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은 과거장에 여러명의 조수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 글씨를 써주는 “사수”가 따라 들어갑니다.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도 까닥 안고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답안지를 다 쓰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선접군”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내려고 폭력까지 쓰는 까닭은 수만 장의 답안지를 며칠 안에 다 봐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는 답안지 앞부분만 보거나 앞에 낸 수백 장만 채점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 과거는 진짜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소수 힘 있는 가문의 벼슬 독점을 위한 마당이었던 것이지요.
참고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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