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른 살 여판사의 다크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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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른 살 여판사의 다크서클
  • 법률저널
  • 승인 2013.12.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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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나는 올해 법원에 들어온 지 2년차에 접어든 서른 살, 여판사이다. 법대에 들어간 원죄 하나로 끝이 안 보이던 고시 공부 후에 다행히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2년을 마치고 법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팅팅 부은 눈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끔은 아침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교대역 언덕을 올라와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뻘건 눈으로 집에 들어오는 하루하루. 사회 초년생에게 주어진 것 치고는 꽤 넓은 사무실을 우배석 판사님과 둘이 쓰는 것 외에는 일요일 밤 개콘의 끝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서글퍼지는 것까지 내 나이 또래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이다.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재판이 있었지만, 올해는 일주일에 4일 정도 법정에 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판사를 법정에서만 보기 때문인지, 그럼 판사가 재판을 안 하고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 나와 같은 배석 판사는 부장님(세 명 판사 중 가운데 앉으시는 분)과 합의를 통해 판결 결론을 내리고, 그에 따라 판결문 초안을 쓰는 일을 주로 한다. 그래서 재판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소송 기록(양 당사자가 제출하는 서면 뭉치)을 읽고, 생각하고, 비슷한 사건의 판결문이나 판례를 검색하고, 판결문을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재판부 세 명이서 판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 외에는 말이다. 판사가 되긴 했지만, 점심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꼭 고시생 때와 비슷하다.

재판이 있는 날에는 법정에서 변론이나 증언을 들으면서 사건을 지켜본다. 처음 법정에 앉았을 때의 긴장은 이제 조금 사그라졌지만, 언제나 법정 안의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법정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가끔은 재미있는 일도, 눈물짓게 하는 일도 생기지만,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기본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판사가 예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닌지 판사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있을지 모를 당사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나 또한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 표정이나 몸짓을 유심히 보곤 한다.

법정에서는 부장님께서 재판 진행을 하시기 때문에, 배석 판사들이 나설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작년에는 종종 내가 맡은 사건의 조정 절차를 혼자서 진행했었는데, 나이 어린 여판사가 절차를 진행한다고 해서 자칫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스스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만난 배심원들 중에도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이렇게 나이가 어린 판사도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앞으로는 변호사 경력이 있는 분들 중에 판사를 임용하게 되어 점점 나 같은 판사들은 줄어들겠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서른이면 사실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나를 판사로 신뢰하지 않는 당사자들을 만난다면 굉장히 억울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이나 연륜은 부족할 수 있지만, 정확한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 맞게 법을 적용하는 데에 필요한 직업인으로서의 훈련은 성실히 수행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합의부는 경험과 연륜 있는 부장님을 포함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엔 나를 비롯하여 20대 후반부터 6,70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판사들이 있다. 그 많은 분들을 내가 모두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다들 밥을 먹을 때도 머리를 감다가도 사건 때문에 고민하고, 수많은 다른 직장인들처럼 밤을 밝히면서 사무실을 지키고, 검은 야심이나 사심 없이 눈앞의 당사자들에게 귀를 열어둔 분들일 거라고 믿는다. 따라서 방금 교대역에서 스쳐간 과로에 찌든 다크서클 아가씨가 내 사건의 주심 판사라고 해도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실 필요 없다는 점을 이 글을 빌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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