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경찰 투고>경찰관이 알려주는 올바른 자녀훈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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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경찰 투고>경찰관이 알려주는 올바른 자녀훈계 방법
  • 이아름 기자
  • 승인 2014.02.05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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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보령경찰서 경무과 경장 임용섭
자녀를 키우다보면 잘할 때와 못할 때가 있고 이는 자녀의 소질에 있어서의 차이일 뿐, 훈계가 아닌 교육과 학습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훈계’는 자녀가 그릇된 행동,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시행해야하는 교정적 치유방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훈계에도 자녀를 위한 부모의 진심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올바른 훈계방법이 있다. 자녀들을 위해 올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훈계방법으로 어른과 세상에 대한 반항심만 키워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올바른 훈계의 의미 속에는 ‘명분, 논리, 합의, 존중, 이해’와 같은 단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훈계 전 분명한 한계를 정해 자녀에게 미리 인식시켜줘야 한다.

자녀에게 막연히 저녁에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 나이또래들의 평균적인 귀가시간을 귀가시간의 기준으로 정해주고 지키지 못할 상황이 생겼을 때 허락을 받도록 한다면 아이들이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 올바른 귀가 습관을 길러줄 수 있다. 

둘째, 평소에 자녀가 잘한 일 뿐만 아니라 서투른 일을 했을 때도 많은 칭찬을 해줘야한다.

언제나 ‘잔소리’로 일관하는 자녀와의 대화법을 사용했다면, 정작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서의 훈계가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미 자녀는 부모의 싫은 소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 어느 순간에도 자녀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여겨야한다.

자녀는 부모의 꿈을 대신 이루어줄 ‘대체(代替)’가 아니다. 절대로 부모의 ‘소유’로써의 의미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간은 설사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 하더라도 ‘공생, 상생’의 관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훈계는 자녀를 올바른 성인으로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이고 결코 부모 스스로가 자녀와의 합의 없이 설정한 기준에 못 미칠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자녀의 의견은 그것이 변명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들어줘야한다.

이는 자녀 스스로가 자신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어느 선까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훈계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잘못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양심에 호소하게 해 진심으로 뉘우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어른과 세상에 대한 반항심에서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훈계상황일 경우 변명의 기회를 줌으로써 반항심을 최소화 할 수 있기 위함이다.

다섯째, 다른 자녀와의 비교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까지 의심하게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사실적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인 ‘이성’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다. 바로 ‘감성’이다. 설사 그릇된 행동을 했다하더라도 만약 다른 자녀와의 비교성 발언이 섞인다면 자녀로써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감성적으로는 이미 부모를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감성적인 청소년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훈계 과정에서 부모의 잘못이 나타났을 경우 인정해야한다.

자녀는 자신의 부모도 잘못을 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을 알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의 권위적인 행동은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며 잘못을 하더라도 위치나 권위에 따라서 인정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현 시대에서 화목한 가정을 위해 가장 올바른 부모의 모습을 ‘친구 같은 부모’라고 소개한 가정학 학자가 있었다. 학자는 권위적인 부모는 더 이상 자녀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통점을 ‘아버지가 없는 편부모’였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각국의 아버지의 역할이 대부분 ‘권위’였기 때문으로 자녀들의 ‘창의성’을 짓누르는 부모의 자녀통제방식에 대해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 같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할 때다.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물질만능주의의 대한민국 속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정이다. 스마트시대의 다음 시대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가정이 튼튼하다면 어떠한 미래가 다가와도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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