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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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글까
  • 법률저널
  • 승인 2009.02.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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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원을 앞두고 제출한 변호사시험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정부가 제출한 변호사시험법안이 일부 자구만 수정한 채 정부원안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9일)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12일)까지 질주하다 12일 오후 본회의에서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우리는 본란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로스쿨 출신자에게만 응시자격을 주는 변호사시험법안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는 취지로 줄기차게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입법 논의과정에서부터 제기돼왔던 이런 지적들을 잘 알고 있는 법무부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직접 이해당사자인 수험생들의 여론을 철저히 무시한 채 졸속으로 법안을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첫 단추 잘못 꿰어진 '로스쿨법'이 原罪

 

본회의에서 변호사시험법안이 부결된 것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졸속입법, 강행처리 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안'(로스쿨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온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지난 17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란 비상수단을 통해 본회의에서 회기종료 몇 분을 남기고 단, 3분만에 졸속으로 입법화되었다. 하지만 법에는 로스쿨 수와 학생 정원 및 변호사 정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변호사 자격시험 제도 및 판검사 임용 방식도 명시하지 않아 '반쪽 법'이라 지적이 거셌다.

 
로스쿨법 통과 당시 로스쿨 도입을 적극 반대해 온 수험생들은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된 로스쿨법은 근조(謹弔) 로스쿨법이다"며 "수십년간 뿌리내린 법조인선발 제도를 뿌리 채 바꾸는데 국회 전문위원회에서 충분한 검토없이 날치기로 통과하는 것은 국회가 죽었다는 증거이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로스쿨법의 부당성을 주장했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사법체계의 근간을 세우는 중요한 법안을 국회가 충분한 검토없이 몇 분만에 방망이로 통법부 노릇한 국회의 만행에 참담함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며 정치권을 맹비난했었다. "수만명의 수험생 앞길이 달린 로스쿨법을 그저 당리당략의 재물로 삼은 횡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입법직후부터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해 왔다. 아직까지 로스쿨을 유치한 학교나 유치에 실패한 학교는 물론 학생들까지 모두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며 각종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이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가 됐어야 하는데 그때도 드라이브를 걸어서 졸속 추진한 후유증이었다. 로스쿨의 도입취지인 법학교육 정상화와 전문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로스쿨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로스쿨법을 국민의 뜻에 따라 개정도 검토해야 한다.

 

특성화 과목 추가하고 통합형 출제돼야

 

부결된 변호사시험법안의 주요 쟁점은 시험과목, 응시횟수, 응시자격 등이다. 한나라당 소속 강용석 의원이 본회의 반대토론을 통해 변호사 시험 응시횟수를 5년간 3회로 제한하고 로스쿨 출신에게만 응시자격을 주는 등 문제의 핵심사안을 짚었기 때문에 여야를 떠나 의원들의 공감을 샀다. 법안 부결은 당파성 시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법안의 내용도 몰랐던 강 의원은 법안 심사보고를 듣고 사전준비도 없이 곧바로 반대토론을 신청해 연단에 올랐다. 해당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온 법안이 부결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강 의원의 토론이 주효했다.

뒤늦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본회의에서 부결된 변호사시험법 등 로스쿨 도입에 따른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법조인력양성제도 특별소위'(가칭)를 설치한다고 한다. 법무부도 부결된 취지를 반영하고 각계의 의견을 좀더 수렴해 조속히 수정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변호사시험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논의와 여론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우선 쟁점사안 가운데 하나는 시험과목과 방식이다. 현 사법시험과 똑같은 시험과목과 방식으로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 부합하기 힘들다고 본다. 시험과목으로 기본3법과 후4법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특성화와 국제화 전문화된 변호사를 양성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 가령 IT법, 과학기술법, 생명의료법 등 특성화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과목들도 포함돼야 한다. 평가방법도 단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하기보다는 로스쿨 3년동안 과정의 평가도 반영하는 것이 로스쿨 교육과정 내실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또한 선택형 필기시험과 논술형 필기시험을 나눠 실시할 것이 아니라 선택형과 논술형을 통합해 출제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

