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의 존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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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의 존폐 논쟁
  • 법률저널
  • 승인 2009.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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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을 열었고, 법무부와 여성부의 의견이 달라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형사법학자들의 연구모임인 형법개정연구회는 폐지를 주장한다.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죄로서 친고죄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제1차 논쟁은 지난 2002년 10월 31일에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이는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헌재는 “이러한 행위는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자유의사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 조항이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번 사건은 제2차 논쟁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임모(33)씨가 “혼인빙자간음죄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2008년 6월 19일에 낸 헌법소원(2008헌바58)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임모씨는 2006년 2~4월 혼인을 빙자해 피해자 A씨와 4회 간음한 혐의로 2008년 12월 징역 2년 6월의 형이 확정됐고, 위 조항이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었다.


이번 공개변론에서 법무부는 합헌 의견을 제시했고, 여성부는 위헌 의견을 내 놓았다. 위헌을 주장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도덕과 윤리의 문제다. ②개인간의 사생활 영역까지 형법이 규제해서는 안 된다. ③가부장적ㆍ도덕주의적 성이데올로기를 강제하며 이를 따르지 않는 시민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 원칙을 거스른다. ④혼인빙자간음의 객체를 ‘부녀’로 한정한 것은 부녀를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것은 헌법상 남녀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여성부). ⑤혼인 여부는 여성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이 조항은 여성을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주체로 비하하는 규정이다.


한편 합헌을 주장하는 논거도 강하다. ①이 조항은 다소 가부장적인 측면이 있지만, 실질적 평등구조가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피해를 보호해 줄 수 있다(한양대 심영희). ②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현실에서 도덕적 영역에 관여한다고 해서 곧 바로 위헌이 될 수는 없다(법무부). ③남녀 사이의 성적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혼인빙자간음으로 침해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부당하다(고려대 김일수).


생각건대 혼인빙자간음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①국가는 과도한 국친주의(國親主義) 사상을 버려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추상적인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형벌로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항의 형벌은 단순한 보복일 뿐이다. ②성문제에 관해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 건전한 판단 능력이 있는 성년의 부녀가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③자유주의 형법의 핵심은 위하가 아니라 이성이다. 우리 형법도 자유주의의 흐름을 대폭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 정신과 일치한다. ④비교법으로 터키, 쿠바, 그리고 루마니아 형법에서 혼인빙자간음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성형법의 탈도덕화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독일은 이미 1969년에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했다.


이번 헌재 결정이 혼인빙자간음죄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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