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의 일기]신림동 학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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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의 일기]신림동 학원강사
  • 법률저널
  • 승인 2002.09.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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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동'에 와서 처음 들은 강의가 S강사의 기본이론 강의였는데 감동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정성들여 잘 만든 요약서, 정확한 발음으로 쉴새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식, 색분필을 이용한 깔끔한 필기와 그림까지... 그 어려운 법 지식을 사탕처럼 잘 포장해서 내 머리 속에 쏙쏙 넣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심자인 내게도 그 분야의 전체적인 윤곽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뿐 아니라 수업 시작 전에 여러 가지 일화를 들어 수험생활에 자극을 주는데, 그것까지도 잘 준비된 듯 한 번도 같은 말을 반복한 적이 없었다.


 고시공부를 하기 전에 이런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던 내게는 S강사 뿐만 아니라 신림동의 강사 집단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인간유형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은 반납하고 엄청난 체력으로 강행군을 하고, 시시각각 나오는 최신 판례와 각종 기출문제에 눈떠 있어야 하며, 반년에 한번씩 그것을 정리하는 판례집을 내고 문제집을 업그레이드한다. 평석이나 문제 해설의 깊이는 교수들이 앞서는지 몰라도, 강사들의 속도와 순발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 것을 떠나서 학원강사들이 형법이나 민법을 18회, 24회만에 뚝딱뚝딱 끝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능력이다. 법대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교수들도 한 학기 내내 책의 반도 못 끝낸다.


 고시계의 강사들을 '초인(超人)' 비슷하게 만든 힘은 뭘까? 그 해답은 바로 우리 수험생들에게 있는 것 같다. 수험생은 자신의 일생을 걸고 공부하기 때문에 한 두시간 들어보고 도움이 안되면 바로 수강료를 환불받는다. 나도 그런 적이 몇 번 있다. 수험생들에게 강사의 인품 등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마치 병(病)을 잘 고치면서 친절한 의사가 최고지만, 그 중 하나만을 고르라고 하면 치료를 잘하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물론 마이클 조던이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한 분야의 진정한 고수들은 대체로 인품도 훌륭하다.) 그런 수험생들의 반응이 쌓여 수강생 숫자로 나타나고 생활인인 강사들에게는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즉 현재의 인기강사들은 '경쟁'이라는 혹독한 시스템이 만든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강사들은 '현재의' 시험제도에서 최고인 것 같다. 만약에 시험제도가 5명 정도의 교수 앞에서 2시간 넘게 가지고 있는 지식 전반을 심층면접 받는다든지, 콘도 같은 곳에 1주일 정도 가둬두고 모든 참조자료를 다 활용할 수 있게 한 다음 써낸 논문의 질(質)로 뽑는 방식으로 변한다면 학원계도 양창수나 호문혁 선생님같은 학자들이 장악할 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그렇게 시험제도가 바뀐다면 또 거기에 맞게 자신을 단련시키고 수험생들에게 검정받은 유명강사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늘 자각하고,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능력을 인정받으면 되는 것 같다. 유시민이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고 규정했으면 그는 '지식의 공장'(=학계)에서 생산한 지식들을 소비자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김용옥이 스스로를 '지식엔터테이너'라고 칭하면 그의 텔레비전 강의는 우리를 얼마나 재미있게 해주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된다. 동양학계와 김용옥, 법대 교수와 고시학원 강사는 자신들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영역에 대해서는 존중(또는 무관심)하면 된다고 본다. 아무튼 학원강사가 자기 강의의 '깊이'가 아니라 '수험적합성'을 자랑해야 하듯, 고시생들은 책을 '보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객관식 시험 점수가 합격선에 가 있는지, 기본적인 것을 '외워서' 짧은 시간내에 잘 쓸 수 있는지를 늘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기회에 수험생으로서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의 학원은 과목마다 한두명의 유명강사가 과점(寡占)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 톱(top)강사는 불과 몇 년전과 비교해서 강의의 열정이나 성의가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물론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뜨고 나면 타성에 젖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할 가능성도 있다. 유명강사들에게도 더욱더 자극을 주고, 또 대부분의 넉넉하지 못한 고시생들을 위해서라도 강사들 스스로 자기 강의의 가격을 매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지금은 일률적으로 모든 강의가 회(回)당 만원 가까이 되는데, 깜빡 졸면 500원이 날아가 버린다. 덤핑을 방지하기 위해 하한선은 분명히 있어야 하겠지만, 처음 도전하는 강사는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전략으로, 유명강사들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고액 고품질 전략으로... 그래서 수험생들의 선택 폭이 다양해 졌으면 좋겠다. 현재 그것을 규제하는 관(官)의 시행규칙이 있는지, 그리고 학원의 구체적인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사정 모르는 한 가난한 고시생의 푸념 정도로 치부해도 된다.


 아무튼 때 맞춰 무료강의도 해주고 나같은 비법대생들에게 고시공부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학원과 학원 강사들에게 수험생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험생들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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