응시횟수 자격도 원칙적으로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재학 중 사법시험 응시를 변호사시험 응시로 간주하는 것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응시횟수 제한은 응시인원누적으로 인한 합격률 하락이 '로스쿨 낭인'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점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외국의 입법례도 있고 일응 합리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이것은 편법에 불과하다. 기간과 횟수를 이중으로 제한하는 것은 수험생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은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인위적인 응시제한으로 풀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도 절반이 넘는 주(州)는 응시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우리의 사정을 고려해 응시횟수의 완전한 개방이 어렵다면 '5년내 3회'라는 응시횟수제한을 좀더 완화할 필요가 있다. 3회의 횟수제한을 완전히 폐지하고 5년의 응시기간을 유지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물론 로스쿨 재학 중 사법시험 응시로 간주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로스쿨 재학생의 시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예비시험보다 사법시험 유지가 낫다

 

가장 큰 쟁점은 응시자격이다. 이번에 부결된 주된 원인인 셈이다. 로스쿨 출신자에 한해서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원천적인 기회의 박탈'로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침해 등 위헌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관된 주장은 예비시험을 도입하든 사법시험을 유지하든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법조인이 될 있는 최소한의 길은 열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상고를 나오든 학력을 따지지 않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제대로 학교에 못 다닌 사람이건,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 사람이건, 이름없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건 의지만 있다면 독학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신분 상승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상고를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약 이런 진입장벽이 없는 제도가 없었더라면 과연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같은 제도로 가장 혜택을 입은 그가 재임시절 로스쿨이라는 높다란 진입장벽을 만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비(非)로스쿨 출신자들에게 법조인의 길을 막는 가장 주된 이유는 로스쿨 제도 자체를 뿌리 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과 법률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반대 논리다. '장마가 무서워 호박을 못 심겠다'는 것인가. 예비시험이든 사법시험 유지든 사회의 안전판으로 비로스쿨생에게도 최소한의 길을 터 주자는 것이다. 최소한의 범위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가운데 10% 정도일텐데 예비시험 반대자들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10%가 90%를 흔든다는 논리다. 90%에 해당하는 로스쿨이 예비시험에 흔들릴 정도라면 그만큼 로스쿨이 허약하고 경쟁력이 없는 허울뿐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로스쿨이 경쟁력이 있다면 누가 예비시험으로 가겠는가. 현재 고입, 대입 검정고시제도가 있지만 사람들이 검정고시에 몰리는가. 반대로 내신이 훨씬 불리함에도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에 학생들이 왜 몰리겠나. 그만큼 대입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예비시험이나 사법시험이 존속해도 좋은 로펌을 가고 판검사 되려면 로스쿨을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주면 될 일이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로스쿨이 예비시험 출신자들에게 뒤질 정도로 자신이 없다면 로스쿨을 폐지하는 것의 순리지 로스쿨이 안된다고 예비시험을 막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오히려 로스쿨 출신자와 다른 통로를 통한 법조인간의 경쟁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 로스쿨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법조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문호를 두자는 것인데 그런 취지라면 굳이 예비시험을 통과하고 또 변호사시험까지 합격해야 하는 2중의 진입장벽을 쌓기보다는 차리리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비(非)로스쿨 출신자를 위한다는 취지에 더욱 부합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노하우가 쌓인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백번 낫다. 현행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법과대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과 로스쿨과 사실상 동일한 교육을 받은 자를 예비시험을 통해서 변호사시험 체제로 통합하는 것보다 더 현실에 맞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조인 배출의 중심이 로스쿨이고 로스쿨에 갈 형편이 못되는 소수자를 위해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자는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10%선이면 족할 것으로 본다. 

 

'변호사시험법' 서두를 이유 없다

 

일각에서는 변호사시험법안 부결이 마치 로스쿨 개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듯 호들갑이다. 한마디로 변호사시험법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3년 뒤에 시행할 시험법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을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 주장대로 로스쿨 교육과정에 혼란을 초래한다면 로스쿨을 시험위주의 고시학원처럼 운영하려 했다는 고백아닌가.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구호는 허구였다는 것인가. 로스쿨은 로스쿨취지를 살릴 만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놓고 시험에 관계없이 교육이나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법안이 그대로 통과됐다면 그 교육과정을 무시한 채 변호사시험 합격자 배출을 위해 고시학원처럼 변질 됐을 것이 뻔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기회에 부결된 취지를 반영하고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수정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채 수정법안을 또 다시 제출한다면 반대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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