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사와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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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사와의 악수
  • 법률저널
  • 승인 2008.12.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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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자 시인의 잉크-12  
                                                                  
   끝도 시작도 없는 곳에서부터 존재해온 시간이여. 이제 그대는 또 한번 우주 만물에게 한 살씩의 나이를 보태주려 하는구나. 그대가 만일 너그럽고 미세하며 부드럽지 아니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서 받은 상처의 아픔을 재우지 못했을 것이며, 그대가 만일 더할 나위 없이  공평치 아니했다면 우리 모두 균등히 늙어갈 수도 없었으리라. 돈 많은 자와 권력을 쥔 자, 명예를 가진 자만이 그대를 소유할 수 있었다면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성숙의 기회와 회고의 등불도 켜지 못했으리니! 늙을 수 있는 소수계층을 얼마나 부러워했을 것인가. 그러나 그대는 우리 모두에게 희로애락을, 춘하추동을, 생로병사를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하며 단풍 들게 한 다음 눈감게 하나니. 그대의 어느 면모엔들 감사를 바치지 않을 수 있으랴.
 
   신의입자(God particle)라고 불리는 힉스입자(Higgs Boson)가 발견되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힐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소립자들을 연결해주고 질량을 갖게 해주는 핵심입자가 있을 거라는데 그게 바로 힉스입자라는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 입자를 규명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실험을 벌이고 있다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 시간을 예찬하는 데 그치려 한다. 힉스입자에 대해 더 이상 알 수도 없거니와 이 글의 주인공은 힉스입자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이다. 태초입자로 추측되는 힉스입자가 발견되든 안 되든  ‘시간’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을 터. 따라서 우리 인생을 최후까지 싸고도는 제일입자는 빅뱅이 다시 터진다 해도 시간일 것이다. (여기서, ‘시간이 물질이냐?’고 허를 찌르는 독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지금은 12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감사합니다.’와 동격으로 쓰이는 때다. 모임에서도 으레 주고받는 예(禮)이지만, 택시에서 내리거나 전화를 끊을 때도 흔히 그렇게 인사한다. 그 짧은 축복의 말을 건넴으로써 우리는 서로서로 행복해진다. 십오륙 년 전, 나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정중한 악수를 나눈 기억이 있다. 물론 이맘때였다. 내가 이용하는 전철은 주로 4호선이었는데 하반신이 없는 중년남자 한 분이 간혹 눈에 띄었다. 불행을 겪지 않았다면 꽤 건장한 체격이었을 듯한 남자의 첫인상은 왠지 섬뜩했다. 가슴과 어깨의 골격이 유난히 컸고, 검정색 고무에 씌워진 반 토막 다리는 180˚에 가깝도록 쫙 벌린 채 전철바닥을 쓸었으며, 얼굴 또한 크고 마른데다가 쌍까풀진 두 눈은 부리부리했다. 양 손을 옮겨 짚음으로써 걸음을 대신했고↙
 
   주머니가 커다란 조끼를 입어 얻은 돈을 그 안에 간수했다. 무섬증을 유발시킨 인상 때문이었을까. 그의 모습을 조우한 첫날 나는 적선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그를 보게 되자 마음 한구석에서 가책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이었지만 그 외모만으로  그로데스크와 혐오감(?!)까지를 일으켰던 속내를 깊이깊이 뉘우쳤다. 누구라도 그런 운명에 떨어질 수 있었던 것을…, 건강한 우리 모두는 그보다 다행다복을 누렸을 따름. 의자에 편히 앉아 그를 내려다봤던 나는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좀더 보호받았을 뿐인 것을…,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무시하거나 멸시할 근거란 없었던 것을…, 극한 상황에서도 굿굿히 살아가는 그의 태도를 존경해야 했던 것을…, 우리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그의 자존심과 인격을 헤아려야 했던 것을….
 
   마음으로 지은 잘못을 갚기 위해 나는 그를 볼 적마다 왼손에 오른손을 받쳐 잔돈을 드리곤 했다. 앞서 말한 이맘 때, 그날따라 한복을 갖춰 입고 전철을 탔는데 그가 여느 때처럼 전철 저쪽에서 앉은걸음으로 바닥을 쓸며 다가왔다. 나는 지갑을 열고 새 돈을 꺼냈다. (참, 잊을 뻔했다. 나는 천 원짜리 신권이 생기면 사용하지 않고 지갑에 따로 보관하는 버릇이 있다. 어린아이와 걸인에게 주기 위함이다. 엄밀히 분석하면 어린아이와 걸인에게 주는 돈은 거래가 아니라 순수선물 아닌가. 그러므로 같은 값이면 새 돈일 때 한층 따뜻하다. 더욱이 걸인의 경우, 신권 소유의 기회가 드물지 않을까 싶은 눈곱만큼의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 신권들은 어린아이보다 걸인에게 돌아가는 횟수가 더 많다. …사족이 길었음을 양해하여 주시압.)
 
