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신임' 적절한 선택인가 - 허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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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신임' 적절한 선택인가 - 허영 교수
  • 법률저널
  • 승인 2003.10.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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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명지대 초빙교수 헌법학


내년 총선 전후까지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긴급기자회견 내용은 충격적이다. 최도술씨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회견 내용은 대통령의 오랜 번민의 결과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노 대통령의 가장 큰 강점은 정치생활이 길지 않아 다른 정치인에 비해 비교적 부패로부터 자유롭다는 인상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자신을 보좌해 온 최씨가 받았다는 정치자금으로 인해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인 도덕성이 결정적으로 손상을 입은 마당에 더 이상 국정을 끌고 갈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선 ‘통합정치’에 노력 기울여야▼

대통령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취임 후 언론환경 국회환경 지역민심환경 등이 매우 나빠지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임도 날로 약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재신임을 묻겠다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무책임하다. 만일 대통령이 특유의 승부수를 던져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략적인 발상으로 재신임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노 대통령이 직면해 있는 나쁜 정치 환경은 따지고 보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도 대통령이고, 민주당을 분당시켜 통합신당이 탄생하도록 한 것도 그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특정 지역의 민심이 나빠진 것도 코드정치 및 민주당의 분당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또 그의 측근들을 둘러싼 갖가지 부정과 비리가 연속적으로 불거진 것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다.

노 대통령은 소수 열성지지자들의 절대적인 지원과 다수 비지지자들의 반신반의라는 열악한 정치 환경 속에서 취임했다. 그런데도 반대자들까지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보다는 이른바 코드정치를 하는 바람에 반신반의하는 대다수 국민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따라서 대통령은 재신임을 말하기에 앞서 이제부터라도 국민이 그를 지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통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 및 정당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코드정치도 청산하는 획기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5년간 국정을 위임 받은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고 혼신의 힘을 쏟는 게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마땅한 도리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너무나 쉽게 책임을 벗어 던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진퇴에 관해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지 않다. 외교 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사안만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돼 있다.

1969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국민투표 사안에 해당하는 특정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자신의 신임과 결부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은 얼마든지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도(正道)라고 할 수 없다. 예컨대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임과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쳤다고 가정할 때 파병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대통령에 대한 신임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총선서 평가받는게 가장 합리적▼

따라서 대통령이 진심으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으려면 선호한다는 통합신당에 하루속히 가입해서 내년 총선에서 통합신당의 지지도와 자신의 신임을 연계시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정당대의민주주의와 가장 잘 조화되는 해결책이다.

또 여러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를 통해 자신의 진퇴에 대한 국민의 뜻을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국민은 5년 임기로 대통령을 뽑았지만 대통령이 임기 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또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사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런 경우를 예상해서 우리 헌법은 대통령 궐위시의 권한대행 규정을 두고 있다. 대통령이 재신임과 관계없이 임기 중에 사임하는 것을 우리 헌법은 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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