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국민참여재판, 하나의 실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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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국민참여재판, 하나의 실험인가?
  • 법률저널
  • 승인 2009.06.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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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참여재판의 목적은 형사사법에서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의 신뢰를 높이는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벌써 “중죄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을 하루에 끝마치라고?”하면서, 국민참여재판은 ‘쇼’라고 비판한다. 배심원선정절차, 법률용어의 순화, 피해자 및 피고인의 인권보호, 불충분한 심리, 조사자 증언, 양형인자조사 등 많은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이란 배심원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말한다. 직업법관으로만 재판하는 일반재판과 다르다. 국민참여재판은 생명침해를 수반하는 범죄 등 일부 중대범죄를 대상으로 하며,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실시된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시민을 배심원이라고 한다.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선정된다. 지방법원장이 주민등록정보를 토대로 명부를 작성하고,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정한다. 배심원 및 예비배심원은 배심원선정절차를 통하여 선정된다. 배심원의 수는 원칙적으로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 9인이고, 그 외의 대상사건의 경우 7인이다.


배심원은 사실의 인정, 법령의 적용 및 양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배심원은 피고사건의 심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가 없고, 법원의 증거능력에 관한 심리에 관여할 수 없다. 심리에 관여한 배심원은 재판장의 설명을 들은 후 유·무죄에 관하여 평의하고, 전원이 일치하면 그에 따라 평결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판사의 의견을 듣고 다수결로 평결한다. 배심원이 제시한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의 목적은 형사사법에서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의 신뢰를 높이는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벌써 “중죄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을 하루에 끝마치라고?”하면서, 국민참여재판은 ‘쇼’라고 비판한다. 중요한 네 가지만 우선 지적해 둔다.


첫째, 배심원 선정절차이다. 지방법원은 아침에 약 40명의 배심원후보자를 불러 놓고, 그중에서 추첨을 통하여 12명을 선정한다. 그런 다음 검사와 변호인이 다시 12명의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을 2시간 동안 검증하면서 골라낸다. 재판에서 승패의 50%는 누구를 배심원의 선정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증절차는 단지 몇 개의 질문뿐이다. 배심원의 성향을 분석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거의 모의재판수준이다. 이러한 절차는 건전한 상식, 삶의 경력, 바른 사람을 선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그저 안 되는 사람을 골라내는 소극적 절차로 변질되어 있다.


배심원선정절차는 국민참여재판의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절차이다. 국민의 직접성과 대표성을 갖춘 시민들이 재판과정에 참여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절차를 2시간으로 끝내야 한마면, 이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둘째, 검사의 모두진술절차(冒頭陳述節次)이다. 오후에 시작되는 검사의 모두진술시간은 한마디로 ‘형법강의시간’이다. 검사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여 사건의 쟁점을 설명한다. 성폭력특별법이 어떻고, 구성요건이 어떻고, 법대생들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50대 아주머니에게 30분 정도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들에게 포스코의 재무구조를 요약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재판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홍보하는 것 이외에 실익이 없다고 비판한다.


셋째, 증거조사절차이다. 통상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일반재판은 피고인신문에 집중되어 있지만, 배심재판은 증인신문에 집중되어 있다. 검사가 쟁점을 정리해 놓으면, 변호인은 이를 흔드는 전략을 쓴다. 이때 중지미수가 어떻고, 장애미수가 어떻고, 오상방위가 어떻고, 위법성전제사실의 착오가 어떻고, 변호인은 일반시민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법률용어를 암호처럼 사용한다. 과연 배심원들이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또한 이때 만약 선서한 증인의 위증이 있다면, 조사자 증언을 즉시에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이 경우 과연 배심원들이 사건의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과연 이러한 형사재판을 신뢰할 수 있을까?


넷째, 평의절차이다.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1시간 정도 진행된다. 첨예하게 다툼이 있는 경우 1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2차 평결로 이어지고, 또 유죄의 평결이 난 경우 배심원과 판사가 함께 양형에 관하여 토의까지 한다면, 벌써 저녁 8시다. 이 시각에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에 쫓겨서 결국 졸속재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형사재판을 국민을 위한 형사재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민은 국민대로 검찰항소를 비판하고, 검찰은 검찰대로 무죄 혹은 일부 무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형사재판에서 역사적인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2009년, 2010년의 운영성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법원, 검찰, 그리고 국민이 조금 방심하면 이 제도는 ‘사법부의 실험’ 또는 ‘사법부의 거대한 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특단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시행보다 제도의 정착을 위한 진정한 노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성찰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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