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에 봉착한 일본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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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에 봉착한 일본 로스쿨
  • 성낙인
  • 승인 2010.06.0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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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법조인 충원방식으로서의 고등고시 사법과나 사법시험은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을 계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본적인 바탕은 소수의 합격자를 배출함으로써 법률가의 질적 통제를 엄격히 하는데 있다. 이에 따라 소수 엘리트 법률가들이 법률시장을 독과점해 왔다. 하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1980년대부터 합격자의 대량배출시대를 열었고, 1990년대부터는 사법개혁 내지 법조개혁의 일환으로 법학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논하기 시작하였다. 여기까지는 일본과 한국이 비슷한 양상을 보여 왔다.


그런데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논의에서 일본이 한 발짝 앞서가기 시작했다. 비록 학부 법학부를 유지하긴 하지만 일본은 2004년에 마침내 로스쿨 신입생을 받아들였다. 일본식 로스쿨 제도의 특징은 준칙주의와 인가주의가 병행된 모델로서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로스쿨을 설립해 주었다. 심지어 법학부 운영 실적이 전혀 없는 대학에도 로스쿨을 인가해 주다보니 74개의 로스쿨이 난립하게 되었다. 입학생은 재대로 통제하지 않으면서 정작 합격자 수는 2000명 정도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비대칭적 부조화는 일본 로스쿨의 위기를 자초한다. 법률가의 꿈을 안고 로스쿨 개원과 더불어 몰려오던 법학도는 줄어들고 과반수의 로스쿨이 정원미달사태에 이른다. 정원미달 로스쿨은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이런 와중에 신사법시험 합격자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학교는 폐교 사태에 이른다. 2009년도 입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히메지돗쿄(姬路獨協)대 로스쿨은 내년부터 학생 모집을 중단하고 폐교하기로 결정했다. 2004년도 첫 개교시에 8: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런데 2006년도 첫 시험에 한 명의 합격자도 배출하지 못했고 지금껏 단 3명이 합격했을 뿐이다. 신사법시험 평균 합격률이 2006년 첫해 48%에서 2008년부터 20%대로 내려가면서 명문대학도 50%의 합격률을 넘기기 못한다. 군소대학은 벌써 정원을 20-40%까지 자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일본 법학부를 상징하는 도쿄대와 교토대조차 내년부터 정원을 20% 이상 감축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로스쿨의 근본적인 문제는 졸업생에 대한 일정한 합격률을 보장하지 않는데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과정에서의 법학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4명 중 겨우 1명만 법률가의 길이 보장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로스쿨 포기로 이어진다. 일본 로스쿨의 예고된 재앙이다. 현실적으로 일본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은 로스쿨 학생 수를 줄이든가 아니면 합격자를 늘리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지금의 흐름은 합격자 수 증가가 아닌 로스쿨의 축소나 학생 수의 감축에 이른다. 어쩌면 시장의 논리상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정부의 안이한 무대책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일본이 처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합격자 수를 지금보다는 대폭 증원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본보다 5년 늦게 시작한 한국의 로스쿨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작년 신입생이 반환점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의 신사법시험과 유사한 변호사시험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나와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합격자 수 내지 합격비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분명하지 않다. 얼핏 80% 정도의 합격률을 보장할 듯하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20% 이상이 낭인 법학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시험 합격이 어려워질수록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원래의 로스쿨 도입취지는 사라지고 시험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사법시험 시대로 되돌아갈 위험이 크다. 시험과목도 무늬만 공법, 사법, 형사법으로 줄어들었을 뿐이고 실상은 사법시험 과목인 7법을 전부 공부해야 한다. 오히려 전과목에 걸쳐서 객관식 1차시험을 거쳐야 하니까 부담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래가지고는 로스쿨에서 정상적인 법학교육이 불가능하다. 특히 다양한 학부 전공생들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에 나타날 공황상태는 겪어 보지 않아도 뻔하다.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명제는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다. 하루 빨리 정부와 법조계 그리고 대학당국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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