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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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 황필규
  • 승인 2014.01.2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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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저는 막 태어났어요. 비혼모인 엄마는 저와 헤어질 것을 고민해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얘기하려고 해요. 법에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 제가 여러분처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요. 제가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상상하면 되요. 그 때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되요. 아니 꼭 그러셔야 해요.

엄마. 사랑해요. 비혼모에 대한 편견, 특히 미성년 비혼모에 대한 편견 너무 심해요. 어떤 분들은 비혼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버려진다고 해요.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자기 자식도 직접 키울 수 없는 사회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에요. 당당하게 맞서세요. 그리고 저한테 꼭 물어보세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너를 버려도 되겠냐고. 생계유지 수단도 없고 먹고 살기 힘들지요. 보건복지부이고 구청이고 다 알아보세요. 엄마가 아는 것보다는 더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몰론 턱없이 부족해요.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사람을 방치하는 정부는 정부라고 할 수 없어요.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엄마. 사랑해요.

많은 분들이 저 같은 아이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를 놓고 목소리를 높여요. 출생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손쉬운 입양이냐 아동유기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얘기해요. 어떤 경우든 저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요. 엄마에게 버려지는 것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엄마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거짓 출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분들. 제 의견을 한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이나 하셨나요? 베이비박스. 일 년 동안만 수백명,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많은 아이들이 단기간에 작은 공간에 집중적으로 버려지고 있어요. 국제적인 베이비박스 논란의 도화선이 된 체코의 경우 전국에 약 50개의 베이비박스가 있고 지난 6년 동안 60여명의 아이들만이 버려졌다고 해요. 해외입양 반세기 동안 세계 해외입양의 1/3인 15만 6천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입양 됐어요.

많은 분들이 아동유기의 원흉은 개정된 입양특례법이라고 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들이 아이들에 대한 포기각서를 써야만 했던 과거를 알고 계시죠? 태어나기도 전에 버림받는 그 심정, 한번이라도 헤아려보신 적이 있나요? 형식적인 절차만 좀 거치면, 입양의 불가피성, 양부모의 자격 등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아주 편리하게 입양이 이루어졌지요. 엄마들에게 양육에 관한 충분한 상담이나 양육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진 적도 거의 없었구요. 입양인들의 친부모 정보에 대한 접근은 입양인이 입양기관에서 얼마나 난리를 치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결정됐지요. 출생기록은 조작되고 은폐되고, 출생신고가 제대로 안 돼서 아이들이 값이 더 매겨지면서 도매, 소매로 재판매된 선례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실 건가요? 그런 것 좀 고쳐보자고 법이 개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계신거지요?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신분노출을 두려워하는 비혼모들이 아이들을 입양시킬 수 없어 버릴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이것이 절대 진리, 절대 명제처럼 되어버렸어요. 이게 제가 태어난 나라의 상식 수준인가요?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법원허가가 도입되어서 그렇다는데 법원허가는 민법에 의해 모든 입양에 적용되고 입양이 정말 불가피한지, 양부모가 정말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예요. 제가 입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양부모로 나서는 사람들이 저를 기를만한 사람들인지 확인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아무한테나 입양되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저를 위한답시고 생명 운운하는 그런 것, 제발 그만해주세요.

신분노출이 두려워 비혼모들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다고요? 친부모 정보, 입양인의 정보의 제대로 된 보호와 제대로 된 공개가 개정 입양특례법의 정신인 것쯤은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여러분의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나요? 여러분의 아이들한테 말씀해보세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요? 그런데 비혼모는 가능하다고요? 비혼모는 아이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인가요? 비혼모 위한답시고 사생활 보호 운운하는 그런 것, 제발 그만해주세요.

출생신고는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이에요. 엄마와 여러분이 제 가슴을 찢어놓고 버리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 존재 자체, 제 정체성을 앗아갈 권리는 엄마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없어요. 제 생명과 제 미래를 외치시지만 제 존재와 정체성이 가짜면 제 생명도 제 미래도 가짜일 수밖에 없어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으면 이걸 정말 모르시나요?

이제는 바꿔야 해요. 개정 입양특례법은 체계 없이 함부로 이루어졌던 친부모와 아동의 분리의 틀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화두 던지기였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였어요. 올바른 대안적 양육을 얘기해보아요. 친부모와 아동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원과 보호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어떤 조건 하에서 아동이 친부모와 분리되어야 하는지, 분리될 경우 어떤 시스템에서 아동이 보호되어야 하는지, 친부모와의 재결합은 어떤 조건 하에 어떻게 촉진되어야 하는지, 일시적인 분리 보호가 적절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면 입양이라는 영구적인 분리 보호는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여러분의 힘을 모아 주세요. 저 같은 아이한테 관심을 가진 여러분 모두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은 사회를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어요. 조금만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세요. 말씀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수십만명의 아이들을 기억해주세요. 제가 보이시나요.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엄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해요. 

                                                                          <공감 뉴스레터 2014년 1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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