   내 앞에 이른 그에게 돈을 내밀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세밑 인사를 했다. 서로가 알아볼 정도로 구면이 되었기에 나는 조용히 악수를 청했다. 그가 정중히 목례한 다음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는 더할 나위 없이 예의바르고 겸허한 악수를 나누었다. 짧은 악수를 마치자 그는 다시- 겸손히- 목례하고는 장갑을 끼었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예의 그 모습으로 다른 칸을 향해 멀어져갔다. 채 일 분도 안 되는 순간에 벌어진 그 광경을 많은 이들이 지켜보았다. 그의 깊은 표정과 나무랄 데 없는 매너가 나는 물론 전철 안의 모든 승객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온화한 얼굴로 돈을 꺼내 들었을 뿐 아니라 누구 한 사람 잡담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전동차는 휙휙 날아 우리 동네에 도착했고 나는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두루마기의 긴 옷고름을 바람에 맡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로 가득했다. 자신도 모르게 느꼈던 첫인상에 대해 속죄가 될 것만 같았다. 깨끗이- 깨끗이- 마음 한 쪼가리 헹구며 밟았던 오솔길. 나는 진심으로 그가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아’ 힘든 구걸생활이 청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후로도 4호선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새 돈을 건넸으며, 언젠가 한 번은 오천 원 권을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너무 많은데…, 받으면 안 되는데….’ 싶은 무언의 언어가 감지될 정도로 망설였다. 그러나 내가 권유의 얼굴을 보였기에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되비작되비작 멀어져갔다. 그 순간 나는 후회했다. 지갑에 몇 만 원이 함께 들어 있었건만 왜 꼭 오천 원짜리를 집으며 크게 마음먹은 양했을까.      
 
   그 후회와 함께 나는 곰곰 생각했다. 대화라고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마디였을 뿐, 목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그에게 이미 우정이 연결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벗이 될 수 있구나.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기약 없이 1초씩 스치는 사람과도 신뢰와 소통이 가능한 일이구나> 그래서 나는 그 날로 다짐했다. 언제든 꼭 한 번은 만 원짜리를 주리라고…, 주판알 굴리지 않고 기꺼이 꺼내리라고…, 그깟 만 원을 뭐 그리 깊게 셈할까보냐고 혹자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달 생활비를 꼼꼼히 맞춰 쓰던 나로서는 그리 사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웬 걸! 그 후 단 한 번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꿈이란 어떤 꿈을 막론하고 이루기 어려운 것.             
                  
  그에게 주지 못한 만 원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 왜 여태껏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일까? 몸져누웠을까? 세상을 떠났을까? 천사였을까? 아니다, 그게 아니라 진짜로 ‘많은 복을 받아’ 구걸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기도가 가납되었다고 믿으련다. 그 편이 때로는 서먹했던 신과 우리의 관계를 돈독히 묶어주기 때문이다. 매해 연말이면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스스럼없이 덕담을 교환한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상대가 지인이든 초면이든 개의치 않는다. 복(福)은 절대자가 베푸는 것 가운데 가장 밝은 빛이고, 살아갈 맛을 북돋아주는 공기이며 머나먼 우주로부터의 호의이다. 아무리 퍼주어도 남아도는 복! 그 인사말을 뉘라서 아끼려 들겠는가. 내 복의 원천인 고향집과 부모님 형제자매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새해’라는 노새에게 난 이제 벅찬 짐을 올려놓지 말아야겠다. 나의 노새는 쉰여섯 번이나 무거운 짐을 보태어 싣고 사막을 걸어왔다. 내 머리가 희었으니 동갑내기 노새인들 늙지 않았으랴. 짐을 더하기보다는 한두 개쯤 내려놔야 될 것만 같다. 노새의 다리가 얼마나 후들거렸을까는 생각지도 않고 새해만 되면 무작정 짐 지웠던, 여러 희망들! 신의입자=힉스입자가 당장 발견된다 해도 나의 노새는 어제의 걸음걸이를 고수할 것이다. 내가 노새를 만난 지는 56년에 불과하지만 우주를 실어 나르는 거대노새는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아기노새들에게 ‘끄떡없음’을 전수해왔을 터이므로. …나의 노새에게 샘물 한 바가지. 콩 한 줌을 베풀어준 이들에게 새해에는 복이 곱빼기로 쏟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멋진 악수타임 속의 신사한테는 눈부신 만복세트를 주문/배송시키고 싶다.    
 
 정숙자 시인은 1952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199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으며, 1997년 대산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들소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밝은음자리표>가 2008년 출간되었다.
정숙자 시인의 잉크는 매월 셋째주에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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