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면허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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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면허와 살인사건
  • 임정수
  • 승인 2010.05.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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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법조에 있다 보면 군법무관 시절에 군의관들과 같은 부대에서 생활한 것을 비롯하여 종종 의사 선생님들을 여러 상황에서 만나게 된다. 통상 서로 대표적인 전문직업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다하는 관계로 지낸다. 그래도 어쩌다 소주잔이라도 나누다보면 의사 선생님들 중에 간혹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분은 ‘우리는 허가받은 칼잡이’와 같은 무서운 말씀을 하며 좌중의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한다. 이럴 때 판사 시절의 자존심 강했던 필자는 마치 007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저희는 살인면허가 있는 걸요’라고 하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분위기는 반전되거나 적어도 희석되지만, 삼가야 될 말을 발설한 느낌과 빈한한 살림살이를 감추려고 이웃의 가전제품 하나 빌려 내세운듯한 부끄러운 마음이 여운으로 남는다.


실제로 필자가 사형선고가 가능한 형사합의부 사건을 접한 것은 10년의 판사 생활 중 마지막 1년에 불과했다. 고등법원 형사부 근무는 일이 힘들고 배울 것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기피의 대상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형사부 1년 근무를 마친 판사에게 다음 사무분담에서 혜택을 주기도 했다. 필자는 ‘그래도 판사라면 살인사건 재판은 해 봐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민사부 근무를 마치고 형사부에 자원을 했고, 그 희망이 특별히 거부될 이유가 없었으므로 드디어 살인면허가 부여된, 즉 사형선고를 실제로 할 수 있는 재판부의 구성원이 되었다.


다행히 살인사건은 많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은 정신적 성장과 긴 인생살이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1, 2회라면 즐거운 일이라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면 고역이 된다. 그래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희랍인 조르바’에서 아주 순탄하고 평온한 인생을 살아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산 노인의 입을 통하여 ‘다시 똑 같은 인생을 그대로 살라고 하면 저 녀석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겠다’고 말한다. 아마 1년 내내 살인사건만을 재판해야 한다면 담당 판사는 ‘저 살인자가 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미워 죽겠다’는 심정이 될 수도 있겠다.


살인사건을 검토하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사람이 의외로 쉽게 죽는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총 맞아도 살고 포탄 터져도 살지 않던가. 그런데 사건 기록에서 보면 과도에 1회 찔렸는데 그냥 죽어 버리고, 규모도 크지 않았을 것 같은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타 죽는다. 목을 졸라도 쉽게 죽고 기절한 것을 버려놓아도 깨어나지 못하고 시체로 발견된다.


또 살인자는 유독 초범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의 살인사건에 대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은 아니라도 통상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는 점에서 살인사건의 재범(再犯)을 자주 보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전과조차 전혀 없는 사람이 살인자로 법정에 서는 일이 잦은 것이다. 조창조씨 같은 당대의 주먹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폭력조직과 흉기가 동원된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에서 신상사파 조직원 몇 명이 다쳤을 뿐 죽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전문가는 사람이 쉽게 죽는다는 점을 잘 아니까 죽이지 않고 고통이나 타격을 가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범죄라고는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초보자는 영문도 모르고 사람을 그냥 죽이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초보자가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일을 저지르는 경우 그 현장은 실로 참혹하기까지 하다.


보통 접하는 살인의 원인은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의외로 사소하다. 살인자는 피해자로부터 당한 모욕과 지속적인 무시, 피해자나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집착 등을 살해의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성자와 같이 용서와 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절교, 이혼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 살인이라는 최악의 파국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만악의 근원과 같은 돈 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표적인 범죄인 살인사건에서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이 결국 생명을 거는 일은 본인이 의식하건 하지 못하건 돈이 아니고 다른 가치, 일종의 정신적인 것인가 보다.


끝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거나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점을 유념하면 될까. 상대방의 오만을 ‘저 사람은 인격적 수양이 나만큼도 안 되는구나’고 측은지심으로 관조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솝우화 ‘여우와 포도’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차원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면서 말이다(그 여우가 적어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나쁘게 볼 일만도 아니다). 물론 타인의 생명을 요구할 수 있는 현재적, 잠재적 살인면허 소지자들에게는 훨씬 높은 수준의 정신자세와 꾸준한 도야가 필요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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