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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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들처럼'
  • 임정수
  • 승인 2010.06.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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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월드컵 축구가 한창이다. 스포츠는 미리 준비된 각본이 있는 드라마와는 매우 다른 감동을 준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가 어디인지를 묻거나 인간의 의지와 집중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은 일상에 찌든 정신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필자는 우리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흥분 상태로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그리고 비록 영웅들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이때만은 그리운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필자는 거리 응원에 나서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그 분들에 뒤지지 않게 우리 영웅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어느 언론인이 미국 시골 유소년 축구코치가 소년들에게 ‘품위 있게 이기고 명예롭게 져라(win with class, lose with honor)'고 말하던 대목을 인용하며 우리 국가대표팀에 근사한 응원을 보내는 것도 보기 좋다.


그런데, 법조 생활을 국가대표 축구선수처럼 놀라운 경기력을 발휘하며 잘 하는 방도는 없을까? 또한 어떻게 하면 지위의 성취나 혹은 개별 소송의 승패에 무심할 수 없는 법조인으로서의 인생에서 품위와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


운동선수이건 전문직 종사자이건 몸과 머리를 바꾸어 새로 태어나는 일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결국 본인의 특성과 능력을 전제로 하여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일 것이다. 특히 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한계와 무관한 부분은 잘 성찰하여 악습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다). 


법조 생활을 하다보면 다 우수한 분들이지만 정말 엄청난 지적 능력과 인품을 갖춘 사람들을 접하거나 그에 관해 듣게 되는 일이 잦다. 또 유감스럽게도 대단한 악평을 가지고 다니는 분도 보게 된다. 처음 출발할 때는 비슷한 위치이기 쉬웠을 터인데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게 했을까?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癡), 즉 욕심, 성냄, 어리석음을 삼독(三毒)이라 한다고 한다. 지당하신 가르침이실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체감하는 법조인의 최대약점 혹은 피하기 어려운 함정은 바로 ‘오만’이 아닐까 싶다. 즉, ‘내가 저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고 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세월의 강물 속에 그 색깔의 물이 깊이 들어 결국 지우지 못하는 문신으로 되는 것 같다.


변호사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판사님이 당사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고 고압적으로 절차를 진행하시는 것에 대한 내용이 많다. 검사님도 사건 관계자의 인생과 운명에 냉담한 대응을 하시는 경우 큰 원망을 사게 된다. 법원과 검찰 조직의 내부에서도, 가령 합의부의 재판장이 배석판사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인격적 모독을 서슴지 않는 경우 속칭 ‘벙커’라는 별칭을 달게 된다. 검찰에 특별한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찬가지로 악명 높은 부장은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또한 최근 스폰서 문제로 터져 나왔지만, 상대방이 본인과 인격적으로 동등하고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법조인이라면 그 사람의 피와 땀으로 형성되었을 재물로 과도한 접대를 받을 수 있을까?


변호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건을 맡긴 의뢰인이 사정이 급하고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렇지 변호사로부터 충분한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하였다고 느끼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이번 지방선거 직후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만약 변호사에 대해 의뢰인이 투표를 한다면 어떨까? 필자부터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만의 대척점에 겸손이 있다. 겸손은 누구나 좋아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 낮게’를 외친 어떤 여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당선된 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법조인이 가질 경우 최대의 강점이 되는 것은 바로 이 ‘겸손’일 것 같다.


필자는 어떤 뛰어난 변호사로부터도 판사님이 ‘잘 모르겠으니 좀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흉을 보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또한 과거 어떤 동료 판사로부터도 재판장께서 ‘이 부분은 내가 잘 몰라서’ 혹은 ‘나에게 이런 사정이 있어서’라고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장을 무시하는 발언을 접하지 못하였다. 도리어 그 판사님이나 그 재판장님은 인간적 사랑과 진정한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정치에는 큰 행사로 선거가 있지만 관료 조직에는 인사가 있다. 인사결과 발표를 보고 가장 흐뭇하게 여기는 순간은 겸손한 분이 중용되는 모습을 보는 때이다. 그 분 개인만이 아니라 그런 평가를 한 인사권자에 대한 신뢰와 안목에 대한 경탄이 함께 동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겸손한 사람을 축구 영웅처럼 응원할 것이다. 필자 본인이 단 한 사람으로부터라도 그런 응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과 반성을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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