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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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 법률저널
  • 승인 2009.04.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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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강간죄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긍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하여 처를 강간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혼인계약에 이것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부부강간죄 판결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근대'로 가고 있다.


  부부간 성행위에 대해 강간죄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는 2009년 1월 16일 필리핀인 아내(25)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특수강간)로 기소된 L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에 '혼인 중인 부녀'가 제외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L씨는 성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국제결혼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강간죄의 행위객체인 부녀의 범위에 법률상의 처를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설이 대립되어 있다.

 

  찬성론자들은 부녀의 개념에 당연히 처도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부녀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형법의 보호대상이라고 한다. 만약 부녀의 범위를 아주 제한적으로 해석한다면,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역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부부간에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부부에게는 민법상 동거의 의무가 있고, 동거의무는 성생활도 함께 할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 결혼한 부부에게는 배우자의 성관계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존재하기 때문에 형법상 강간죄 적용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본다. 그 해결방안으로 ① 폭행죄와 협박죄의 성립, ② 강요죄의 성립, ③ 다만 별거 중인 경우에 한하여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한다.

 

  필자는 찬성론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심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하여 처를 강간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 혼인계약에 이것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한편 대법원은 1970년 판결에서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부정하였다(대법원 1970. 3. 10. 선고 70도29 판결). 이 판결은 우리 사회에서 약 40년 동안 지속되었고,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2004년 8월 20일 서울중앙지법은 처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안방에 끌고 가 두 손을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추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에게 강제추행치상죄를 적용하여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당시 재판부는 "결혼을 통해 성관계를 가질 의무가 생기지만, 상대방을 폭행, 협박해 성추행을 하는 것은 위법하다. 부부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 고 판시하고, "대법원 판결은 부부사이에서 강간뿐 아니라 강제추행도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미 30여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부산지법 제5형사부의 판결은 종전 대법원의 판결을 변경하면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보다도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성편향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려는 의지가 보인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차별 없이 처에게도 인정하려는 재판부의 의지도 보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에 공감을 할 것이다.

 

  영국은 1994년 부부강간죄를 인정했다. 독일도 1997년 7월 1일 형법을 개정하여 형법 제177조 강간죄에서 혼인예외조항을 삭제했다. 일본도 사실상 이혼, 별거 등의 상황 하에서의 제한적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근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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