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봄꽃, 사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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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봄꽃, 사람꽃
  • 법률저널
  • 승인 2011.04.1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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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봄이 왔다기에, 어느새 봄이 왔나보다 했더니, 꽃이 피었다. 매화꽃이 피더니, 개나리꽃이 피더니, 목련꽃이 피더니, 진달래꽃이 피더니, 살구꽃이 피더니, 민들레꽃이 피더니, 복숭아꽃이 피더니, 벚꽃이 피더니, 마지막에 사람꽃마저 피었다. 카이스트라는, 머리 좋은 젊은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들어가면 대부분 출세가 보장된다는, 그래서 합격하면 세상꽃이 될 거라는, 입학해서 부모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만들어주었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람꽃이 되었다. 붉게, 붉게, 붉게, 핏빛으로 아주 붉게 죽음꽃이 되었다. 혼자 죽겠다고 죽었으나, 혼자 죽으면 되냐며 다른 꽃이 따라 죽고, 같이 아파하던 또 다른 꽃이 따라 죽고, 혼자 외로워하던 또 다른 꽃이 따라 죽는다. 옥상에서 떨어져 핏빛꽃 하나 남기고 죽는다. 죽는다. 죽인다. 살아남은 부모님을 죽이고, 친구를 죽이고, 교수를 죽이고, 이 사회를 죽인다. 죽어서 아주 잠깐 이 사회를 살린다. 탐욕의 세상에 짧은 동안 투명공기를 주입해 세상을 살린다. 잠시 후 또 죽고 말 사회이지만.  


꽃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한다. 꽃은 잎으로 말한다. 붉은 잎으로, 노란 잎으로, 분홍 잎으로, 하얀 잎으로, 꽃은 잎으로, 잎으로 말한다. 눈으로 들으라고, 머리로 들으라고, 가슴으로 들으라고 몸부림친다. 꽃은 말하고 싶어서, 꽃잎으로 말하고 싶어서, 겨우내 그 추위를 이기고 땅속에서 숨 골랐던 거다. 봄에 피는 꽃은 그냥 피는 거 아니다. 보는 이에게 요구하는 거다.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래서 예쁘구나 하지만 말고, 제발 꽃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라는 거다. 꽃이 말하는 소리를 제발, 제발 들으라는 거다. 꽃이 누구를 해치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는 거다. 그냥 제 뿌리에 만족하고 있다가 힘써 피는 것이라고, 제발 남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다. 그래도 네가 나를 죽이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꽃은 말하는 거다. 제발 죽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모양으로, 향기로, 색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는 거다. 사람들더러 아름답게 살라고 말하는 거다.


교정에 꽃이 피었다. 매년 꽃이 피지만, 매년 그 꽃을 바라보아왔지만, 연구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교정의 꽃들이 올해는 왠지 처절하구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이 사회는 이미 통제불능의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저렇게 봄이 오면 어김없이 피는 꽃처럼 때가 되면 저절로 순응하는 자연법칙을 더 이상 인간사회에서는 응용하기 어려운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닐까?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있는 지금, 대안부재의 카오스상태에 이른 것은 아닐까? 저 활기찬 젊은 꽃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거대한 공룡은 왜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까? 그런데 지금, 지금은, 다시 인간공룡이 판을 치기 시작한 쥬라기공원시대의 첫날이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공룡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 그 세상에서 꽃이 밟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룡의 발자국에 사정없이 꽃들이 짓밟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룡이 공룡의 손을 잡고 걷는다. 공룡이 공룡을 등에 없고 뜀박질한다. 작은 공룡이 큰 공룡의 등에 업혀, 큰 공룡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높은 산이 한 입에 먹히고, 넓은 바다가 한 입에 먹히고, 저 꽃이, 저 작고 앙증맞은 꽃이 야금야금 먹힌다. 공룡의 이빨이, 저 커다란 이빨이, 뽑힐 것 같지 않은 저 견고한 이빨이, 부러질 것 같지 않은 저 단단한 이빨이, 사정없이 사람꽃을 먹는다.    봄이 왔다기에, 천국에서부터 봄이 왔다기에 기뻐 창을 열었더니, 중국에서는 황사바람이 불어오고, 일본에서는 방사능바람이 불어온다. 저 바람을 어찌 할꼬, 어찌 피할 수 있을꼬, 어찌 막을 수 있을꼬. 살기 위해 창문을 닫으며, 봄을 잃는다.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하는데, 햇빛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봄이지만 창문을 닫아야 하는 세상이다. 여의도에서 벚꽃소식만 전해오는 줄 알았더니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원로목사의 가족들 재산비리문제가 들려온다. 남산에서 훈풍이 불어오는 줄 알았더니, 호텔신라 뷔페식당의 한복 입은 손님은 위험해서 안 된다는 한복손님입장불가라는 해괴한 소식이 들려온다. 수십조 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신형무기구매계획이 일사분란하게 수립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북한으로부터는 현대건설에 대해 금강산관광협약을 파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싸움을 포기하면 아주 적은 돈으로 충분한데, 싸움을 대비하면 매년 수십조의 돈이 들어가니 이 또한 황당하다. 건설한 지 33년째를 맞는 고리1호기의 고장으로 원전가동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고, 일본의 후쿠시마원전방사능유출이 최고위험단계인 7단계로 격상되어 러시아의 체르노빌원전사고수준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온 천지가 지뢰밭이니, 봄이 오면 꽃만 피는 게 아니라, 시한폭탄의 초침소리도 함께 피는가?


