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야구 꿈 접고 암을 이겨내고 행시 합격한 김상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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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야구 꿈 접고 암을 이겨내고 행시 합격한 김상덕씨
  • 법률저널
  • 승인 2013.01.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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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공직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공직자가 되어 바르게 살고, 국가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공직자가 되도록 항상 주의하겠습니다.”


뼈암인 ‘골육종’ 때문에 다리가 불편해져 야구의 꿈을 접고 뒤늦게 공부에 매진해 지난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김상덕(27.사진)씨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분들에게 대한 감사와 포부의 말이다.  그는 5~6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잠실야구장에 가서 LG트윈스 야구 경기를 보았다. 탁 트인 야구장의 전경과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갈 때 나는 소리가 무척 좋았다.


어릴적부터 야구에 대한 ‘끼’를 느낀 그는 자연스럽게 야구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고 다니고 있던 경기 의왕부곡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창단 되어서 야구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그는 1998년 9월 9일 서울 중구 장충어린이야구장에서 열린 제28회 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에서 서울 성동초와의 4강전에서 선발투수로 나갔다. 그는 선발로 등판해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 침묵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하고 공동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씨는 실력을 인정받아 ‘박찬호 야구 장학생’에 추천됐다. 장학생으로 일주일간 미국 연수도 다녀왔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야구 경력이 됐다.


그의 무릎에 ‘암(癌)’이 발견된 것. 성장통인 줄 알았던 무릎 통증이 병원 검사 결과 뼈암인 ‘골육종’으로 밝혀졌다. 오른쪽 허벅지 뼈를 이식받고, 무릎에 인공관절을 이식 받으면서 격렬한 운동이나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그가 바랐던 야구의 꿈도 자연스럽게 접어야만 했다.


김씨는 암을 극복하기 위해 네 차례의 항암치료와 두 번의 대수술, 그리고 수술 이후 여덟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좋은 의사와 간호사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부모님의 극진한 간호를 통해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수술과 치료 탓에 남들보다 한 살 늦은 만 14세 때 중 1이 됐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릴 때부터 야구부 활동을 해 책과 친하지 않아 공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여 밖에서 지내는 시간보다는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차 책과 공부에 빠지게 됐다.


김씨는 무작정 친구들의 참고서를 빌려서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항암치료로 인해 친구들보다 한 학년 낮은 학년에 들어가게 되면서 친구들의 1년전 교과서나 참고서를 빌려서 읽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할 때는 영어 단어를 읽을 줄도 몰랐지만 졸업할 때는 조기유학 다녀온 친구들 수준으로 영어 회화가 가능했다. 마침내 김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과천외고에 진학했다. 이후 2006년 연세대 인문계열에 입학했다.


김씨가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된 것은 “암치료 과정에서 가깝게는 가족 및 친척,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멀게는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경제적 심정적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완치 판정 이후 학교를 다니면서 앞으로의 삶이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며 이러한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이 공직자라는 생각을 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는 2008년 3학년 때 행정학과로 전과하고 2009년 9월 행정고시 도전에 입문했다. 수험생활에 다른 것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체력적으로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조금 무리해서 공부를 하면 몸이 아팠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 내에 최대한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았다.


그가 3년 만에 합격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부모님의 믿음과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부모님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공직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시겠다고 하셨다”면서 “이것이 공부하는데 조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PSAT 공부는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했지만 2011년 1차 불합격 이후에는 2년치 모의고사를 구해다가 풀 정도로 많은 문제를 풀었다. 하루에 1세트 정도를 푼 뒤, 틀린 문제를 다시 살펴보고 왜 틀렸는지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다만, 모의고사를 풀면 항상 커트라인 정도의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불합격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심적으로 어려웠다.


PSAT 막판 1주일 전략으로 자주 틀리는 유형의 문제들을 따로 모아서 풀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컨디션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1주일 전부터는 잠을 충분히 자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자 했다. 또한 실전과 동일한 시간에 모의고사나 기출문제를 풀면서 실전에 대비했다.


2차 공부는 학원 강의와 스터디를 병행했다. 경제학-행정법-행정학-정치학 순으로 3순환 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스터디원이 서로 다른 모의고사 문제를 교환하여 풀고 답안지를 돌려보면서 공부했다.


답안작성은 문제의 난이도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많이 작성해보고자 했다.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주 많이 글을 작성하고, 스터디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오는 4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연수를 받게 될 그가 바라는 공무원 상은 “권위적이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봉사하는 헌신적인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공직을 희망하고 공부를 준비할 때에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는 공직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항상 믿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치료과정이나 완치 이후의 삶에서 실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러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연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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