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일기]2차 발표와 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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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일기]2차 발표와 두 친구
  • 법률저널
  • 승인 2002.12.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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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 J에게


어젯밤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오늘 아침 서울도 출근길이 빙판이 되고 차들이 하얀 눈옷을 입고 있더구나. 울산은 어떠냐? 거기도 이제는 바람이 많이 매서워졌지 않니? 내가 택배로 부친 1차 모의고사 문제지들은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발표하는 날, 마음 졸이면서 명단을 봤다. 일단 나경광이란 이름 다음에 상훈이가 보이고, 류주연이란 이름 다음에 혜정이가 보여서 기뻤다. 네 이름도 보이기를 기도하며 ‘ㅇ’쪽을 봤다. 그런데 가나다순이란 것이 왜 그리도 잔혹한지, ‘종’자가 끝나고는 바로 ‘주’자로 넘어가 버리더구나. 그리고는 ‘준’으로 ‘지’로 ‘진’으로 멀어져만 가더구나. 그거 보면서 친구인 내가 마음이 아픈데 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1차 합격자 명단을 볼 때와도 또 다른 것 같다. 이제 1차는 자기 점수를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커트라인이 알려지면 명단은 합격과 불합격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2차는 수석합격한 사람도 합격을 자신하지 못해서 합격 그 자체를 기뻐한다고 한다. 발표 나고 십 여분 후 내가 전화를 망설이고 있을 때, 너는 “병태야 내다. 니가 전화하기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먼저 했다.”면서 일부러 씩씩하게 얘기를 했었지. 그리고는 뭐라 뭐라 한 것 같았는데 내 귀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너의 합격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주고 내려간 책 중에서, 너무나 정리가 잘 되어서 네가 다음에 볼 일이 있을 것 같은 책에도 내 이름을 다 적어 놓았다. 일종의 주문(呪文)인 셈이다. 너는 1년동안 성실하고 꾸준하게 공부를 했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열심히 했었다. 밥 먹으러 갈 때도 늘 테이프를 듣고 다니고, 5월말부터는 나를 만나도 무표정한 얼굴을 지을 만큼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던 월드컵 한국전 때도 독서실에 너와 어떤 여자 분만 남아 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너의 생활에서 자극을 받고 자신의 생활을 반성한 친구나 후배들이 꽤 있다. 늘 10%안에 드는  모의고사 성적이 너의 노력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했기에, 너의 불합격은 너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작년에 내 친구 중의 하나가 행정법 39점 과락을 맞고 불합격했었다. 그래서 60점 수석, 50점 합격, 40점 과락의 현 과락제도에 대해 ?고시생일기 12회, 2001년 12월 11일자?에서 비판했었는데, 그 후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는 것 같다. 네가 형법 1문을 잘 못 쓴 것 같다고 했을 때, 워낙 어려운 문제라서 다른 사람들도 그리 잘 적지는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 해도 내 가까운 곳에서 넉넉하게 합격선을 넘기는 총점을 받고도 형법 39점 과락으로 불합격하는 친구가 나오니 가슴이 아플 뿐이다. 머리 속에 실력이란 말보다는 운(運)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래도 발표 난 그 다음날부터 공부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놓이고, 내년에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나도 서울에서 최선을 다 하마. 너에게도 나에게도 내년은 공부한 큼의 운도 따르는 한 해가 되기를 첫 눈(雪)을 향해 빌어본다.


2. 친구 R에게


너에게 어떤 위로가 되겠냐만은 그동안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지난 목요일 밤의 술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인사를 나눈 너의 선배들 후배들도 다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구나. 어디를 가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더니, 불합격해서 위로 받으러 온 그 술자리에서 조차 너는 너의 아픈 마음을 짐짓 희화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더구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너를 보며 또 하나를 배운다.


어제는 새로운 곳에서의 첫 밤을 지냈겠구나. 4년 동안 다니던 독서실에서 책을 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네가 신림동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네가 경기도 어느 산자락에 있는 기숙식 학원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결과가 발표 나고 나와 같이 하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다가와서 인사하고 격려의 말을 전하더구나. 물론 네가 학원강사로서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그 수강생들이 강의로 또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고시공부란 것이 자기에게 마음 써 주는 사람들과도 일부러 멀어져야만 하는 고독한 과정이라는 것을 너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텔레비전도 없고 편의점을 가려면 오랫동안 걸어나가야 한다는 그 곳에서는 생활이 단순해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너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오랜 수험생활로 흐트러졌을 수도 있는 몸과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의 공부로 다져진 실력을 시험장에서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을 키우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두꺼운 옷을 준비하고 침낭까지 준비하는 것을 보았지만, 춥다는 그 곳에서 건강 잃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서 고생하러 간 그 곳에서 그 만큼의 좋은 결과를 갖고 나오기를 바란다.


3. 그리고 합격한 이들에게


규남아, 상훈아, 병덕아, 석아, 종훈아, 진욱아, 승렬아, 성호야, 혜정아 축하한다. 앞으로 사법부 공무원이 되든, 행정부 공무원이 되든 바로 변호사가 되어 사회로 뛰어들든 힘들게 공부한 이 때를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게 된 의미 있는 자격증을 좋은 곳에 쓰리라 믿는다. 이번에 불합격한 친구들에게 마음으로 또 ‘물질적으로’ 위로해 주기를 바라고, 내가 내년 또는 그 후년에 너희들의 후배가 되기를 내 생각이 날 때마다 정화수 떠 놓고 빌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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