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시사 쟁점> 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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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시사 쟁점> 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 법률저널
  • 승인 2011.04.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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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생각

 
『정의란 무엇인가』가 여전히 서점가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목록에 있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밀려서 베스트셀러의 왕좌를 넘겨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 미치는 여파는 큰 것 같다. 하버드대학에서 케임브리지로 옮겨간 사회적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은 왜 말하지 않는가?”이다. 합쳐서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왜 그들은 말하지 않는가?”가 될 것 같다.
 
왜 정의란 무엇인가에 그들이 답하지 않는가가 이번 시간에 다룰 주제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초대박이 나서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학자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들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변화는 그렇게 잘 감지되지 않는 것 같다. 왜 많은 이들이 정의가 무엇인가에 골몰해야 한다고 그렇게 믿고 있는데 조금씩 사회가 정의롭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일까? 아직 변화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가? 그러면 내년 정도 되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고 더 정의를 구현하는 일들이 생겨날까?
 
나(I)는『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질 것인지 알고 싶다. 정의론에 대한 열광 뒤에 숨겨진 것을 찾아야 당신(You)들과 내(I)가 살고 있는 우리(We)라는 인식적 공간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야 그들(They)이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를 알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너무 잘 나가서 이에 대한 한국사회의 답변이라는 형식으로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문화평론가와 철학자들 11명이 한국사회의 정의론 열풍과 그에 대한 고찰을 담아서 낸 책이다. 약간 말장난 처럼 보이는 제목은 자칫하면 신중하게 제목을 안보고 책을 살 경우 샌델 책처럼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책 표지에도 대조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샌델이 천 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과 달리 한사람이 두 가지 화살표방향을 바라보면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 표지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포스가 매우 다르지만 구도는 유사하다. 재미있는 분들이 재미있는 출판 편집자를 만나서 재미있는 책을 낸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어 원제목은 『JUSTICE』이다. 그냥 정의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도발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소설가 장정일 씨는 이 제목이면 책을 백지로 내던 책을 검은 먹물로 칠해서 내던 50만부는 그냥 팔려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동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제목의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정의론이 이렇게 초대박이 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하버드대학의 명강의라는 책표지의 광고는 하버드가 한국에서 먹히는 학벌주의를 한 가지 이유로 든다. 하지만 하버드에서 나온 책들이 성공한 경우는 흔치않다. 혹여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논술대비용으로 생각하고 책을 샀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른 설명은 정부의 공정사회론에 기인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공정사회론을 들고 나왔고 때 마침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 인사청문회가 겹친데다가 유명환 장관의 딸이 외교부에 특채로 채용되는 과정이 겹치면서 정부가 공정사회를 이야기 하면서 공정성은 빼고 이야기 한 상황에서 도대체 그 사이의 빠진 공정성 혹은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에 사람들은 분개하지 않는데 공정사회에 공정성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분개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가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의에 대한 관심을 좀 더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들과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등으로 한국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바뀌게 되면서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상황이 된 것 역시 정의론 수요를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잠재적인 정의에 대한 수요는 실제로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이다. 대의민주주의 즉 정치적 대표들에 대한 불만은 최근 투표율 하락으로 잘 나타난다. 정치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분배해야 하는 정치대표들에게서 정의로운 분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사법부로 향하게 하였다. 사법부의 강화와 ‘제왕적 사법부론’의 등장은 우리사회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기관에 대해 가지는 기대의 뒷면이고 실망의 앞모습이다. 정의론은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와 분배구조의 위기와 사회적 갈등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삼성과 이건희라고 하는 특정 기업과 특정 재벌회장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태도는 부의 지배가 곧 정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범죄도 사회적 합의없이 사면이라는 관대한 처분에 의해 용서되어진 다는 것은 권력 역시 정의를 규정한다는 것을 공개한 것이다. 따라서 정의가 없다고 생각되거나 정의가 다른 권력자원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에 대한 거부의식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원리를 구형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려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정의론을 문화상품으로 규정하고 정의론 하나쯤 끼고 다녀야 학생답게 보이고 지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스타벅스화’효과를 통한 설명도 있다. 집단적인 환각처럼 정의의 내용보다 정의론의 껍질에 대한 소비를 지적하는 이 씁쓸한 비판은 하버드에서 강의를 재미있게 진행해서 이 책이 나오게 만든 샌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마케팅을 잘한 김영사와 김영사의 책 골라내는 능력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더 읽히게 만든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 때문에 이 불경기에 많은 사람들이 소설보다도 이 책을 선택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정의에 대한 수요가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학문적으로 정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거나 어떤 사상가들이 정의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하는 것이거나 샌델이라는 하버드의 정치사상 교수의 정의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은 것이거나 등을 포괄해서 정의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justice)를 무엇이라고 정의(definition)할 수 있을까? 물론 정의를 한마디로 규정내릴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를 묻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가치고 있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원래 정의란 용어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그 원 뜻은 “제 자신이 할 일에 마음을 쓴다”이다. 그리고 이런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로마와 이슬라 국가들을 거치면서 근대로 이어져왔고 현대적으로 이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공화주의라는 한 그룹의 사상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정의는 시대와 시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끊임없이 변용되어왔다.
 
정의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정의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원인이기도 하다.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개인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과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정의를 개념적으로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정의에 대해 사람들의 무행동에 대한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즉 정의에 대해 규정을 내릴 수 없다면 정의를 알고는 싶지만 그렇게 행동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정의로운 행동을 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은 더 정의의 규정에 탐닉하게 된다.
 
샌델의 책은 한국어 제목에 충실하지 않게도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여러 정의를 다루는 사람들을 보여주고는 마지막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야기함으로서 자신이 ‘신아리스토텔레시안’이라는 힌트만 주고 끝난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그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답을 말하지 않는다. 샌델의 의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에 대한 강조를 의도한 것이라면 정의(Justice)의 정의(Meaning)에 대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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