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보공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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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보공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 법률저널
  • 승인 2003.08.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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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행정자치부 사무관


요즘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적절한 이론으로 미시경제학의 『주인-대리인모형』(principal-agent model)을 꼽을 수 있다.

일을 맡기는 사람은 주인이고, 그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은 대리인이다. 대리인은 주인의 경제적 후생을 증진하는데 매진하겠다는 암묵적 약속하에 채용되고 월급을 받고, 어떤 경우는 그 공로로 임무를 마치면 연금도 받는다.

그러나 주인과 대리인의 사이에는 유·무형의 장벽이 있고 소통에 지장을 주는 정보격차가 존재한다. 그 결과 주인은 대리인의 일하는 내용(what)과 방법(how), 그리고 성과(performance)에 대해 관찰하거나 감시하는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게다가 대리인은 하나의 경제주체로서 주인의 목표와는 다른 대리인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목표를 극대화하려는 굴절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부정이나 복지부동으로 표현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배경과 출처는 바로 이러한 "주인-대리인 문제"에 있다고 보여진다.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것이 정당화될 경우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무죄로 이해될 수 있다. 굳이 "게임이론"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경제주체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전체의 후생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최적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자율 선택권이 공익·형평 등 국가·사회적 법익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리인에게 최적의 선택일지라도 사회 전체의 후생을 절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선택은 비난과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쉽게 관찰?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대리인 본연의 역할로 정상화되도록 강제하고 때로는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진을 치고 있는 장막(帳幕)을 낮추거나 허물어야 한다. 장막제거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대리인이 생산·취득한 정보에 대해 주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정보공개라 할 것이다.

바뀐 세상에는 바뀐 생각이 필요하다. 비공개대상정보 구체화, 전자적 시스템 구비 등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한 선결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그 제도는 실패한다는 경험을 우리는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정보공개법의 운영 경험에 비추어 볼때, 정보공개도 "주인-대리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정보공개 여부를 판단하거나 공개절차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입장보다 공공기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은 비공개를 전제하고 소극적으로 공개하기보다는 『공개원칙?제한적 비공개』라는 적극적 자세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정확한 행정정보를 적시(適時)에 최적의 방법으로 공개하기 위한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는데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정보공개 때문에 대리인들이 괴롭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히려 확 드러내고 일해 보면 어떨까. 주인은 정보를 찾아 헤매면서 투입하는 선별비용(選別費用)을 줄이면서 정보의 자유를 향유하게 되고, 대리인은 주인으로부터 신뢰와 평판을 얻게 되어 대리인에게 달라붙어 있는 "도덕적 해이"라는 꼬리표를 말끔히 끊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정보공개 패러다임의 전환,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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