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험생활]엄상익 변호사(2)
상태바
[나의 수험생활]엄상익 변호사(2)
  • 법률저널
  • 승인 2002.09.11 0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러분 교정에 만발한 개나리와 진달래가 예쁘죠. 또 그 옆을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아름답죠."
교양강의시간에 교수가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놀고 싶은 학생들의 마음을 족집게 같이 알고 있었다.
"저 예쁜 여학생들은 여러분 선배들 부인감 입니다. 시간낭비 하지 말고 공부하세요. 이십대에 일년을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십 년이 편합니다. 사 년을 열중하면 사십년 인생이 무난합니다."
성실한 충고를 한 그 교수는 고대의 김정배 총장이었다.


대학 2학년이 되면서 나는 검은 가방 속에 두툼한 법서와 도시락을 넣고 고시생 전용 도서관에 다녔다. 삼 십 명 가량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민법총칙을 누가 몇 회 독했는지 채권 편까지 벌써 진도를 나간 사람이 있는지 경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유혹에 약한 나는 낭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고시공부라고 하지만 검은 회색의 우울로 짧은 청춘을 망쳐버리기는 싫었다. 그것도 사랑해야 할 인생의 한 도막이니까. 법서는 억지로 읽는데 동아리활동은 밤을 새워도 재미있었다. 그 해 여름 파도치는 연포 해변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얼마간의 즐거운 시간, 얼마간의 따뜻한 여름밤이나마 맛보고 싶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같이 공부하는 과묵한 오용석씨가 내게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 학교는 데모다 축제다 해서 공부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노력해 가야 할겁니다."
경쟁에서 다른 사람을 독려하는 건 성숙한 인격이었다. 그는 지금 큰 로펌 태평양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원로법관인 김선흠부장도 당시 내게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함께 공부한 인연은 일평생 귀중한 재산이 된다. 이때 도서관 군기담당은 한나라당 중진의원인 홍준표씨다. 현 경찰청 치안정감 이승재씨도 같은 도서관출신이다. 당시 함께 하던 사람 대부분이 지금 이 나라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일차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다. 대학 2학년말 사법1차 시험이 있었다. 6천명 응시생중 4백 명을 뽑았다. 내게 합격이라는 빠른 행운이 찾아 왔다. 그것은 교만이라는 멍에가 되어 나는 철저히 그 댓가를 나중까지 치르게 된다. 대학 3학년 봄 북한산 자락의 작은 절 방으로 공부하러 갔다. 방만한 성격은 대웅전으로 가는 오솔길에 난 분분 떨어지는 윤기 나는 분홍색 벚꽃 잎들에 취하곤 했다.


졸업 전에 2차에 합격할 욕심으로 나는 예상문제들을 뽑아 외웠다. 방대한 양의 법서를 쳐다보면 지름길을 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절이란 희안한 사람들의 백화점이었다. 절 생활 10년이 넘는 만년고시생도 있었다. 그 중에는 우체국에 근무하다 돈 셀 때 담배를 피웠다고 해직된 행정고시 준비생도 있었다. 청진동에서 빈대떡을 파는 어머니를 두고 있다는 최라는 사람은 일차 한번 붙지 못하고 늙어가고 있었다. 가난한 그는 이따금 벽에 걸린 내 셔츠를 빌려 입기도 했다. 성공한 소수의 뒤에는 실패자들이 꽉 차 있었다. 사회에서 실패하고 도를 닦는다는 사람도 있었고 사주관상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따금씩 그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계곡에 가서 사는 얘기를 듣곤 했다. 사람마다 자기가 집착하는 것들의 노예였다. 불교에 삼일수하(三日樹下)라는 말이 있다. 한군데 오래있으면 집착이 생긴다는 말이다. 나는 고시공부기간동안 방랑을 하면서 인간여행도 겸하기로 계획했다. 몇 달 후 나는 황지의 탄광촌 절로 옮겼다. 모든 게 검었다. 산도 물도 길바닥도 석탄가루로 덮였다. 광부아이들이 그리는 냇물까지도 까만 크레용으로 칠했다. 거기서 탄광 사장의 눈물겨운 성공담도 듣고  광부들의 고생도 직접 봤다. 땅속에 있는 석탄이라고 저절로 나타 나는게 아니었다. 청춘을 포기하면서 그걸 찾으려고 애쓰다 자살직전에야 석탄은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해들었다. 옷이 달라도 인간은 같았다. 그 절에는 젊은 스님이 한 사람 있었다. 새벽에 염불을 할 때면 꼭 내방 창문 앞에서 목탁을 두둘기며 나를 불렀다.


"학생 나 향 두 대만 주라"
"향이라니? 그거 법당에 있잖아요?"
"담배 말이다 담배"
"중이 담배 피우면 안되잖아?"
"사정 한번 봐 도라. 중은 사람 아이가?"
모두들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정의를 공급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