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녕 ‘강자의 이익’인가
상태바
법은 정녕 ‘강자의 이익’인가
  • 임지봉
  • 승인 2010.04.30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오래 전 필자가 법대 신입생으로 ‘서양사개론’이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할 때의 일이다. 법대생이 수강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이었다. 강의가 소크라테스와 악법 등에 관한 설명에 다다랐을 때로 기억한다. 그때 담당교수님은 법이 ‘강자의 이익’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법은 사회적·경제적 강자가 그들의 이익을 구체화하여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 그 준수를 강요하는 ‘강자들만의 이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정의 실현’이나 ‘약자 보호’와 같은 거창한 명제를 법대 입학의 이유로 들며 의기양양하게 법대에 입학한 수강생들 앞에서, 우리가 공부해야할 ‘법’이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씀하시다니.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배우게 될 ‘법’은 약자들의 가슴에 겨누어지는 강자들의 칼이며, 우리가 되고자 꿈꾸는 법률가는 강자들에게 고용되어 강자의 약자에 대한 착취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그 후에도 그 교수님의 이런 법관(法觀)은 강의시간 중에 몇 번 더 강조되었고 그 때마다 그 말씀에 대한 내적 거부반응과 부정은 필자의 마음 속에서 계속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이 ‘강자의 이익’일 수도 있다는 찝찝한 우려가 필자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게 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권분립에서의 ‘삼권’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부’에 분장되는 권력을 의미한다. 이 때 삼부는 그 조직과 구성, 권한 등에 걸쳐 여러 차이점들을 가지지만,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구성원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히는 반면에 사법부는 선거와 무관하게 임명된 판사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크게 구별된다. 이런 차이점에 주목하여 학자들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의사에 그 구성과 존립의 운명이 달려있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다수파기관’, 국민의 의사와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구성되고 존속하는 사법부를 ‘비다수파기관’이라 구별하고 있다. 사법부는 바로 이 ‘비다수파기관’이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보호’에 진력할 수 있다. 다수파기관인 입법부나 행정부는 다음 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 다수국민의 의사에 항상 주목하고 이에 신경을 써야하지만, 삼부 중 유일하게 비다수파기관인 사법부는 국민 다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사회적·경제적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이익을 법의 적극적·창조적 해석과 적용을 통해 실현하고 보장할 수 있는 태생적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삼부 중 입법부와 행정부의 두 부가 다수국민의 의사를 국정운영에 반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다수’를 위한 기구라면 삼부 중 사법부 하나만이라도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기구가 되어야, ‘다수의 지배’와 함께 ‘소수의 보호’를 그 구성요소로 삼는 민주주의의 이념에도 더 합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런 의미에서 사법부를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적·경제적 약자는 통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서는 그들의 이익을 잘 결집하고 대표하며 반영하지 못한다. 즉, 다수파가 주도권을 쥔 다수파기관에서의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약자들의 이익이 잘 대변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약자의 이익은 바로 비다수파기관인 사법부에 의해서 가장 잘 대변되고 보장받을 수 있으며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소수자와 약자 보호에 대체적으로 소극적인 것 같다. 본인소송을 감내당한 약자보다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비싼 전관변호사들을 대거 대동한 강자의 이익이, 소수자보다는 다수자의 이익이, 표를 계산해야 하는 국회나 민의를 반영해야 한다는 행정부서에서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가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기대고자 하는 자리에 법률가들은 별로 없었다.


미래의 법원은, 미래의 법률가는 ‘소수자와 약자 보호’라는 소명에 보다 더 충실하기를 감히 기대해 본다. 그 날이 오면 ‘법이 강자의 이익일 수 있다’는 필자의 오랜 찝찝한 우려도 필자의 뇌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