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변호사, 시골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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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변호사, 시골변호사
  • 임정수
  • 승인 2010.04.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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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은 대한민국 사법의 중심지라는 남다른 특색이 있는 동네이다. 먼저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서울행정법원 등 최고법원 및 최일선의 핵심법원, 전문법원이 지하철 2호선 교대역과 서초역 부근 테헤란로 남단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검찰 기관으로는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그 기강을 상징하는 듯 각 잡힌 직사각 형태로 각각 대응하는 법원과 나란히 서 있다. 그 전에는 사법연수원도 서초동 법조단지 안에 있어 밀집도가 더했다. 필자가 그 사법연수원을 다닐 무렵에는 ‘꽃마을’이라고 불리던 원예용 비닐하우스 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었는데, 도시화의 진행으로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


서초동은 법원과 검찰청이 몰려 있다 보니 그 출입에 편리한 연유로 변호사도 무척이나 많다. 큰길가, 뒤편 골목, 건너편 어디에나 변호사사무실이 있다. 통계자료를 확인한다면 모를까 개인의 경험과 직감에 터 잡아서는 과연 서초동 변호사가 몇 사람이나 되는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당연한 현상으로 같은 서초동 변호사라고 해도 아는 사람보다 서로 모르는 사람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필자의 경우 한 번 법정에 들어가면 보통 10여 명의 변호사가 재판진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다가 아는 사람을 하나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는 정도이다.


서울에는 이처럼 서초동이나 시내의 다른 법원, 검찰청 앞에서 사무실을 두고 송무 업무를 위주로 하는 변호사들 외에도 주로 기업 자문을 담당하는 변호사들 수가 상당하다. 이런 변호사들은 대부분 규모 있는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고객인 기업들과의 접근성이 좋은 강북과 강남의 상업중심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서울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의 공통된 특징은 송무를 하건 기업 자문을 하건 너무너무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는 것일 터이다. 일거리가 많은 변호사는 그 일을 처리하느라, 일거리가 없는 변호사는 일거리를 찾느라 바쁘게 뛴다. 송무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에서 정한 시한에 맞추어, 기업 자문변호사는 고객이 진행하는 사업의 일정에 맞추어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잦다. 고객으로부터 받는 보수의 책정 방법은 통상 송무에 대해서는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기업 자문에 대해서는 이른바 ‘타임 차지’로 정하게 된다. 필자는 자문 업무를 별로 하지 않지만, 고객이 만족할 정도로 성과물을 만들어 내서 당당하게 시간당 보수를 청구하자면 그 노동 강도가 어떨지 또 (정작 보수를 청구하지 못하는) 추가로 들인 근로시간이 어떨지 짐작은 할 수 있어서 자문 변호사에 대해서도 동료로서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어쩌다가 서울을 떠나 지방에 재판을 가기도 한다. 이렇게 지방 재판을 갈 때면 종종 법정 부근에서 지인인 그 지역 변호사를 만나 한담을 나누거나 법원 내의 변호사 연락사무소 같은 ‘변호사 공실’을 들른다.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초동 법원을 갈 때는 걸어서 10분 거리를 늘 7, 8분 전에 출발하여 서둘러 걷지만, 원거리 지방재판은 그 전후로 30분 정도를 확보해 두어야 탈이 없기 때문에 그럴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 서울을 벗어나 지방 재판을 갈 때, 특히 작은 규모의 법원을 갈 때에는, 지방 변호사들의 생활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지수는 훨씬 높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방 변호사들에 대해서 가장 부러운 부분은 높은 자존의식과 자부심이다. 독(불)장군 혹은 유아독존적 발상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개인의 자부심은 대개 주변 여건과 환경에서 나오거나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변호사들이 그 지역에서 아주 중요한 지식인 혹은 이른바 유지로 대우를 받는 경우와 흔하고 흔한 전문직 종사자의 하나로 취급되는 경우에 개인과 그 소속 집단이 느끼는 바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환경에 살건 어느 연령대이건 자존감은 매우 중요하고 개인의 의사결정과 처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지방의 변호사들은 그 지역민들의 인식과 대접에 합당한 처신을 하려고 애를 쓰게 되고, 서울변호사처럼 (단순히 수가 많다는 이유로 합리화하기 어려운)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어 입방아에 오르는 일이 훨씬 적다. 지방의 법정에서 만난 변호사들에게 ‘서울에서 왔는데 급히 올라갈 일이 있어서...’라고 난처한 표정을 한 번 지어 보시라. 장담하건데 백이면 백, 일체의 불쾌한 표정 없이 ‘먼저 진행하고 올라가시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 법정의 분위기는 이런 말을 붙이기조차 쉽지 않고 어떻게 된 것인지 날이 갈수록 더 각박한 것 같다. 개혁도 좋고 자정도 좋겠지만 결국 자각과 자발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금방 한계에 직면하게 되므로, 변호사의 자존감을 고양할 방안이 함께 마련되면 좋겠다.


서울 변호사는 분명 전문성을 함양하거나 부를 형성할 기회라는 측면에서 지방보다 낫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은 대부분 못한 것 같다. 마침 ‘서울 쥐, 시골 쥐’라는 동화가 연상된다. 필자가 만약 쥐라면 분명히 시골 쥐로 살 것이다. 변호사로서 마음속으로는 시골 변호사를 동경하면서 서울 변호사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가 나뿐일까? 앞으로 골목길을 돌아가다 쥐를 만나면 물어보아야 하겠다. “쥐야, 쥐야, 너도 시골 가고 싶은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울에서 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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