입니다. 가족들은 지치고 진도대교 쪽으로 걸어가던 사람들 중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버스를 보낼 테니 이제 돌아오라고 전화를 해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총리 차를 둘러쌌던 가족들이 뒤로 물러섭니다.

한 엄마가 총리 차로 다가가 아이 사진을 들고 외칩니다. “제발 제 아이 얼굴 한 번만 봐 주세요. 그리고 이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며 구조에 애써주세요.” 누군가 얘기합니다. “안전을 위해 경호원들이 둘러쳐도 좋으니 창문 내리고 아이 얼굴 한 번만 봐주세요.”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10분 후 차는 떠납니다.

가족들의 청와대행, 경찰의 육탄 저지, 장관과 총리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발언과 태도. 이를 제대로 기록한 언론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날 확인된 유일한 사실은 모든 정부 관계자가 이야기하는 ‘최선’의 내용도, 어떻게 하면 실종자들을 살릴 수 있는지의 방법도 아닌, 총리와 장관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용 없는 이야기를 해서라도 시간을 끌고 경찰이 법을 내팽개쳐서라도 육탄으로 보위하는 그곳, 청와대가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진도에서 6일간 머물면서 그곳 상황을 부분적으로나마 기록하고 기억에 남겼습니다. 가족들에게 여러 차례 실무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한 대표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변호사가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였습니다. 제안서까지 작성해 정식으로 밝힌 지원 의사가 거부되었을 때는 너무 슬펐습니다. 좀 더 일찍 내려오지 못한 자책감, 도움의 손길을 접해도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가족들의 극단적인 분노와 불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종자들에 대한 구조작업도, 누구든 책임 있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모든 이들의 치유의 과정도. 대통령, 정부, 국회, 언론, 사회의 변화를 희망하는 단체나 개인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는지를 먼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개인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민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그것이 법적인 것이 되었건 심리적인 것이 되었건 치유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통해 전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과 책임 규명, 대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치유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 어떤 핑계를 대건 이것을 소홀히 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도 간신히 버텨 온 피해자, 피해자 가족들, 국민 개개인을 부정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를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내모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민낯, 진도에 가보셨나요. 사고 후 사람을 살리고 찾기 위해 가족들이 정부와 매일매일 협상을 해야 하는 그곳. “혁명적 발상”, “국가 개조” 등 자극적인 표현을 내뱉기 이전에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대오각성에서 출발하는 묵언수행일지도 모릅니다. 진도의 절망 끝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감 뉴스레터 2014년 5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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