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소 잡는 칼이 남발되는 세상,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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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소 잡는 칼이 남발되는 세상,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 법률저널
  • 승인 2013.05.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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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우도할계(牛刀割鷄)가 넘쳐나고 있다. 자유(子游)가 작은 성 무성의 태수가 되자 격려차 들렸던 공자가 무성의 거리에 거문고와 비파소리가 넘쳐나고 백성들이 시서 읊는 것을 즐겨하는 것을 보고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라는 말을 쓴 데서 유래된 고사성어 이다. 공자로서는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좋지만 높은 경지의 통치철학을 지나치게 작은 정치에 사용할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제자에 대한 격려 겸 우려를 표시하자, 제자인 자유가 “저는 스승님에게서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공자에게서 배운 예악의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최선을 다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 데서 나온 고사성어인 것이다. 좋은 소리이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자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닭 잡는 데는 닭 잡는 칼을 써야 하고, 소 잡는 데는 소 잡는 칼을 써야 하는 것이 우리네 세상사는 이치이다. 어느 경우에나 소 잡는 칼을 사용한다면, 언젠가는 닭 잡는 칼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덩달아 닭 잡는 사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 잡는 칼만이 난무하는 세상은 모든 문제가 손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그 후유증은 그 칼을 쓰는 자에게 되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치인 것이다.


쪽박은 아무나 깰 수 있다. 부자도 깰 수 있고, 거지도 깰 수 있고, 깡패도 깰 수 있고, 어린 아이도 깰 수 있다. 무조건 쪽박을 깬 후 한다는 말이 “나, 일 잘 하지?”하고 물으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잘 했다.”고 박수를 치거나 아니면 “바~보!”라고 놀릴 것이다. 최근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전형적인 두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개성공단철수”이고, 다른 하나가 “소위 포스코에너지의 왕 상무사건”이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이 횡행하면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쳐 박는다. 잘못하다가 그 칼에 맞아 자기마저 “모가지 떨어진 닭”이 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닭 잡는 데 닭 잡는 칼을 쓰면 힘없는 닭일지라도 반항을 해 볼 여지라도 있지만, 소 잡는 칼로 닭 잡겠다고 달려들면 힘 약한 닭은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해본 채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고 만다. 소 잡는 칼의 위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사회에 소 잡는 칼이 횡행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 잡는 칼 편에 서게 된다. 혹시라도 반대편에 섰다가 자기도 모가지 잘리는 닭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움츠러들게 되어 자기보호본능에 충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 잡는 칼은 이제 관성까지 생겨 소 잡는 칼로 무서운 맹수인 호랑이를 잡겠다고 설쳐대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거나, 있지도 않은 용을 잡겠다고 용을 쓰다가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될 경우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로소 “아, 내가 잘못했나?”하고 반문하거나, “아,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쪽박은 깨진 상태이고, 여기저기에서 목이 잘려나간 닭들의 시체만 즐비한 비참한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소 잡는 칼이 무림을 주름잡으면, 어딘가에서 영웅이 나타나 무림을 평정한다는 것이 무협지나 무협영화의 기본스토리이다. 그런데 세상사 모두 이런 스토리가 대부분 맞아 들어간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장풍이 횡행하는 무협지나 무협영화가 거짓말 같지만 재미있는 것이다.


