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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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 : 첫 번째 이야기
  • 법률저널
  • 승인 2012.08.0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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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8월이 되었다. 2차 시험도 마무리되었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때이다. 학원가의 일정상으로 1순환 경제학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외무고시는 국제정치학을 공부해야 할 때이고 5급 공채 행정직은 행정법을 시작하는 때가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과목마다 기본기를 익혔다고 보고 기본적인 것을 복습하면서 좀 더 시험 주제에 가까운 것들을 다루어갈 때이다. 그리고 이것을 답안으로 옮길 때 이다.
 

현재 시점에서 수험생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2차 과목의 논술형 답안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시점에서 고민스러운 것은 자신이 배운 것을 어떻게 글로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많이 공부하고 잘 정리하는 것 못지않게 이것을 어떻게 글로 옮겨서 자신의 사고를 잘 포장해서 채점자에게 어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본인의 내면이 모습이 뛰어나다고 소개팅에 나가면서 집에서 입던 추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하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처음에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뒤에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답안을 평가해야 하는 채점자의 입장에서 그 답안의 내면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는 우선 그것이 글로 잘 표현되었을 때 평가되어 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어쨌든 사회과학적 글을 쓴다는 것의 몇 가지 팁을 가지면 본인의 답안이 조금 더 명확하게 채점자에게 전달될 것이다. ‘사회과학’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고려할 것은 내가 누구에게 읽히는 글을 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필자가 쓰는 칼럼은 일반독자가 읽지 않는다. 『법률저널』이라는 신문을 읽는 독자들만 본다. 그 대상은 대체로 수험을 준비하거나 시험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를 피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이론만을 소개하는 것도 피하려고 한다. 이론적인 글과 완전한 칼럼 사이를 오가면서 이론을 간단히 소개해서 사회현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글 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한다면 잘 먹혀들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딱딱한 이론에 관심이 적으니까.
  

그럼 수험생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가? 채점자가 그 대상이고 채점자들은 각 분야에서 최소한 20년 이상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학교나 연구소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분들이다. 그리고 거의 매일 일정한 분량의 자기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고 관련된 글을 만든다. 따라서 수험생은 채점자라고 하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설득해야 한다. 내용상 획기적인 것을 통해서 채점자에게 어필하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험생의 짧은 공부기간동안 생겨난 아이디어는 대체로 이미 누군가에게서 나왔던 아이디어다. 단지 수험생이 모를 뿐이다. 전세계에 수 만명의 연구자들이 매일 자기 분야를 연구한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하면 대체로 연구가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새로운 것과 새롭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문 연구자가 아닌 수험생이 이것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수험생은 자신이 배운 것을 잘 정리해서 그것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실성과 간명함이 수험생 답안의 미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겸손함은 기본적인 미덕이고.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고 생각하려면 일정한 경지에 올라야 한다. 그런 경지에 오르면 더욱이나 자신의 지적인 세계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올바른 학자들은 겸손하다. 그러니까 아직 학자가 아닌 수험생은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 더욱 겸손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게다가 수험은 학문의 세계와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더욱이나 그렇다.    
  

그럼 사회과학적 답안을 구성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회과학’적이라는 것은 ‘사회’와 ‘과학’이라는 것이 합쳐진 용어이다. 여기서 ‘사회’라는 것은 ‘자연’과도 다르고 ‘인문’과도 다르다. 크게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인문학과는 다르다는 견지에서 ‘사회적’인 분야를 다루는 것이 사회과학이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이 추구하는 극단적인 법칙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과학은 수나 그래프를 이용해서 객관화된 법칙(law)의 세계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과학은 어느 정도 반증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복잡해 졌는데 여기서 ‘사회’의 의미는 반증가능한 ‘이론’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글쓰기의 이야기로 전환하면 이론적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이라는 점에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닮았고 인문학과 다르다. 인문학은 인간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주와 같은 존재로 본다. 따라서 인문학이 설정하는 인간 군상은 ‘다양성’이 기본이다. 수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다른 인물들과의 만남 속에서 어떤 심상을 가지게 되는지를 묘사한다. 인문학에서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거나 인간과 교감을 하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인간의 모든 지각이 묘사되며 그 이미지들을 극대화함으로서 독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지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은유와 비유를 동원한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오해의 여지를 즐기면서 인문학은 발전해 왔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과학’이라는 용어를 달면서 인문학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려고 해왔다. 18세기 이후 사회현상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가능하다는 신념과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통한 실험들은 사회현상을 각각 구분하여 그 사회현상들의 궁극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자연과학에 힘을 빌려 사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사회현상이 일반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화되기 위한 전제는 인간이 이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성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예측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사회과학에서 인간은 ‘일반화’되는 존재로 상정된다. 그래서 일반화된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어떤 현상의 원인이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문제로 다시 와서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론들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론이란 패러다임과는 다른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가정 말고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독립변수를 통해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과학의 기본은 이론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 것 바로 그 점이다. 이런게 안될 때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설명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패러다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론적 설명보다 하수에 놓인다.
  

수험생들이 공부하는 분야들은 모두 이론을 발전시켜서 현재 그 위치까지 왔다. 그것이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한 학문의 역사이다. 탄생기를 거치면서 발전단계를 거쳐 이제 쇠퇴기에 접어 들어가고 있는 학문 분야가 있는가 하면 이제 발전기를 맞이하면서 학문적 독자성을 찾아가는 분야가 있다. 어찌되었든 글을 쓰는, 엄밀하게 답안을 쓰는 문제로 돌아와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론을 공부하고 이론을 정교하게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과학적인 답안을 쓰는 첫 번째 걸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주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회과학이 다루는 분야는 논쟁이 있는 분야이다. 사회가 다원적이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주장을 한다. 그래서 논쟁이 생기면 사회과학은 이 논쟁의 중심에서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참모로서 정책판단을 돕거나 직접 정책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특히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겨야 한다. 반드시 판단을 내려야 하며 그것이 타당성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론이 탄탄한 사람이 논쟁에서 강하게 어필하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 ‘과학’적이라는 것은 글쓰기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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