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 -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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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이의 어떤 하루 - “진실게임”
  • 법률저널
  • 승인 2009.07.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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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무 제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검찰시보 때 담당했던 사건 중에 무고인지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소인은 피고소인이 자신을 폭행하여 이가 부러졌다면서 상해 혐의로 고소를 했지만 경찰에서 1차 수사를 한 결과 혐의 없음 의견으로 송치되었고, 검사님께서 무고의 의심이 간다면서 수사를 해보라고 하여 담당하게 된 사건입니다.

 

피고소인을 상대로 수사를 했지만 자신은 절대 때린 사실이 없고 고소인은 동네에서도 엄살이 심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자신은 맞기만 했을 뿐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 피고소인이 고소인으로부터 맞아서 코피까지 흘리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별도로 고소를 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목격자가 있었고 그 목격자 역시 피고소인이 고소인을 때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소인이 피고소인을 때렸다고 진술하고 있었지만, 고소인과는 약간 적대적인 관계에 있어 그 진술 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고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제3의 요인으로 이가 부러진 후 피고소인에게 상해를 덮어씌우기 위해 고소를 했다는 것이 적극적으로 입증이 되어야 하는데 피의자(고소인)가 자백하지 않는 이상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피의자의 치아가 기존에 어떤 상태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공문을 보내 피의자의 치과 진료내역을 받아보았고, 이를 토대로 피의자가 치료를 받았던 치과에도 공문을 보내 진료차트를 직접 받아보았습니다. 진료차트를 읽다가 모르는 부분은 병원에 직접 전화해서 치과의사에게 물어가면서 피의자의 기존 치아 상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의자는 60세가 넘은 고령으로 이미 치아가 자연노화된 상태였고, 더욱이 문제가 된 치아는 이미 신경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어 약한 충격에도 쉽게 부러질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피고소인의 폭행에 의해서 부러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피고소인과 싸우다가 자신의 폭행으로 피고소인이 코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실려 가자 문제가 커질 것이 두려워 다른 원인으로(혹은 자연적으로) 부러진 치아를 가지고 먼저 고소를 했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였습니다.

 

저는 기록을 꼼꼼히 수차례 체크하고 신문사항을 미리 작성하여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 고소인을 소환했습니다. 동네에서 목소리가 크고 엄살이 심한 노파라는 피고소인의 진술을 토대로 만약에 검사실에서 큰소리를 친다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도 미리 대비를 해 두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고소인이 검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저의 모든 준비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검사실에 출두한 고소인은 70이 다 되가는 너무나 조용하고 얌전하며 착한 동네 할아버지였습니다. 고소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심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준비한 질문사항을 토대로 피의자신문을 시작했고, 신문이 진행될수록 저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소인은 너무나 착한 인상을 가진 70의 할아버지였지만, 피고소인과 목격자는 험한 인상, 시끄러운 말투에 약간의 알콜기도 보이는, 말 그대로 ‘진상’ 민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문이 진행될수록 고소인의 진술에도 약간의 모순점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실은 임대차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고소한 측면도 있다.”라는 진술까지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고혐의를 인정해서 기소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고,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진술 역시 몇 가지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누구의 말에 좀 더 신빙성을 두어야 할지 정말 애매하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특히 목격자의 진술에 관해서 피고소인은 목격자의 가게와 당시 싸움이 벌어진 장소가 불과 4미터 정도 거리이고, 밤이지만 형광등을 환하게 켜놓아 충분히 목격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고소인은 목격자의 가게와 고소인의 가게는 16미터 이상의 거리가 떨어져있어 당시의 상황을 목격했다는 목격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이것이 과연 무고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습니다. 결국 저는 퇴근하고 당시의 범행 장소를 가보기로 결심하고, 퇴근 후 내비게이션을 켜고 범행 장소로 가 보았습니다. 도착한 순간 고소인 할아버지에게 가졌던 약간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목격자가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장소와 범행 장소와는 불과 4미터 정도로 목격자의 말대로 충분히 당시의 상황을 목격하고도 남을만한 그런 거리였습니다. 저는 치솟는 배신감을 뒤로하고 다음 날 출근해서 검사님께 보고한 후, 공소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300만원의 벌금으로 구(求)약식처분을 받았고, 정말로 억울한 점이 있다면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될 것입니다.

 

검사실에는 하루에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0명이 넘는 인원이 다녀갑니다. 저마다 모두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변명하고, 주장하지만 실제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하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검사님이나 계장님은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지만(실제 이 경험은 정말 무시할 수 없더군요) 저 같은 초짜 중에 왕 초짜는 사람의 인상과 말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어려울뿐더러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증거와 증인이 필요하고, 과학수사가 필요하겠지만, 제발 피의자들이 검사실에서 거짓말 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순진하고 불가능한 요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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