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턴(intern)과 한 방에서 지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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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턴(intern)과 한 방에서 지내며
  • 임정수
  • 승인 2010.07.09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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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필자의 사무실에는 책상이 2개이고 그 중 하나는 연중 임자가 나타나 앉거나 비어 있기를 반복한다. 최근 몇 달 간 기록 뭉치 쌓아두는 용도에 사용되던 그 책상이 이달 초에 새 주인을 맞았다. 우리 법인에서 인턴을 할 분이 오신 것이다. 미국의 로스쿨에서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우리 법인에 오게 되었다 한다.


지난 1년여 동안 이 방에서 지내면서 몇 분의 인턴과 함께 생활했다. 다들 좋은 분들이었는데,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미혼의 젊은 여성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도 이제 숙달이 되니 별로 어색하지 않다. 여러 해 구치소 드나들면서 물이 든 대로 이번에는 방장과 방졸의 위계질서를 설명하고서 자발적인 동의를 거쳐 방장으로 옹립되었더니 사소한 심부름도 시키고 아주 편하다(짐작하시는 것처럼, 낯선 사무실에 와서 너무 위축되지 말라는 ‘Ice Breaking’ 차원의 언사이다).


하여간 남성 인턴은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여성들만 모셔야 하는 작금의 현상은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인턴으로 오시는 분들은 국내외 로스쿨로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생이거나 이미 로스쿨에 다니는 대학원생이다. 예비법조인으로 보면 된다. 일단 여성 예비법조인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 둘 수 있겠다. 현역 법조인의 세계에서도 여성이 점하는 비율은 그 증가의 추이가 실로 대단하니까. 조만간 신입법조인 양성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마치게 되는 사법연수원의 여성 연수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법원, 검찰, 변호사 어느 직역에서도 여성의 수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여러 경로에서 듣는 바에 의하면 예비법조인들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은 인원수의 측면보다 자세나 태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대개 여성 예비법조인은 이제 경쟁이 치열한 세계가 된 법조계에 본인이 희망하는 모습(직역, 직종, 직무 등)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분들 중 성적우수자의 비율은 성별 분포와 또 다르게 여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연수원 1년차 마치고 판검사 임용권에 든 사람들 중에서 남자가 많으면 2년차에 역전을 노려서 공부해 볼 만하고 여자가 많으면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이제는 거북이가 열심히 따라가도 여성 토끼는 도중에 졸아주지 않는가 보다.


모르기는 해도, 필자와 사무실을 공유하는 여성 인턴 분들은 법무법인에 와 생활하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경력을 쌓는 것이 장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하시리라. 20대 젊은 여성이 그 꿈처럼 많을,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남성들은 그런 자세가 덜하여 우리 사무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일 수 있겠고.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남녀 간에 불평등한 요소가 많아서 여성이 더 애쓰지 않으면 차별을 받기 쉬운 실상 혹은 의식의 반영이나 방증일 수가 있겠지만, 여성들의 분발을 보자면 조만간 그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10년 정도 전에 스위스에서 한 달 간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제네바 법대에 다니면서 경험한 것 중에 유럽 각국 등 외국 여학생들에 대한 인상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그녀들은 수업시간의 적극적 참여는 물론 농구나 축구를 할 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남학생들과 대등하게 어울렸다(당시 이미 30대 중반에 이른, 보잘 것 없는 경기력의 보유자인 필자는 통상 여학생이 마크하는 상대였다). 얼마나 당당하고 거침이 없던지! 우리 딸이 그녀들처럼 자랐으면, 아니 우리 딸이 그녀들처럼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 10년 사이에 우리나라가 주로 여성들의 노력으로 거의 그렇게 달라진 것이다.


여성 법조인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것이고 그 우려에 일면의 근거가 없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여성이, 특히 여성 지식인이 많이 진출하면 어느 곳이나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부패지수가 현저히 개선되고 훨씬 투명하게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고급 유흥주점 다니며 폭음하지 않는 사람에게 과연 스폰서가 필요할까?


러시아에 유학한 어느 분은 세간에 하는 말로 러시아의 ‘5대 자랑’에 보드카 등과 함께 ‘여자’가 들어간다고 했다. 러시아 여성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미모에 더하여 그 미모가 가실 때가 되면 남편과 자식에 대한 지극한 헌신으로 깊은 감명을 준다고 한다. 그에 반하여 러시아의 ‘5대 치욕’으로 ‘남자’가 들어간단다. 일은 안 하고 술(보드카)만 마셔서.


법조계 여성들이여 더욱 분발하시라. 업계를 넘어 우리나라의 ‘자랑’이 되리니. 남성들도 노력합시다. 국가적 ‘치욕’에 편입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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