봄이 왔으면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하는데,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으니, 어찌 봄이 왔다고 할 수 있으랴? 넘쳐나는 풍요 속에 빈곤이 판을 치고, 안정된 질서 속에 폭력이 난무하고, 무리 속에 신의가 상실되니 어찌 지금을 봄이라 할 수 있으랴? 아,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흉노 땅에 끌려가 고향 그리며 눈물짓던 한나라 절세미인 왕소군처럼,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라고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희망이라는 세상을 꿈꾸며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꽃에게 없는 두 발이 있고, 두 손이 있고, 생각하는 지성이 있지 않은가? 아주 조용한 한 걸음, 그 한 걸음만 내딛자. 그만큼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공룡에게 빼앗겨버린 꽃밭에 가을을 위해 해바라기꽃씨를 뿌리고, 국화꽃씨를 뿌려야 하지 않겠는가? 코앞으로 다가온 4ㆍ27 보궐선거에서 꽃들의 반란이 한 번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꽃은 공룡 앞에서 꽃일 뿐이다.


세상을 잠재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 버리면 된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원전의 방사능유출사태가,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덮어 버리고, 정작 우리에게 현안이 되었던 수많은 문제들을 모두 집어삼켜버렸다. 답답해진 국민은 영국 맨체스터유나이티드팀의 박지성선수가 2010/2011년 유럽축구연맹챔피언스리그 8강전인 첼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 넣은 것에 환호하고,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팀의 이승엽선수가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시즌 2차전에서 3점짜리 홈런포를 쏘아올린 것에 환호하고 만다. 결승골이 꽃이고, 홈런포가 꽃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축구시합이 끝나자마자 도핑테스트를 받아야 했던 박지성이 불쌍하고, 요미우리팀에서 일방적 방출통고를 받았던 이승엽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첼시전에서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죽을 둥 살 둥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은 체격에 덩치 큰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채이고, 이마가 터져 피까지 흘려가며 생존을 위해 죽어라고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 모습이 아마 카이스트 학생들이, 우리 젊은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뛰고 있는 모습의 대표적 모습이 아닐까 싶어지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선수라며, 대환영하며 모셔갔지만 실력이 바닥나자 사정없이 퇴출되어 버린 이승엽선수, 오릭스로 이적하여 절치부심하며 다시 홈런포를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면, 잘 나가던 직장에서 쫓겨나 백수가 될 수밖에 없는 사오정 소리 듣는 4ㆍ50대 가장들의 모습이 크로즈업되어 오기 때문이다.   


9억 원 이상의 부동산거래 시 취득세 등을 반값으로 낮추겠다는 정부, 지방세인 그 세금 감면액만큼 정부 돈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보전해주겠다는 정부, 부동산거래활성화를 위해 세금감면정책을 써 약 2조 1천억 원 정도의 세수부족분을 가난한 서민들이 내는 쥐꼬리만한 다른 세금을 걷어, 그 돈으로 부자들의 부동산거래활성화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발상, 이게 바로 꽃이다. 꽃 중에서도 개꽃, 바로 개꽃이다. 4대강 본류정비가 아닌 지류하천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4대강개발반대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4대강사업에 20조가 넘는 돈을 투자하더니, 이제 슬그머니 하천 지류사업에 다시 20조 원이 넘는 돈을 재투입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정부의 아주 참신한(?) 발상, 이게 바로 꽃이다. 무슨 꽃이냐고 묻지 마라. 이미 정답은 위에 적어 놓았으니까. 세상이 비록 춘래불사춘일지언정, 왕소군이 타는 악기소리 한 번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아가는 기러기조차 소군의 노랫가락에 빠져 날개짓하던 것을 잃고 떨어졌다는, 그래서 낙안落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왕소군의 황홀한 연주를 이 봄에 누군가로부터 들으면, 내가 꽃이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풀피리소리 들려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모두 봄꽃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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