결국 남북 간에 기싸움 끝에 개성공단철수라는 쪽박깨기가 발생하고 말았다.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빌미로 계속해서 우리측에 시비를 걸고 남한에 대한 무력행사 등의 협박을 퍼부으며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자 그만 박근혜정부는 지난 4월 26일 개성공단 사태에 대한 정부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을 철수하겠다고 결정해 버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7명을 남겨 놓은 채 전원을 철수시켜 버렸다. 이에 대해 박근혜정부는 북한이 워낙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써버린 전형적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조차 이건 너무 심하다라는 논조 일색인 것을 보더라도 확실히 쪽박을 깨버린 상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개성공단전원철수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개성공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는바 정부는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잔류 인원 전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는데, 문제는 이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국민보호가 아닌 국민방기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주는 경제적 기여도는 연간 1억 달라 정도이다.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건비가 대부분으로, 이것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이다. 북한의 근로자임금수준에 비하면 월 100달러 정도의 인건비가 적은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엄청난 임금착취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쉽게 말해 개성공단에서는 한 달 동안 북한근로자에게 일을 시키고 월급으로 10만 원 남짓을 지급하고 있는데, 만일 남한에서 근로자에게 월급을 저 정도로 적게 준다면 아마 그 기업체 사장은 근로자들에게 몰매 맞아 죽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은 북한에게도 경제적 이익을 주지만, 실제 경제적 과실의 큰 몫은 남한의 입주기업체들이 누려 왔던 것이 “진정한 진실”인 것이다. 적어도 남한의 개성공단입주기업들이 북한보다 10배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그런데 북한을 혼내겠다고 개성공단의 남측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시키는 결정을 전격적으로 내리고, 공장을 사실상 폐쇄하여 문을 닫아버리자 오히려 남한 입주기업들이 지금 “멘붕상태”에 빠져 버렸다. 정부가 북한을 길들이겠다며 닭 잡는 칼을 써야 할 곳에 개성공단철수라는 소 잡는 칼을 써 버린 바람에 북한도 나름 타격을 입겠지만, 모가지 잘린 닭처럼 입주기업체들이 망해버리게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강제철수당한 입주기업체 사장들은 지금 “우리 좀 살려주세요.”를 연발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다. 갑작스러운 공장폐쇄로 제품을 생산할 수 없고, 남품계약을 위반하게 되어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지경에 처해지고,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은 대출금 이자가 쌓여가고 있다. 망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공장을 가동하면 10%의 이익을 보지만, 공장을 닫으면 100% 손해를 보게 된다. 하루 공장 폐쇄는 열흘 애써 벌어야 충당될 수 있는 손익분기점인 것이다. 한 달 간 문을 닫으면 일 년 장사가 헛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공장 닫는 것을 겁을 내는 것인데, 그냥 박근혜정부는 조자룡 헌 칼 쓰듯 마지막 써야 할 히든카드를 너무나 쉽게 써버린 것이다. 마치 개그맨 심형래가 한참 개그를 하다가 “영구, 없~다.”고 깨방정을 부리며 국민을 웃겼듯, 대한민국 정부가 “개성공단 없~다.” 해버린 꼴인 것이다. 북한이 감기가 들었다면 남한 기업은 4기말 암환자가 되어버린 꼴이니, 이 일을 어찌 쪽박 깨버린 상태라고 하지 않겠는가?


통보하고 하루만에 철수결정을 해 버리는 이런 조급증, 이게 바로 불통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들여다보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며 또 기다리는 것, 그게 소통의 첫 번째 단추이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의 여유가 없이 “지금 내 말을 안 들으면 앞으로 다시는 너를 안 볼 거야.”하는 방식의 접근방법을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수없이 보여 왔다. 아무리 북한이 미워도 북한은 나름대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힘을 가진 자에게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 하는 것은 너랑 대화하지 않을 거야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물론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참으로 알다가 모를 기막힌 정권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를 수없이 멘붕상태로 몰고 가는 그들이 한편으로 밉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화상대가 되어야 할 존재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남북 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물밑접촉이라도 하루 속히 재개되어야 한다. 깨진 쪽박을 바늘로 꿰매던 50년 전의 어머니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50년 전 우리의 부모들은 깨진 쪽박도 바늘과 실만 가지고도 꿰매 재활용하였다. 수많은 내 친구들의 부모님도 그랬다. 그랬기에 쪽박 깨는 것을 겁을 내는지 모른다. 꿰맨 쪽박이 아무리 좋아도 새 것만 못 하니까. 하지만 쪽박 깨지면 새 것 사서 쓰면 된다는 것에 익숙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수고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항공 기내에서의 “소위 라면사건, 왕상무사건”에서 폭행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징계위에 회부된 끝에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벌금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잘못 때문에 수십 년 간 쌓아온 한 직장에서의 생명줄이 잘려버린 것 역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다. 여론에서 그는 강자가 행패를 부린 자로 묘사되었고, 그렇기에 겸손이 아니라 군림하려 했던 그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 비등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다시 말해 형법적으로는 아주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작은 폭행사건이었을 뿐인데, 해고나 다름없는 사표수리가 되어 버린 것은 우리 사회가 소 잡는 칼을 써버린 다른 행태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남용하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참을성이 없어져 가는 세상, 행위에 대한 적정한 대응책 수립에 대한 기다림의 부재, 이러한 모든 것이 속도전에 젖어버린 컴퓨터문명세대의 후유증이 아닐까? 나는 지금 생각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사실을. 제발 소 잡는 칼을 함부로 쓰지 마라. 우리 모두 파리 목숨, 아니 닭 모가지가 되고 싶지 않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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