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 너무 흔한 강간치상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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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 너무 흔한 강간치상죄
  • 법률저널
  • 승인 2010.09.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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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변호사 법무법인 세인

피해 여성의 증언에 의해 4명의 흑인이 자동차 안에서 백인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의 범인 중 한명으로 인정되어 징역 75년형을 선고받고 1983년부터 27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남자가 최근 DNA테스트로 혐의를 벗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징역 75년형이란 무지막지한 선고형은 빼고.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 활동을 통한 재심절차가 없었다면, 그리고 피해자의 바지에서 정액 얼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상상만 하여도 아찔할 수밖에 없다.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 여성을(특히, 어린 소녀를)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한 후에 다시 재판과정에서 증언까지 서게 하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다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흥분하기도 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면 뚜렷한 다른 증거가 없는 한 피해 여성의 진술을 따져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피해 여성의 진술에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뚜렷한 모순이 확인되지 않는 한(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피해 상황을 진술하기가 어려울 것이며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있을 수 있다면 대체로 너그러운 편이다) 여성의 진술에 따라 범인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 수사 및 재판의 현실이라 하겠다. 결국 피해자에 의해 강간범으로 한번 지목되면 확실한 반증이 없는 한 결국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 사건의 관련 기사에서도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유전자 감식으로 혐의를 벗은 258명 중에서 4분의 3은 단순히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피해자를 강간한 경우이며, 강간치상죄는 강간 과정에서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인데, 강간이 미수에 그친 때에도 그 수단이 된 폭행에 의하여 피해자가 상해를 입으면 성립하게 된다. 강간 과정에서 폭행이 없을 수 없고 이로 인해 가벼운 상해라도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후에 병원에 가면 상해진단서는 어렵지 않게 발부받게 되므로(솔직히 피해자가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어떤 다른 이유로 상해진단서를 발부받아 강간치상을 당하였다고 허위신고를 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피해자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강간범을 강간치상죄로 처벌받게 할 수도 있다. 친고죄가 아닌 강간치상죄는 법정형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무시무시하지만 위와 같이 너무나 흔하게 발생할 수가 있으며, 강간 자체는 미수이기에 정액 등을 통한 유전자감식을 할 수가 없는 경우에는 오로지 피해자라는 여성의 입에 의해 범인이 결정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변론을 하였던 사건의 범죄사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의자(27세, 대학병원의 방사선기사)는 2010.6.28.04:30경 어느 상가 건물 1층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헤어진 피해자(여, 23세)에게 욕정을 품고 강간할 마음으로 따라가던 중 피해자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같은 건물 1층 계단으로 들어서자 피해자의 왼쪽 손목을 잡아 1층 계단 옆 빈 공간으로 끌고 갔다. 피의자는 피해자를 난간으로 몰아놓고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머리부위를 약 4대 때리고 양쪽 손으로 양 손목을 잡아 눌렀으며 발로 오른쪽 허벅지를 1회 걷어차는 등 항거 불능케 한 후 가슴을 만지며 치마를 들치면서 팬티를 벗기며 간음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반항하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부찰과상, 하지 타박상을 입게 하였다는 것이다.


피의자를 만나서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아는 사이인지를 물었더니 피의자는 친구의 소개로 피해자를 처음 만나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고 헤어진 직후에 피해자를 따라가서 호감의 표시로 가볍게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뜻밖에 너무나 심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존심이 상해 실랑이를 벌이며 피해자를 향해 1-2회 발길질을 하고 홧김에 치마를 잡아당겼을 뿐이고 피해자의 팬티는 잡지도 않았다며 정말로 피해자를 강간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도 판사에게 위와 같은 변명을 하였고 피의자가 초범이고 직장이 확실한 점, 피해자는 피의자의 친구 소개로 만나 피의자의 신원과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실제 사건 이후에 몇차례 통화를 하기도 한 점, 피해자의 주장에 의하여도 강간에 이르지는 않은 점, 피의자가 구속되면 직장을 잃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 등을 강력히 변론하며 합의할 시간을 요청하였고, 판사도 오후 5시까지 합의서 제출을 기다린 후 구속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직후에 다행스럽게도 피의자의 누나가 피해자에게 거금인 3,000만원을 주고 합의를 하였고 위 합의서 제출로 인해 피의자는 가까스로 구속을 면하였다. 합의과정에서 피해자는 큰 선글라스에 야한 복장으로 앉아 피의자 누나의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며 대단한 선심을 쓰는 듯이 합의서에 서명을 하여주었다.


위 사건에서도 피의자와 피해자의 주장 사이에 강간을 당하지 않은 점만 같고 사실관계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재판을 통해 가릴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을 보면 피의자가 강간을 할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강간치상범이란 전과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야 할까. 구속되지 않고 잘 해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만족하면서.


성폭력범을 엄벌하여야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이긴 하지만 그와 아울러 억울한 성폭력범을 만들지 않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너무 쉽게 인정되는 강간치상죄에 대해서도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창현 변호사는...
연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수원지검 검사, 이용호 사건 특검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부교수, 연세대, 법무연수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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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있음 2016-10-02 22:47:52
선글라스를 끼고, 야한 옷을 입은게 사건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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