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방안 아니야” 성토 이어져
서명운동 등 적극적 행동 나서기도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관피아’ 문제가 5급 공채 수험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공직사회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 민관유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의 재취업 등 제한의 확대와 함께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대 5 수준으로 선발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획일적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시기에 공직자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내년부터 즉각적으로 큰 규모의 선발인원 감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5급 공채 수험생들의 충격을 더하고 있다. 다수의 수험생들이 5급 공채 축소방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또 청와대 홈페이지에 반대의 뜻을 게시하거나 서명운동 등을 통한 집단 민원 제기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국민 담화가 발표된 후 5급 공채 수험생들은 큰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5급 공채 축소는 관피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수험전문카페 게시판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민관유착 등 문제는 공채냐 특채냐하는 선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공무원에 대한 감시와 관리를 강화하고 퇴직 관리를 엄격히 하는 것이 올바른 개선방안이라는 것.
‘msuk5578’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수험생은 민간 경력자의 공직 임용이 활발한 미국의 ‘회전문 인사’를 예시하며 민간에서 정부로 채용돼 고위관료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다시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경우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지적했다.과거 행정고시 폐지안 철회의 원인으로 꼽히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논란과 함께 이번 세월호 사건의 주요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용욱 해경정보수사국장이 특채 출신이라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5급 공채에 비해 불투명한 선발 방식으로 진행되는 민간 경력자 채용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
민간 경력자 채용시 요구되는 석·박사 등 각종 ‘스펙’이 서민층이 고위 공직에 임용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서민층의 법조계 진입 차단 문제도 언급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은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고작 한 달여 만에 공직 임명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 없이 진행된 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수험생들도 있다.
담화문을 발표한 당일,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서강대생임을 밝힌 이모 수험생은 청와대와 앞서 5급 공채 폐지를 주장한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인터넷 게시판에 행정고시 폐지 반대의견을 게시했다.
그는 “관피아 문제는 공직자를 선발한 이후의 문제이지 선발과정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채용과정이 불투명한 민간전문가 채용 선발방식보다 5급 공채가 훨씬 공정하고 투명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민간전문가 채용시 요구되는 ‘스펙’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그는 “민간 전문가들로 채용되는 이들은 해외 유학이나 석·박사 학위 등을 갖춘 사람들”이라며 “공직에 뜻이 있고 능력도 있지만 이같은 스펙을 갖추기엔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은 어떡하냐”고 되물었다.
5급 공채 일반행정직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5세, 여)씨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분초가 아까운 수험생의 입장에서 하기 힘든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
이씨는 “단순히 개인적인 피해만이 문제라면 걱정할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직자 선발이라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내려진 결정으로 발생될 국가적 손실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고 서명운동을 시작한 뜻을 밝혔다.
그녀는 고시출신에 비해 민간전문가의 실무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간 채용한 민간경력자들과 공채 출신의 업무 능력 비교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그녀는 “현재의 5급 공채 시험은 공직자로서 요구되는 다방면의 전문적 지식과 종합적인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로 출제된다”며 오히려 현행 민간경력자 채용방식에 비해 5급 공채가 전문적 역량을 평가하기에 적합한 시험임을 강조했다.
또 이씨는 “로스쿨 도입으로 인해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서민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조건과 상관없이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시험인 5급 공채마저 축소·폐지된다"며 평범한 국민들의 꿈과 희망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뜻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이씨는 수험생들의 서명을 모아 집단민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수험생이라는 특성상 서명운동은 신림동 고시학원과 식당, 서점 등에 서명지를 게시하고 이를 취합하는 방법을 택했다. 향후 지방대학 고시반이나 사법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과의 연계를 통해 보다 많은 참여를 끌어낼 계획이다.
차지훈.안혜성.공혜승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